존 볼턴 보좌관의 사퇴 이후 급변한 중동 정세

미국의 압박으로 중국이 선택 기로에 놓인 것처럼, 미국도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미국을 압박하는 상대는 이란. 이란은 지금 미국의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지난 9월 10일 화요일, 트럼프 대통령이 매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할 때만하더라도, 북미 관계는 물론, 미국의 중동 전략에도 큰 변화가 올 것으로 예측됐다. 대외문제에 대해서 언제나 강경한 태도를 취한 볼튼 보좌관이 물러났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볼튼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과도 수시로 충돌했었다.

이날 미국의 소리 방송(VOA)은 곧바로 볼턴 보좌관의 경질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볼턴 보좌관의 경질 사유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한을 포함한 여러 사안들에 대한 잦은 입장차”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마찰을 빚어온 국가들에 대해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은 변화를 추구했다.

그런데 국제 정세의 향방은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과 달랐다. 볼턴 보좌관이 경질된 나흘 뒤인 9월 14일 토요일,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원유 시설이 공습당한 것이다. 사건 발생 직후,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는 자신들이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시설 공격 배후에는 이란이 있다고 주장했다.

9월 말로 예정된 유엔 총회는 미국의 이란 성토 현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APEC 정상 회담 중에, 프랑스의 중재로 마련된 대화 분위기는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볼턴 보좌관이 빠졌는데, 오히려 미국은 강경 자세를 취하는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다.

미국의 사우디아라비아 유전에 대한 이란의 공습 가능성 제기

공습당한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원유 시설은 아람코 소유였다.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는 이번 피해로 사우디의 일일 총 산유량 980만 배럴 중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570만 배럴의 생산과 공급이 중단됐다고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스커드 미사일을 쐈던 1991년 걸프전 이후 가장 심각한 피해”라고 보도했다. 국제유가가 급등했고, 중동정세 또한 크게 요동치고 있다.

미국이 이란을 배후로 지적한 이유는 예맨의 반군 후티의 공습 주장에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 이번에 공습을 받은 세계 최대 원유 처리시설이 위치한 사우디아리비아 동부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유전시설은 예멘 북부 국경에서 1,000km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다. 후티의 주장한 것처럼, 소형 드론의 비행거리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드론은 예멘이 아닌 다른 장소, 즉 가까운 이라크에서 날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란은 적극 부인했지만, 이란은 후티 반군과 같은 이슬람 시아파. 따라서 후티 반군이 이란에서 드론을 날렸을 가능성이 높고, 드론 등 각종 무기 기술도 이란이 제공했을 것이라는 게 미국의 추측. 후티 반군이 드론을 날리고, 이란이 도왔다는 결론.

미국 정부와 무기 전문가들은 이란이 국가 방위 전략 차원에서 상당한 수준의 미사일, 드론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란은 이런 무기와 제조 기술을 후티 반군과 중동 지역 친이란 세력에 이전했다고 보고 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이란이 미사일과 미사일 생산 능력, 기술 분야의 주요 수출국이라고 분석한다.

국제 유가 폭등과 미국의 전략비축유 방출 승인

지난 9월 16일 월요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는 10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가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14.7%(8.05달러) 뛴 62.90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는 장중 15.5%까지 오르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서부 텍사스산 원유의 가격 상승은 2008년 12월 이후 11년 만의 ‘퍼센트 기준, 하루 최대폭’ 급등이라 평가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만 급등한 게 아니다. 같은 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 11월물 브렌트유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5시 10분 기준, 브렌트유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13.05%(7.86달러) 상승한 68.08달러에 거래되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 수준이었다.

심지어 브렌트유는 전날 밤에 약 20% 폭등하기도 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 상승에 촌평을 내놓은 로이터통신은 브렌트유에 대해서도 똑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브렌트유의 상승은 1990~1991년 걸프전 이후 하루 장중 최대폭의 급등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난 9월 14일 토요일의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원유 설비 가동 중단은 세계 원유 공급에 얼마나 큰 차질을 빚게 만든 것일까? 사우디아라비아의 570만 배럴 원유 생산 감소는 사우디아라비아 하루 산유량의 절반이며, 전 세계 산유량의 5%에 해당한다. 5%의 생산 중단이 가격 급등을 부른 것이다.

미국의 CNBC 방송은 사우디아라비아가 한 달 정도 기존 수출물량을 유지할 수 있는 재고를 확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생산 감소가 상당기간 계속되면 브렌트유는 배럴당 75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고, 관련국의 군사적 대응이 이뤄지면 배럴당 85달러를 찍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 사태가 국제 유가에 끼칠 영향을 고려해 미국 전략비축유(SPR) 방출을 승인했다.

국제 관계의 전환점에 선 트럼프 대통령

지난 9월 16일 월요일,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시설 공격의 배후를 밝히고자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공격이 이란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섣불리 대응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로이터 통신을 비롯한 외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신중한 태도를 고스란히 내보냈다.

일주일 전인 지난 9월 10일, 매파 볼턴 보좌관을 경질하며, 국제 사회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내보냈던 트럼프 대통령. 그렇지만 이제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볼턴 보좌관 못지않은 강경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부터 트럼프 타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딜레마는 이것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부인하든 말든, 시간이 지나면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시설 공격 배후는 밝혀지게 되어 있다. 문제는 공격 배후로 이란이 확실해지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이란에 책임을 물어 공습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혼란이 시작된다.

전 세계 산유량의 5%를 차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는 그보다 더 큰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원유 공급처 이란까지 잃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제 유가는 지금보다 더 폭등하고, 세계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 미중 패권 전쟁을 치르며, 이란과 북한을 동시에 압박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해 결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