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일본이 최근 우익 강경파를 대거 등용한 개각을 단행한 가운데, 한일 경제전쟁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끈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개각 후 오히려 하락했으나 우익 강경파가 포진한 내각 자체에 대한 긍정평가는 높은 기현상이 벌어지는 가운데, 일본인 10명 중 6명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자국 경제정책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설문조사가 나오며 일각에서는 한일 경제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아 귀추가 주목된다.

스가와라 잇슈 “우리의 자세 변함없어”

요미우리 신문은 16일 최근 개각을 통해 등판한 스가와라 잇슈 신임 일본 경제산업상이 한국을 향한 강경대응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한일 경제전쟁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스가와라 경제산업상은 일본 정부가 한국을 대상으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수출 규제에 나선 것을 두고 “WTO 규칙에 매우 정합하다”면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입장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후 한일 두 나라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당분간은 강대강 대치 국면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스가와라 경제산업상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조치는 안전보장상의 문제라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이와 관련해 “각국이 불확산 방침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일본을 WTO에 제소한 것을 두고는 “한국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 11일 일본 정부를 WTO에 전격 제소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정부는 우리나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교역을 악용하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일본의 조치를 WTO에 제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유 본부장은 나아가 "일본의 3개 품목 수출제한 조치는 일본 정부의 각료급 인사들이 수차례 언급한 데서 드러난 것처럼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정치적인 동기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우리나라를 직접적으로 겨냥해 취해진 차별적인 조치"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WTO에 일본을 제소하며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는 안건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나, 이는 일본의 수출 통제가 명확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혹시 있을 수 있는 역공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결국 한일 경제전쟁 자체는 교착상태를 유지하며 지루한 공방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 일본의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는 주어진 상황에서 소재 및 부품 확보에 나서고 있으나, 상황이 언제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오락가락 일본 내부 여론

스가와라 경제산업상의 강경발언으로 미뤄보아, 당분간 한일 경제전쟁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WTO 제소도 최장 3년의 시간이 걸려야 결론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가 여전히 강경대응을 선언한 가운데, 내부 분위기는 오락가락이다. 보수로 분류되는 진영에서는 한국에 대한 강경대응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진보로 분류되는 진영에서는 확전자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진보성향의 마이니치 신문이 한국에 대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대한 설문조사를 단행한 결과 일본 정부의 방침을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은 64%에 달했다. 그러나 징용 피해자의 배상 문제와 얽힌 악화된 한일관계의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응답도 57%로 집계됐다. 한일 경제전쟁에 있어 자국의 전략을 지지하지만, 악화된 한일관계의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식은 강하다는 뜻이다

반면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 신문이 비슷한 설문을 조사한 결과 자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한 사람은 65%로 나타났다. 다만 요미우리 신문의 설문조사 문항은 ‘한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가 개선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로 알려졌다. 여기에 65%가 지지를 보냈는데, 다소 편파적인 질문지로 보인다. ‘한국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먼저 다가서야 하는가’라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한국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것은 일본의 생각이며, 한국은 일본의 행동이 무리하다고 보고 있다.

한편 한일 경제전쟁을 둘러싼 일본 산업계의 피로도가 축적되는 상황에서 자국민들의 의견도 갈리자 일본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당분간은 강공모드를 유지하며 정치적 성과를 거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이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는 말이 나온다.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도 하락이 눈길을 끈다. 요미우리 신문이 13일부터 15일까지 단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 지지율은 53%로 전달보다 5%포인트 하락했다. 여전히 50%을 넘기고 있으나 하락세가 시작됐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물론 아베 내각의 개각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46%로 나왔으나, 긴 안목으로 보면 분명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아베 내각은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방법 중 하나로 한일 경제전쟁의 장기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견도 갈리는 상황에서 실제적인 액션플랜에 돌입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분간 지금처럼 한일 두 나라의 산업계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리스크를 조절하며, 한국에 대한 도발을 멈추지 않는 투 트랙 전술을 쓸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