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저희가 내부에서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매뉴얼을 좀 점검해달라 요청 드렸는데요.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추가되어야 하는 사항들이 그렇게 많나요? 그게 더 고민입니다. 뭐가 그렇게 복잡하고 다양한가요?”

[컨설턴트의 답변]

물론 위기관리 매뉴얼을 무조건 두껍고 자세하게 만드는 것을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분량은 위기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이 머릿속으로 암기하거나 기억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어떤 기업에서는 십여 페이지 정도 되는 문서를 두고도 위기관리 매뉴얼이라 합니다. 반대로 위기관리 매뉴얼이 수천에서 만 페이지를 넘어서는 기업도 있습니다.

심지어 거의 모든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을 분책해서 전집 형식으로 보유하고 있는 기업도 있습니다. 어떤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이 어떤 기업의 것보다 낫다 부족하다 평할 수는 없습니다. 단, 해당 매뉴얼이 실제 위기 시 효용성이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검토 요청하신 매뉴얼의 경우 대부분의 위기대응 주체와 프로세스 그리고 발생 가능 유형에 대한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위기 발생 유형별로 좀 더 고민을 해 중요한 필수 요소들을 추가해 보시라는 조언을 드린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사 생산시설에서의 대형 화재라는 위기유형이 있다고 상정해 보시죠. 화재 발생 시 감지 시스템이나 채널, 경로 등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화재 발생. 이게 끝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화재에 대해서도 여러 고민이 필요합니다. 단순 시설 화재도 있을 수 있지만, 인명 피해를 동반한 화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에 더해 유독성 물질과 혼합된 화재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폭발을 동반하거나, 대규모 인근 커뮤니티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화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고민은 매뉴얼 이전에 필요합니다.

생산시설 직원들로 꾸려진 안전팀, 화재진압팀, 인명구조팀 등등 여러 역할분담과 책임 그룹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고민도 좀더 다양하게 진행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해당 팀들이 관리할 수 있는 화재의 수준과 성격은 어떤 것일까요? 인근 소방서 신고와 출동 후 관리는 어떤 팀이 담당해야 할까요? 생산시설로 몰려드는 언론과 공공기관은 어떤팀이 관리하나요?

일하던 직원들이 화재 경보를 듣고 사무동에서 나와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인원점검을 해야 하는 안전 지역과 점검 방식은 어때야 하나요? 실제 대형 화재가 발생했을 때 그 집합장소는 진짜 안전할 수 있을까요? 협력업체 직원들이 생산시설 도처에 많은데, 그에 대한 관리와 안전지역 이동은 어떻게 또 관리해야 하나요?

생산시설 인근 상가와 아파트 등 커뮤니티와는 어떤 팀이 어떤 채널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나요? 소방서와 경찰 그리고 관공서들과는 누가 창구 역할을 해야 할까요? 매뉴얼에 공장장이 그 모든 창구 역할을 도맡게 되어 있던데,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까요? 몸이 열 개가 아닌데 말이죠.

몰려오는 기자들을 위해 생산시설 외곽에 취재 지원공간을 만든다 매뉴얼에 써 있는데요. 그 위치는 어디로 해야 하나요? 그 지역에 연결될 인터넷과 전기 시설, 휴식시설 등은 누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요? 지역 커뮤니티에게 피해가 갈 때 그에 대한 보상은 어느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요? 실제로 더 나은 매뉴얼을 위해서는 이런 현실적 고민이 수없이 더 필요할 것입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상식 수준에서 피상적으로 정리된 것인지, 아니면 다양하고 구체적인 고민을 기반으로 정리된 것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매뉴얼이 위기 시 실제로 살아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민을 제대로 정리하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