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ICT 업계의 시련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을 중심으로 일부 ICT 업체의 시장 반독점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플랫폼 쪼개기’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민감한 정보 달라”

16일 업계 등에 따르면 미국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미 하원은 최근 구글과 아마존, 페이스북 등 글로벌 ICT 업체를 대상으로 내부 이메일과 금융 정보 등 민감한 정보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7월 미 법무부를 중심으로 시장 반독점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나온 후속조치라 특히 눈길을 끈다.

미 하원은 당초 12일로 예정했던 반독점 소위의 청문회를 연기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당국의 ICT 업체 압박이 다소 주춤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미 하원이 직접 나서 글로벌 ICT 업체의 민감한 정보를 요구하고 나서자 긴장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번에 미 하원이 요구한 자료는 주요 CEO의 이메일 내역과 금융 정보다. 각 업체의 인수합병 전략이 담기거나 내부 알고리즘과 관련된 기밀급 자료라는 평가가 나오며, 결국 미 하원이 법사위를 중심으로 시장 독과점 조사에 속도를 내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패권 플랫폼의 향배는?

최근 미 민주당은 글로벌 ICT 업체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올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이 있다.

워런 의원은 실리콘밸리 기업의 시장 독과점을 지적하며 기업 해체까지 논하고 있다. 실제로 더버지는 3월 11일(현지시간) SXSW에 참여한 워런 의원이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시장 독과점을 비판하며 “시장은 경쟁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 해체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ICT 기업들의 강력한 플랫폼 경쟁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시장의 경쟁을 촉진시키기 위해 일부 기업을 강제로 ‘쪼개야 한다’는 뜻이다.

워런 의원은 또 “아마존과 구글 등은 우리의 경제와 사회, 문화에서 너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경쟁을 거부하며 우리의 개인정보로 돈을 벌고 있다”고 맹비난에 나서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두고 “워런 의원이 2020년 대선을 준비하며 테크 기업의 해체를 공약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리콘밸리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의 차기 대선 주자가 반 테크 기업 정서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놀랍지만, 그가 주장하는 내용도 파격의 연속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플랫폼 쪼개기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특정 플랫폼이 내부 플랫폼에서 판매자처럼 동일한 비즈니스를 한다면 공정경쟁이 아니라는 주장에서 비롯된다. 아마존이 광고비를 많이 집행한 셀러를 최상단에 위치시키는 것을 포함해, 플랫폼 사업자가 자체 생태계에서 비즈니스에 나서는 모든 현상을 부정하는 뉘앙스다. 애플의 경우 플랫폼과 유통망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워런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애플은 앱스토어를 분리해야 한다.

미국은 플랫폼 쪼개기에 있어 이미 전적을 가지고 있다. 한 때 석유시장의 90%를 장악했던 스탠다드오일을 무려 30개의 회사로 쪼갰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결국 워런 의원의 발언과 트럼프 대통령의 실리콘밸리에 대한 악감정, 미국에서 커지고 있는 실리콘밸리 기업의 시장 독과점 논란 등이 결합되면 예상하지 못한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며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를 차단하는 등 적극 협조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추후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실리콘밸리 기업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효과만 발휘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낙관론도 나오고 있으나, 현 상황에서는 압박으로 좁혀지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올 것이 온다’는 분위기다. 5G의 등장과 초연결 시대의 패러다임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 글로벌 패권을 차지하는 대형 플랫폼의 등장은 어려워졌다. 결국 ‘고인 물’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망 중립성 가치까지 무너지며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의 등장도 요원해지는 분위기다. 결국 기존 글로벌 ICT 기업이 막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의 등장을 막고 진화의 발목을 잡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이어지는 일련의 압박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다.

글로벌 ICT 업계는 일단 납작 엎드리고 있다. 당장 구글은 자사의 강력한 플랫폼을 흐르는 가짜뉴스를 근절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리차드 깅그라스 구글 뉴스 담당 부사장은 12일(현지시간) 블로그를 통해 언론사의 기사 중 최초보도에 알고리즘 비중을 두는 방안을 두겠다고 발표했으며, 이는 강력한 플랫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시장 독과점의 우려가 강력한 단일 플랫폼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번지는 상황에서,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며 ‘우리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려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