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건강기능식품(이하 건기식) 시장이 커지면서 소비자의 선택 폭은 넓어졌지만 본래 건기식 시장을 주도하던 제약업계와 약사회는 못마땅하다는 반응이다. 식품업계가 건기식 시장에 진출하자 식품과 의약품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 상황에 대해 제약·약사회는 건기식의 기능성과 안정성을 우려하고 있다.

▲ 약국 내부에 진열된 건기식 제품.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기자

흐려지는 식품과 의약품의 경계
식품업계의 연이은 건기식 시장 진출에 제약업계와 약사회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의약품과 식품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피할 수 없는 경쟁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최근 건기식의 판매업 진입 장벽은 대폭 낮아졌다. 본래 약국을 제외한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에서 건기식을 판매할 경우 사전에 관할지방자치단체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4월부터 사전 신고 없이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과학적 근거가 확보된 발효음료, 과자 등 일반식품에도 기능성 표시가 허용됐다.

건기식에 대한 광고 규제도 크게 완화된다. 광고에 활용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의 허용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과거 건강기능식품법에 근거한 심사부서의 검사결과만 광고에 허용됐지만, 다른 법령에 근거한 시험기관과 업종·분야별 전문 시험기관 등 검사결과도 광고에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식품의 동물실험 결과 등 제품 효능을 알려주는 표현도 광고에 활용할 수 있다.

▲ 건기식 브랜드 선택이유 설문 결과. 자료=식품저널

최근에는 소비자가 요청하면 건기식을 소분해서 섞거나 1회 분량으로 판매하는 형태가 용인될 기미를 보이자 약사회의 불만이 더 커졌다. 일반약과 건기식의 차이를 잘 모르는 소비자들을 이용해 단순히 제품을 소분·포장 판매하는 판매처를 약국으로 오인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완화된 건기식 규제에 제약업계는 식품업계가 단순 수익창출을 위한 목적으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의견이다. 과도한 마케팅으로 안전기준이나 원료기준을 놓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약업계의 경우 전문의약품 제조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고도의 기술로 건기식에 활용도가 매우 높고, 의약품 대비 개발이 쉽다는 이점도 있어 진출하기에 적절한 환경이다.  

또한 약사회의 경우는 '캐시카우'를 찾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다. 2000년 이후 의약분업을 통해 한동안 안정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동시에 복용 후에는 수요가 고정되는 전문의약품의 비중을 늘리는 것만으로 향후 성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품업계 행보로 제약업계는 안전성과 기능성 측면에서 문제 발생 시 자칫 시장 전체의 신뢰 하락을 우려하고 있고, 약사회는 현재의 시장 점유율 유지는 감소하고 소비자들의 약국 접근성은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최근 모 식품기업의 건기식 제품에 실리카겔이 검출된 것처럼 식품업계가 단순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건기식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우려된다”면서 “건기식 시장은 마케팅이 아닌 안전과 기능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정부의 건기식 규제 완화가 과연 소비자 건강을 위한 정책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약국에서만 판매되는 건기식 제품은 소비자의 신뢰도가 높았던 반면 최근에는 같은 제품이 동네 마트에서 판매되니 오히려 신뢰도는 떨어지고, 제품에 대한 기능성 인식도 가벼워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 이마트 성수점에 나열된 건기식 제품.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기자

국민건강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
국내 건기식 시장의 규제는 계속해서 완화되고 있지만 소비자 건강은 갈수록 위험에 처하고 있다. 시장 규제는 완화됐지만 바뀐 법안과 제품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식약처가 불법유통 및 허위·과대광고로 적발한 총 3만8361건 중 식품·건기식 적발 건수는 2만4195건으로(총 63%)으로 전년대비 90%나 증가했다. 또한 건기식 이상사례 신고건수도 2013년 139건에서 2017년 874건으로 6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기식에 대한 허위·과대광고 사례가 늘고 있는 상황 속 이번 정부의 규제 완화가 국민 건강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도 존재하는 셈이다.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반해 중국은 의약품과 식품을 철저히 구분하고 규제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지난 9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중국은 건강식품 라벨 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건강기능식품 라벨 경고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 가구당 건기식 구매 경험률. 출처=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

핵심은 중국에서 판매하는 모든 건기식 라벨에 ‘건강기능식품은 약품이 아니며 약물을 대체해 질병 치료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경고문을 포함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건기식 판매자에 대해서도 소비자 유의사항 등을 판매장소의 눈에 띄는 곳에 붙이도록 규정을 신설했다. 중국의 경우는 최근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가 기승을 부리자 소비자들이 건기식과 일반식품, 약품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에도 ‘가짜 백수오’ 사태, 프로바이오틱스 패혈증 사망 사건, ‘가짜 홍삼’ 사태, ‘금속성 이물질 함유 노니’ 사태까지 위해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 등을 타고 건기식에 대한 허위·과대광고가 증가하고 있지만 해결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 이마트 성수점에 나열된 건기식 제품.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기자

또한 기업들의 마케팅 형태는 광고인지 실제 체험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교묘해졌다. 최근 한 유명 먹방 유튜버는 사전 광고 심의를 받지 않고 건기식을 허위·과장 광고한 혐의로 징역 6개월을 구형 받았지만 결국 가벼운 벌금형을 받은 바 있다.

한 제약사 개발 관계자는 “제약사의 경우 까다로운 약품을 개발하다보니 안전기준이나 원료기준이 식품업계보다는 앞선다”면서 “식품업계의 진출을 완전히 막는 것은 무리이지만 여전히 제품의 안전과 기능성 측면에서 제약업계보다 뒤처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