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손님이 없어 허덕이는 대도시 중심가의 일부 호텔 등을 개조하여 고급 요양병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불황의 그늘일까요? 늘어나고 있는 수명을 웅변하는 걸까요? 그 소식에는 정말 어이없는 내용도 전해집니다. 고급 요양병원의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소위 물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가 안가시지요?

그건 바로 요양병원에 올 사람들을 미리 사전 심사를 해서 질병이 있는 사람은 사절하고,

건강하고 경제력 있는 사람들만 입회를 시킨다고 하네요. 그 얘기를 듣고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모두들 목소리를 높였었는데, 이건 휠씬 심한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통상 인생사의 기회를 얘기할 때 많이 하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오고, 기회는 생각보다 늦게 온다’

나이든 분들에게 , 더구나 질병이 있는 어르신들에게는 시간이 그들 편이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시간은 고급 요양원을 사업으로 하는 그들 쪽으로 기우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노인, 노화에 대한 인식들이 그대로 반영된 거라 생각하니 씁쓸해졌습니다.

얼마 전 2차 대전 영웅인 처칠을 새롭게 조명한 전기가 나왔습니다.

처칠하면 불굴의 용기를 지닌 정치인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새로 나온 책의 관점은 좀 다르게 그를 그렸습니다. 그를 격동시키고, 움직인 것은 강력한 투쟁심이었다는 겁니다. 나치의 히틀러, 전제 정권에 대한 강력한 투쟁심으로 내부를 결속시키며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거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그는 1945년 선거에서 충격적으로 패해 총리 직을

내놓습니다. 이때 이미 70세가 넘었음에도 ‘이제 제대로 해보자’고 예의 투쟁심을 발휘, 결국 6년 뒤 총리 직에 복귀합니다. 복귀 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도 4주 뒤에 다시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다시 나서게 됩니다. 공직 은퇴 후 말년에는 죽음마저도 투쟁 상대로 삼아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을 보여주고, 삶을 이끌어 갑니다. 은퇴 뒤에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언론에선 부음 기사를 준비하고, 정부에서는 국장 치룰 준비를 했는데, 그는 입원 두 달 뒤에

들것에 실려 병원을 나섰습니다. 퇴원하는 순간에도 그가 평생 해온 승리의 V자를 그리려고 손가락을 펴려 애쓰는 모습은 많은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처럼 그는

마지막까지 죽음에 굴하지 않고, 그마저도 투쟁 상대로 삼으며 포기하지 않고 엄숙하게

맞섰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과 죽음을 너무 쉽게 연결하는 문화나 태도를 보면서,

처칠이 마지막까지 엄숙히 투쟁했던 그 죽음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추석 명절에 돌아왔으면, 돌아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바로 어른들의 자리, 어르신들의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이고 싶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동네 한 바퀴 산책에 나섰다가,

교회 담벼락에 붙어있는 권면의 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탐험가이며, 또한 순례자이다’

탐험가였음에도 결국 순례자로 돌아가는 우리네 삶을 생각하면

마음이 보다 부드러워질 듯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