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권유승 기자] 실손보험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이다. 치솟는 손해율에 실손보험은 더 이상 보험사들에게 수익을 안겨주는 상품이 아닌 손해만 안 봐도 다행인 상품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의무보험이나 정책성보험도 아닌 민간 보험상품에서 이 같은 반응이 주를 이룬다는 것 자체가 실손보험이 보험사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실제로 실손보험 손해율은 적정기준을 훌쩍 넘어선지 오래다. 실손보험이 도입된 최근 10년 중 절반은 손해율 문제가 지속적으로 지적돼왔다. 실손보험을 판매하고 있는 손해보험사 13곳의 올 상반기 손해율은 129.6%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6%포인트 증가한 수치로 업계에서 보는 적정 손해율 70~80% 수준을 크게 웃돈다.

손해율이란 보험사에서 거둬들인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을 말한다. 즉, 손해율이 129.6%라는 것은 보험사가 보험료를 100원 받아 보험금 지급과 사업비로 129원을 지출했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보험사는 실손보험을 팔면 팔수록 적자인 것이다.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치솟고 있는 원인으로는 과잉진료가 꼽힌다. 의료계가 수익을 높이기 위해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환자들에게 과도하게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환자들의 도덕적해이 문제도 있다. 치료비가 비싼 비급여 진료를 상습적으로 받아 과잉 청구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근본적 원인은 차치해 두고, 악화된 손해율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선 보험료 인상이 상책이다. 하지만 이미 3천만명 이상이 가입해 ‘국민보험’으로 여겨지는 실손보험은 소비자 물가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 손실을 보전할 만큼의 보험료 인상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렇다보니 일부 외국계·중소형 보험사에서는 실손보험 판매 중단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보험업계와 정부는 실손보험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수익성 악화에 성장동력을 잃고 있는 보험업계가 언제까지 이 같은 손해를 감내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유력시 되고 있는 방안은 실손보험료 차등제가 거론된다. 실손보험료 차등제의 골자는 청구금액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부과 하겠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는 일부 가입자들이 실손보험 손해율을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과잉진료와 과잉청구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결과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의 60%만이 보험금을 타간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실손보험 보험금을 타간 60%의 가입자 중 대부분을 차지할 선량한 보험이용자들이 실손보험료 차등제로 인한 피해를 볼까 우려된다. 청구금액에 따라 보험료가 차등화 되면 보험료 인상이 두려워 꼭 필요한 병원진료도 꺼리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비를 보전하기 위해 실손보험에 가입한 것인데, 주객전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을 살펴보면 보험에 가입돼있더라도 사고 발생 시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사례가 허다하다. 개인이 사비로 처리하거나 수리가 필요하더라도 그냥 방치하는 것이다. 이는 자동차보험 보험료가 보험금 청구금액에 따라 할증되는 구조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실손보험에서도 나타난다면 환자들의 병을 키워 심각한 사태에 이르게 될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실손보험이 국민보험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합리적인 보험료로 실제 부담한 의료비를 보장한다는 가성비 측면이 크다. 그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손해율을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이 늦지 않게 마련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