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1996년 비만을 ‘장기 치료가 필요한 질병’ ‘21세기 신종감염병’으로 지목했음에도 전 세계 비만율은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만은 단순히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을 뜻하기보다 체내에 과다하게 많은 양의 체지방이 쌓여 있는 상태를 뜻한다. 전신 체지방 축적보다는 복부 비만이 대사질환과 관련해서는 더 중요하다. 각종 성인병이 복부 비만과 동시에 나타나는 대사증후군 질환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비만 위험성이 주목된다.

비만, 선진국‧도시형 질환? 이젠 옛말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OECD 회원국 평균 비만율은 19.5%다. 15세 이상 성인 5명 가운데 1명이 비만인 것으로 풀이된다. 과체중 비율 평균은 53.4%로 성인 절반이 과체중이었다. 비만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으로 비만율 38.2%를 기록했다. 다음으로는 멕시코 32.4%, 뉴질랜드 30.7%, 헝가리 30%, 호주 27.9%, 영국 26.9%, 캐나다 25.8% 순이었다. 한국은 5.3%로 35개 회원국 중에서 두 번째로 낮았지만 빠르게 증가해 2020년 6%, 2030년 9%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 2017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참여국 비만율. 출처=OECD

비만은 많이 먹어 생긴다는 인식에 따라 선진국형 질병으로 분류됐지만 OECD 비회원국 중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비만율은 26.5%, 코스타리카 24.4%, 브라질 20.8%를 보면 비만은 선진국‧비선진국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비만은 주로 도시화에 따른 문제라는 오랜 통념에서 벗어나는 연구도 발표됐다. 글로벌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 공중보건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1985년부터 2017년 사이 농촌의 남녀 거주자 평균 체중은 5~6kg 늘어났지만 도시에 거주하는 남녀의 체중 증가 폭은 이보다 각각 24%, 38% 밑돌았다.

연구를 이끈 마지드 에자티 교수는 “도시가 비만 확대의 주요인이라는 상식을 뒤엎는 연구”라면서 “글로벌 보건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도시 인구의 비만이 농촌보다 더 낮은 이유로는 도시에서는 균형적인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는 것과 더 많은 운동과 활동이 가능한 점, 건강 개선을 위한 다양한 기회가 주민들에게 제공된다는 점 등이 꼽혔다.

통계와 연구에 따르면 비만은 지역을 가리지 않고 확대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의료계 전문가는 “비만은 심뇌혈관 질환과 당뇨병 등 각종 대사질환을 유발할 수 있어 각별한 관심이 요구되지만 실제로 개선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실제 과체중 인구와 시민이 인식하는 과체중 인구 비율(단위 %). 출처=Ipsos

비만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점도 비만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이유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미국인의 3분의 2가 비만을 포함한 과체중이라는 사실보다 더 큰 문제로 대부분 비만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시장조사기업 입소스(Ipsos)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국민 중 약 50%가 과체중을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인은 62%가 과체중이지만 국민의 44%만이 과체중을 인식했다. 현실과 일반인의 과체중에 대한 인식 격차가 가장 큰 곳은 중동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과체중인 사람이 많음에도 국민은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과체중 비율은 약 32%인데 국민의 인식도 이와 비슷했다”고 덧붙였다.

미래 세대 무거워지는데 개선책 실효성 낮아

비만율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대개 올바른 식습관과 운동 권고 등이 꼽히지만 지속해서 증가하는 비만율을 고려하면 실효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WHO가 추진 중인 주요 핵심 사업은 ‘어린이 식품광고 마케팅 감소’ ‘모유 수유 증진’ ‘과일·채소 등 건강한 식품 접근성 제고’ ‘저소득층 신체활동 증진 시설 확충’ 등이다.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의 정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WHO에 따르면 2017년을 기준으로 5세 이상 비만 소아‧청소년은 전 세계에서 1억2400만명에 이른다. 이는 지난 40여년 동안 10배 늘어난 수치다. 미래 세대가 무거워진 셈이다. WHO가 200개국 유아‧소아‧청소년 3150만명의 체질량지수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5세부터 19세까지 소아‧청소년 비만율은 1975년 0.8%에서 2016년 7%로 높아졌다. 비만은 아니지만 과체중에 포함되는 소아와 청소년은 전 세계에서 2억1300만명에 이른다.

