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번씩 탈북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며칠 전 모임은 추석 명절이라 다른 형식을 취해 그분들과 윷놀이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며 식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대한 즐거운 프로그램을 준비, 허전한 마음들을 잊게 하자는 취지였지요. 그들로서는 정말 오갈 데가 없는 명절임을 말해주듯, 참석률이 아주 높았습니다. 구십이 넘으신 어르신들도 참석,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재미있는 춤과 노래로 분위기가 한껏 즐거워졌습니다. 그러다 막판에 ‘세상살이가, 인생살이가 고추보다 맵다 매워’라는 대중가요를 북에서 온 팔십대 어른이 천천히 춤을 추며 부르자 모두가 그 매웠던 인생에 빠져들었지요. 그래도 웃는 낯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행사를 잘 마쳤습니다. 

문득 얼마 전 가졌던 이 모임이 생각났습니다. 모임에 나오는 남북의 자매가 듀엣을 만들어 약간의 안무를 더해 남과 북의 노래를 따로 또 같이 불렀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의 행사를 위해 결성했는데, 몇 군데 화합의 자리에 초청되더니, 이제 제법 화음도 맞고, 나날이 발전되는 모습입니다. 그날도 남쪽 노래 ‘홀로 아리랑’으로 시작하고, 남북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북한 노래 ‘임진강’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북한 노래인데 남한과 일본에서도 불리는 바로 그‘임진강’입니다. 그런데 북한 자매가 임진강 노래를 부르다가 한 대목에서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습니다. 바라보고, 기다려주던 남쪽 자매가 이어서 노래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지만, 그 대목에서 울어버린 북쪽 자매를 보면서 많이들 울고, 가슴아파했지요.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중략)

내 고향 북녘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는 못하리라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는 못하리라‘

이십대 초반에 홀로 떠나온 고향, 거기에 남겨놓은 가족들 생각이 그녀를 복받치게 했겠지요.

거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눈물 같은 순전한 마음,

고향 생각에 따라오는 마음 같아보였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작가 이미륵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상해로 도피, 그 후 독일로 망명해서 한 많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나로서는 학생 시절 그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은 적 있는데, 그 또한 일찍 나라를 떠나 이방인으로 살며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그 당시는 별 생각이 없이 읽었었는데, 먼 이국 땅에서 자신의 아픔인 외로움, 가난, 질병, 향수 등의 내면을 소설로 발표했던 게지요. ‘저녁이 되어 어둑 어둑 해지면 어딘가에 앉아 내 생애와 세상사, 내 질병과 현재 생활, 즉 상처받고 파손된 인생의 의미, 소실되어 버린 내 유년 시절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어‘

이십대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 북한 자매는 노래를 부르다 목이 매 이고, 이십대 초반에 나라를 떠나 이방인으로 살았던 그는 글 속에 고향을 눈물로 남겨 놓은 채 현지서 세상을 등졌습니다.

고향하면 가족, 거기에 담겨지는 눈물 같은 순전한 마음이 있습니다.

밤하늘에 함께 한 부드러운 달빛이 그들을 또 우리를 어루만지며 위로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