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넥슨이 허민 대표가 이끄는 원더홀딩스에 3500억원을 투자한다. 또한 허민 대표는 넥슨의 ‘외부 고문’으로서 넥슨 게임 개발 전반에 관여하기로 했다. 이번 투자는 김정주 NXC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로 볼 수 있다. 과거 김정주 대표는 허민 대표가 이끌던 ‘던전앤파이터’ 개발사 네오플을 인수한 바 있으며, 이 투자는 넥슨의 역대 최고의 투자로 평가받고 있다. 넥슨과 허민 대표의 인연이 다시 한번 맞닿은 가운데, 넥슨의 사업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넥슨은 원더홀딩스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 신주인수 방식으로 지분을 확보한다고 9일 밝혔다. 총 투자 금액은 3500억원이며 지분률은 11.1%다. 원더홀딩스는 허민 대표가 지난 2009년 설립한 지주회사로 e커머스 플랫폼 위메프와 게임 개발사 원더피플, 에이스톰 등을 소유하고 있다. 

이번 투자를 계기로 넥슨과 원더홀딩스는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구축한다. 넥슨은 원더홀딩스 산하 게임 개발사 원더피플과 에이스톰의 게임 개발과 라이브 서비스에 협력하고 허민 대표는 넥슨의 외부 고문으로 넥슨 게임 개발 전반에 참여하기로 했다. 외부 고문으로 선임된 허 대표는 공식적인 넥슨의 직원으로 영입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넥슨 게임 개발 전반에 참여하며 사실상 넥슨 사업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변화의 바람'부는 넥슨

넥슨은 올해 들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본격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김정주 대표가 추진한 넥슨 매각이 무산되면서다. 넥슨 매각은 10조원을 넘나드는 큰 거래 액수 탓에 인수 의지가 있는 후보자들과의 막판 협상이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 불발은 애초에 큰 거래 액수도 영향을 줬지만, 시장이 바라보는 넥슨의 가치가 실제 덩치만큼 크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실제로 넥슨은 중국내 던전앤파이터에 매출의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지적되어 왔고, 기존 인기 PC 온라인 게임을 제외하면 흥행 신작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넥슨코리아는 지난해 처음으로 영업 적자를 내며 시장에 충격을 줬다. 연이은 신작 실패에 따른 결과였다.

▲ 판교에 위치한 넥슨 사옥. 출처=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넥슨은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최근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우선 연이은 프로젝트 중단 행보가 대표적 예다. 넥슨 매각 무산 소식이 나온 이후 배틀라이트, 프로젝트G, 어센던트 원, 데이브, 네 개의 탑, 페리아연대기 등 6종의 게임이 개발 중단되거나 서비스 종료했으며 올해 전체로 보면 9개의 게임이 접혔다. 특히 페리아연대기는 정상원 부사장이 이끄는 계열사 띵소프트를 통해 8년간 600억원이 넘게 투자한 야심작이었던 만큼 개발 중단 소식에 대한 충격은 컸다. 넥슨이 매우 강도 높은 가지 치기를 단행한 셈이다.

게다가 넥슨은 15년 만에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 불참을 선언했다. 이 또한 매우 이례적이라는 업계의 평가가 나온다. 넥슨은 국내 게임 업계 맏형으로서 매년 지스타에서 최대 규모의 전시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넥슨은 “전시회 불참은 아쉽지만 내실을 다지는 것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변화의 조짐은 핵심 인사의 사퇴에서도 감지된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넥슨의 초창기 핵심 멤버인 박지원 글로벌최고운영책임자(GCOO)와 정상원 개발 총괄 부사장 등 일부 경영진이 넥슨을 떠났다.

대규모 조직개편도 단행됐다. 넥슨은 8월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에 PC와 모바일로 나뉜 사업본부를 하나로 통합하며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도모했다. 또한 넥슨 아메리카에서도 마비노기, 로켓아레나 등 서비스를 담당하는 스튜디오가 폐쇄되는 등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허민 대표 손길, 제2의 던파 신화 나올까

핵심 개발 총괄 인사의 부재와 프로젝트 정리, 대대적 조직 개편 등이 진행된 가운데, 넥슨과 허민 대표의 협업은 단연 눈길을 끄는 변수다. 

우선 허 대표가 던전앤파이터를 탄생시킨 주역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기대는 크다. 던전앤파이터는 허 대표가 2001년 설립한 개발사 네오플에서 2005년 출시한 PC 온라인 게임이다. 그는 과거 수많은 게임 개발 실패를 겪었지만 던전앤파이터로 업계의 신화가 된 인물로 유명하다.

네오플은 2008년 넥슨에 3852억원에 인수됐다. 당시 넥슨 내부에서는 네오플 인수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거셌지만, 던전앤파이터의 중국 시장 성공 가능성을 점친 김정주 대표의 결단으로 거래가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던전앤파이터의 흥행으로 승승장구하던 네오플은 같은해 텐센트와 손잡고 중국에 진출했으며, 이례적인 대박을 터트렸다. 2008년 580억원 수준이던 네오플 매출은 지난해 기준 1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 네오플 실적 추이. 출처=딥서치

넥슨과 원더홀딩스의 파트너십은 허민 대표의 넥슨 개발 참여와 원더홀딩스 자회사 원더피플, 에이스톰의 신작에 초점이 맞춰졌다. 원더피플과 에이스톰 모두 아직 고무적인 성과를 낸 게임은 개발하지 못한 상황으로 파악된다. 원더피플 홈페이지에는 "10년 안에 DAU 10억명인 게임들을 가진 회사로 만들어보자"라는 허민 대표의 목표가 새겨져 있다.

또 최근 조직개편으로 슬림화를 거친 넥슨은 허민 대표에게 운신의 폭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허민 대표가 위기에 빠진 넥슨의 구원투수부터 제2의 던전앤파이터 신화까지 쓸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넥슨은 올해 하반기 모바일 MMORPG ‘V4’를 출시할 계획이다. 다양한 신작을 통해 지속적으로 모바일 MMORPG 시장에 문을 두드린 넥슨은 장기간 히트작이 부족해, 모바일 부문에서 매출 연장에 비교적 약하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V4를 통해 이 같은 우려를 상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