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의대 다니는 젊디젊은 후배를 만났다. 그는 잘생겼고 공부도 잘한다. S대 의대 안에서도 성적으로 상위 10% 안에 드는 수재다. 게다가 놀기도 잘 한다. 의대생의 대부분은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지만, 그는 공부할 때도 놀 때도 ‘빡세게’ 하는 사람이다.

젊음의 분출구는 어느 시대에나 항상 존재한다.

후배 이야기를 들어보니 종종 클럽이란 곳에서 논다고 한다. 씨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공간에서 싱그러운 청춘남녀들이 알아서들 같이 춤추고 술마시고 ‘썸’타고 노는 모양이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나이트클럽이라는 곳이 있었다.

소위 부킹은 웨이터가 여성분을 무작위로 남성들에게 데려가 즉석으로 만나게 해주는 ‘즉석만남’을 뜻하고, 부킹녀는 그렇게 알게된 여성이다. 요즘과는 다른 수동적인 방식이다.

그녀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은 바로 그런 나이트클럽의 어느 큰 방이었다.

필자의 청춘남 시절, 친구 녀석 생일파티에 선물을 하나 사들고 쭈뼛거리며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어느 큰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색색 가지 풍선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지인들과 부킹녀들로 정신이 없었다.

생일 축하한다고 선물 건네주고 나서, 멀뚱멀뚱 위스키나 한 잔 기울이고 있었다.

젊었던 필자의 맞은편 멀찌감치에 어색하게 앉아 있는 그녀는 남의 부킹녀였다. 그녀의 눈망울은 참 맑고 컸다. 피부가 좋았고, 뭇 남성들의 로망인 긴 생머리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웨이터가 그 친구에게 그녀를 ‘부킹’해주고 나간 뒤였지만, 후배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시로 일부러 말 한마디 걸지 않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참 미련하게도 그 자리를 뜨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 미련함 속의 순수함이 젊은 나의 맘을 움직였다. 그녀를 예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녀는 영락없는 돌출입이었다. ‘개구리 왕눈이’라는 별명이 반드시 따라다녔을 것 같은 전형적인 돌출입이었다. (나중에 확인한 바, 사실이었다) 입술은 도톰했고 웃을 때 잇몸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런데 사실, 특히 여성의 경우, 눈망울이 크고 입이 돌출된 개구리 왕눈이 스타일의 돌출입은, 돌출입 수술을 통해 좀 더 나아지는 수준을 넘어서 평생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살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다. 돌출입 수술이든, 어떤 얼굴뼈 수술이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조건을 바탕으로 해서 빚어내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얼굴 좀 고치자고 하는 건 결례다. ‘너나 잘하세요’ 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고민을 했다. 그녀에게 돌출입 이야기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도 시간제한이 있었다. 입 큰 개구리를 닮은 그녀가 스스로 무관심의 대상임을 인정하고 그 자리를 뜨는 순간 평생 그녀에게 돌출입 수술에 대해 말해 줄 기회는 없다. 거창하게 말하면, 그녀의 인생이 바뀔 기회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미대 졸업생이었고,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했다. 내 신분을 밝히고 솔직하게 돌출입 수술에 대해 말해주었다.

완전히 잊고 지내고 있던 어느 날, 병원으로 대뜸 그녀가 찾아왔다. 돌출입 수술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내게 돌출입 수술을 받았다. 몇 달 후 병원에 온 수술 후의 그녀를 내가 몰라봤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녀는 대학원생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참석 안하면 회식을 취소해버리는 교수님 이야기나, 고백 해오는 남자 조교, 캠퍼스 안에서 따라온 남학생의 이야기를 하며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사실상 자랑이었다.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기업의 CF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등에 참가해 능력도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이제 웃을 때 입을 가리고 웃던, 매사에 자신 없어 하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필자가 그녀를 다시 본 것은 그로부터 약 1년 후였다. 그녀가 병원에 재방문한 것은 가슴 수술, 즉 유방확대 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필자는 가슴 수술만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아니지만, 필자에게 돌출입이나 얼굴뼈 윤곽수술을 받은 환자 중엔 다른 수술도 받겠다는 분들이 있다. 그녀의 가슴 수술도 해주었다. 요즘엔 어떤 수술에 있어선 아예 다른 성형외과를 소개시켜주기도 한다. 20년 가까이 돌출입수술을 해보니, 오랜 시간 동안 한 가지 수술만 해온 전문의에 대한 신뢰감이 생긴 것이 그 이유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워낙 심성이 착하고 맑은 사람이라 행복이 늘 곁에 함께 할 것이다.

인생이란 우연의 연속이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번 거론된 한 문학작가의 ‘4월의 어느 아침에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라는 짧은 단편 속에서, 두 주인공은 안타깝게도 결국 말없이 엇갈려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만다.

젊었던 필자가 그 때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의 모습이 아닌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녀를 개구리 공주의 마법에서 풀어주지 못한 그 순간이 평생 안타까움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희박한 가능성의 우연으로 필자를 마주친 일, 필자로부터 돌출입 수술을 받게 된 인연은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그녀는 남의 부킹녀로 나타나서 환자가 되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생각해보면 진료실에서 매일 새로운 환자를 만나고, 서로를 모르고 살았던 환자가 의사에게 수술을 받는다. 그리고는 서로의 인생에서 사라진다. 사라져야 한다. 특히 돌출입수술로 아름답게 되었다면 다시 볼 일이 없어진다. 일생에 단 한 번, 명작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