WHO와 함께 연구를 진행한 ICL은 “지난 40년 동안 소아‧청소년 비만은 전 세계에서 급증했다. 소득이 높은 국가에서도 여전히 비만율이 높다”면서 “비만율 확대는 저소득‧중간소득 국가에서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을 통해 비만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대책에 따르면 주요 정책으로는 모유수유 권장, 음주 개선 가이드라인 마련, 소아 비만 유발 과자‧탄산음료 등 모니터링 강화, 병적 고도비만 수술에 건강보험 적용 등이다. 글로벌 사례에 비춰보면 비만 예방에 대해 실효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만 예방 정책과 더불어 치료제 개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비만 등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관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서 “비만 예방 정책을 추진과 동시에 비만 치료제 개발에도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만 치료제, 개발 난항 왜?

비만 치료제는 1930년대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시도됐다. 이는 주로 식욕억제제로 개발됐다. 당시 개발된 비만 치료제는 약물의존성 등에 따라 환자가 장기간 복용을 할 수 없었다. 이후 약물의존성이 없는 비만 치료제가 개발됐지만 대부분 심혈관관계에 부작용을 나타냈다.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어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은 부작용이 나타난 비만 치료제 전 제품을 수거했다.

비만 치료제 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못함에도 전세계에서 차세대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비만 치료제는 개발에 성공해도 시장에 진출하기 까지 약 2년이 필요하다. 업계 전문가는 “개발 난항과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함에도 비만 치료제 개발에 제약바이오 기업이 뛰어들고 있다”면서 “미국, 유럽 등 과체중 인구가 절반 이상에 이르고 있고, 비만이 당뇨병‧심장병‧고혈압‧뇌졸중 등 합병증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인식돼 성인병 만성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비만 치료제 개발이 크게 요구되기 때문. 이라면서 한 마디로 미충족 의약품 수요다”고 설명했다.

비만 치료 분야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까지 허가를 받거나 개발 중인 비만 치료제는 대부분이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시키는 화학 조성물이었다. 이는 경구로 투여하는 장점이 있음에도 미미한 체중 감소효과, 요요현상 및 심각한 부작용 등의 단점에 따라 극히 일부분의 비만 환자들만이 단기간 사용해 시장이 확대되지 못했다. 최근에는 에너지흡수억제, 저분자합성의약품, 펩타이드 등 다양한 종류의 약물이 개발되고 있다.

경구로 투여하는 중추신경계작용 비만 치료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회피하기 위해 지방조직과 같은 국소조직에 작용하는 주사제 약물들도 개발됐다. 지방 조직에서 혈관 생성을 억제하고 간에서 지방산의 합성을 저해해 지방을 감소시키는 원리다.

비만 치료제 개발과 관련해 미개척지가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효과를 중시하는 화학, 바이오의약품 시대를 지나 유전체 및 단백체 분야 이후 ‘펩타이드’를 주목하고 있다. 펩타이드 비만 치료제 시장은 임상 유효성 측면에서 잠재력이 크가도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펩타이드 분야는 차세대 의약품군으로 전세계에서 국가적 차원의 막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초기 안정된 도입단계를 거치면 급속한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펩타이드 의약품 글로벌 시장은 2012년 약 19조원 매출을 기록해 연평균 10% 성장해 2018년에는 약 33조원으로 성장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제 개발에 따라 시만 치료제 시장이 향후 5~15년 동안 급속하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발전과 신약 대량 개발 후 나타나는 성장 패턴은 이미 여러 치료제 분야에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고도비만은 의학 부문과 경제 부문에서 암과 유사하거나 더 심각한 질환으로 보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본격 적인 신약이 개발되면 비만 치료제 시장은 2025년께 미국에서 선두를 차지하는 암 치료제 시장을 넘어설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에서 비만 치료제 개발에 난항을 겪는 이유로는 전임상 단계에서의 자원 시스템 및 투자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이 꼽힌다. 업계 전문가는 “학계 연구결과와 산업 또는 투자 결정에 필요로 하는 최소한 요건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 없어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면서 “유망한 기술이 글로벌 특허출원 또는 최소한의 전임상 연구에 소요되는 경비 지원 및 투자가 없어 사장되거나 불리한 조건에 해외에 기술을 이전해 부가가치 창출에 실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정부 지원 시스템은 대개 혁신 기술을 지닌 바이오 벤처 기업들이 활용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