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의 사실상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비전 2020의 핵심인 아람코 상장에서 목표액인 2조 달러 가치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유가가 훨씬 더 높아야 한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는 유가가 사우디 아라비아의 원대한 야망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CNN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수장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막대한 예산의 균형을 맞추고 이 나라의 최우량 자산인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의 평가액을 2조 달러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사우디가 이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기 위해서는 유가가 지금보다 상당히 더 높아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 주말, 갑작스레 새 에너지부 장관을 임명한 것은(3년도 안 돼 세 번째 장관이다), 아람코 IPO를 앞두고 유가 상승에 대한 절박감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아람코의 상장은 사우디 경제를 다변화하기 위한 이른 바 ‘비전 2030 계획’의 핵심이다.

네덜란드의 다국적 금융그룹 라보뱅크(Rabobank)의 라이언 피츠마우리스 에너지 전략가는 "사우디 아라비아는 그동안 유가를 올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왔지만 유가 보합에 좌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에너지장관 교체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신임장관인 압둘라지즈 빈 살만 왕자는 에너지부가 왕족에 의해 운영되는 첫 번째 사례다. 압둘라지즈 장관은 살만 빈 압둘라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의 넷째 아들이자 사실상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이복형이다.

<사우디 주식회사>(Saudi, Inc.)의 저자이자 트랜스버설 컨설팅(Transversal Consulting)의 대표인 엘렌 왈드는 "그것은 완전히 전례 없는 일이다. 앞으로 왕정이 정책을 수행하는 데 더 많이 관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급진적인 것은 없다'지만

신임 에너지 장관은 임명되는 순간 세계 석유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는 이번 인사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압둘라지즈 장관은 9일 아부다비에서 열린 24차 세계에너지총회에서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공무원이다. 정부를 위해 일할 뿐이지요. 한 명이 오고 한 명이 간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급진적인 것은 전혀 없습니다."

석유 및 에너지 부문에서의 경험이 풍부한 압둘라지즈 신임 장관은, 그동안 OPEC과 러시아 등 주요 석유 생산국들 간의 감산 협정을 이끄는 등 석유시장의 재균형을 위해 노력해 온 칼리드 알 팔리 전장관을 대신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그동안 이들 국가 간의 감산 협정을 주도해 왔다.

압둘라지즈 장관은 감산 협정이 계속되길 바란다는 뜻을 피력했다.

"각 국의 의지에 따라 감산 협정은 지속될 것입니다.”

균형 예산 유지하려면 유가 80달러 넘어야

산유국들간의 감산 협정으로 유가가 더 이상 떨어지는 것은 막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가 원하던 수준까지는 아직 거리가 멀다.

2016년 초 배럴당 26달러까지 폭락했던 미국 유가는 지난해 10월 잠시 75달러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현재는 60달러 이하에 머물고 있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예산 균형을 위해 필요한 80달러에서 85달러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배럴당 62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RBC 캐피털 마켓(RBC Capital Markets)의 글로벌 에너지 전략 책임자인 마이클 트랜은 "사우디 입장에서 아람코 IPO를 위해서, 그리고 군사 계획과 사회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높은 유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사우디 나라 전체의 운명이 유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제는 유가가 힘을 받지 못하는 것이 석유 산업의 펀더멘탈 보다는 사우디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의 부산물이라는 점이다.

엘렌 왈드는 "오늘날의 석유 시장은 미래의 수요 약세에 대한 전망과 세계적인 불황, 그리고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며 "사우디 내부에서의 어떤 변화가 유가를 좌우하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압둘라지즈 빈 살만 신임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은 9일 아부다비에서 열린 세계에너지총회에서 감산을 지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출처= House of Saudi

불확실한 아람코 IPO

칼리드 알 팔리 전장관을 교체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아람코 상장을 주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2조 달러의 평가액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글로벌 애널리스트들은 이 목표에 회의적인 평가를 보여왔다. 애널리스트들은 실제로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지금보다 유가가 훨씬 더 높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OPEC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알팔리 전장관은 아람코의 IPO에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알팔리 전장관은 장관에서 해임되면서 겸직하고 있던,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회사인 아람코의 회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사우디 왕정은 아람코에서 알 팔리히를 제거하고 왕족을 새 장관으로 임명함으로써 왕가가 소유한 거대 석유기업을 에너지 정책을 감독하는 정부 기관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그것은 과거와는 달리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에서 변화를 주겠다는 신호다.

엘렌 왈드는 "1995년부터 아람코 회장을 에너지부 장관이 겸직해 왔지만 이제는 정부로부터의 분리를 원하는 것 같다"고 진단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이나 다른 지역에서 있을 수 있는 반독점 조사로부터 아람코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유가 전쟁 다시 한번 일으킬까?

사우디의 에너지부 장관 교체는, 2014년 알리 알 나이미 전 석유장관이 벌였던 시장점유율 전쟁을 재개함으로써 사우디의 석유 정책을 완전히 바꾸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당시 사우디는 석유 생산량을 늘림으로써 미국의 (당시로서는) 고비용 셰일가스 생산자들의 성장을 제한하려고 했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은 사우디 아라비아를 포함한 많은 당사자들에게 고통을 안겼던 그 전략으로 돌아갈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RBC의 트랜은 "지금은 사우디가 시장 점유율 싸움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이제 유가를 크게 떨어뜨릴 여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미국의 셰일 생산자들은 지난 5년 동안 신기술 개발과 시추비용 절감, 그리고 석유업계의 거인인 엑손 모빌(Exxon Mobil)과 셰브론(Chevron)의 뒤늦은 합류로 그 세력이 훨씬 더 커졌다. 미국은 OPEC과의 마지막 전쟁에서 단지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생산국이 되었다.

"미국의 셰일은 이제 과거 충격에 빠졌던 그 때의 모습이 아니다. 이전보다 더 빠르고, 더 강하고, 더 회복력이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나 다른 OPEC 국가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알 팔리히 전장관의 전략을 페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 개선하려는 노력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거기에는 석유 감산을 반대하고 꾸준히 공급량을 늘리고 있는 이라크 같은 OPEC 국가들에 대한 단속과 미래의 수요 불안을 상쇄하기 위해 더 감산을 더 확대하는 방안까지 포함될 것이다,

"사우디는 현재의 감산 정책을 더 강화하려고 할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다 하려고 하겠지요."

압둘라지즈 빈 살만 싱임 장관은 9일 세계 에너지총회에서 “이제 우리는 더 큰 가족, 즉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다”고 말하고 “머지 않아 우리는 축배를 들게 될 것이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until death do us part) 감산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