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의 종료로 한겨울이지만, 중국은 되려 투자액을 늘리며 강공모드로 나서는 것이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이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무자비한 투자로 점유율을 늘려 한국을 압박했던 사례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 2분기 반도체 투자 1위
14일 업계 및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2분기 33억6000만달러를 반도체에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2분기 글로벌 반도체 장비 출하액이 133억1000만달러에 그쳐 전분기 대비 3% 줄어든 가운데, 중국은 오히려 투자액을 전분기 대비 43% 늘렸다. 글로벌 1위다.

한국은 25억8000만달러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전분기 대비 11% 줄어든 수치며,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무려 47%나 줄어들었다. 대만은 전분기 대비 16% 줄어든 32억1000만달러로 2위로 확인됐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여전하다는 평가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시장 업황 악화로 전체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으나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장이 어렵지만 이를 무시하고 투자액을 늘리는 공격적인 로드맵이다.

중국은 반도체 경쟁력 강화는 물론, 자체적인 생산을 통해 국산화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향후 10년간 약 17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며 초기 자금규모만 1200억위안, 지방정부 기금 및 사모기금이 600억위안에 달하는 규모의 경제를 이미 완성했다. 중국 정부는 중부지역 굴기를 위한 13차 5개년(2016~2020년) 계획에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포함시켰으며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내에 적어도 26개의 반도체 공장이 들어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의 올해 팹 생산 능력은 글로벌 기준 16%를 넘기는 수준이지만 2020년이면 20%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마냥 원만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의 제재로 푸젠진화는 D램 생산을 포기했으며 그 외 압박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아직 기술력만 보면 글로벌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전반적인 메모리 반도체 인프라를 끌어올리는 것은 사실이며, 당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반면 반도체 코리아의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압도적인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나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의 고통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다. 중국의 경우 어려움 속에서도 전폭적인 당국의 지원으로 오히려 강도높은 로드맵을 펼치는 반면, 반도체 코리아는 뚜렷한 우군도 없이 시장의 충격을 온전히 받아내고 있다는 평가다.

▲ 삼성 화성 라인업이 보인다. 출처=삼성

당장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8월 반도체 수출액은 79억8000만달러(약 9조6606억원)로 전년동월 대비 30.7% 감소했다. 이는 8월 D램 평균 가격이 전년동월 대비 54% 하락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으며, 미중 무역전쟁 격화, 일본 소재 수출규제 등에 따른 대외 여건 악화도 상당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결론적으로 반도체 시장 업황 악화의 고통은 한국과 중국 모두 동일하지만, 중국은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반전을 꾀하는 공격적인 태세를 취한다면 한국은 일단 '당하기만 하는 분위기'다.

디스플레이 악몽?
업계에서는 당장 벌어질 일은 아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디스플레이 업계의 악몽이 반도체 업계에도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현재 중국은 글로벌 LCD 시장에서 완전한 패권을 차지했다. 일반적인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원리가 아니라, 중국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비현실적 성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상황을 살피지 않고 무작정 공급량을 늘려 가격을 낮추는 박리다매 전술을 바탕으로 경쟁사를 고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제조사들은 사실상 시장을 쓸어담고 있다. BOE는 2018년 허페이 공장 B9에서 10.5세대 LCD 패널 생산에 성공했고 2020년 양산을 목표로 B17라인도 건설하고 있다. 차이나스타도 올해부터 10.5세대 LCD 패널 생산에 들어갔고 2020년에는 9만장 규모의 라인을 더 건설한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 시름이 깊어지는 이유다. 중국의 LCD 공략이 빨라지는 한편 미중 무역전쟁으로 업황 악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최근에는 한일 경제전쟁도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가 2분기 영업손실 3687억원을 기록하며 주춤하는 이유다. 삼성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중소형 OLED 등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으나 대형 LCD에서는 주춤하고 있다. 2분기 중소형 분야에서 1회성 수익 발생과 리지드(Rigid) 제품 판매 확대를 끌어냈으나 당장 3분기를 기약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최근 삼성디스플레이는 중소형 OLED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중국에 크게 빼앗기기도 했다. 두 회사 모두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한 상태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비슷한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 중국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업체의 비현실적인 인프라 강화로 이어지고, 이 지점에서 박리다매 전략이 불을 뿜으면 점유율을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디스플레이와 달리 반도체는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고, 트렌드도 빠르다. 그런 이유로 중국이 막강한 투자를 단행해도 디스플레이처럼 단기간에 한국 경쟁력을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시장의 악화는 곧 저가 제품의 가성비를 쫒으며, 이런 상황에서 몇몇 라인업의 점유율이 중국에 흘러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반도체 업계가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를 불안한 시선으로 주시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