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5G 시대를 맞아 네트워크를 가진 통신사들의 존재감이 ICT 영역 전반으로 강하게 뻗어나가고 있다. 막강한 자본력과 기반 인프라를 가진 통신사들의 '탈통신' 전략이 초연결 시대를 맞아 탄력을 받으며 콘텐츠 시장이 출러이는 등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마냥 고무적인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와 눈길을 끈다. 다양성의 실종 시대를 맞아 ICT 업계 전반의 '긴장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탈'통신 속속 성과
지금까지 통신사들은 통신 네트워크, 즉 기간 인프라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 사업자에게 '길'을 열어주며 성장했다. 통신사들이 고속도로를 더 넓고 길게 닦으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이들이 대거 몰리고, 콘텐츠 사업자들은 곳곳에 다양한 음식을 파는 휴게소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고속도로를 개설하고 운영하는 통신사들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이들과 휴게소 사업자들에게 이용료를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고속도로를 운영하는 통신사들은 정책적 변화를 꾀하게 됐다. 단순히 고속도로를 확장하고 길게 연결하는 것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휴게소를 운영하는 이들의 수익에 관심이 집중됐다. 

마침 세상도 초연결 시대로 넘어가며 모든 것이 이어지는 시대가 됐다. 연결 그 자체를 업으로 삼은 통신사들은 직접 휴게소를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이른바 통신사들의 '탈'통신 전략이다.

통신사들의 탈통신 전략은 초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플랫폼 사업자에 익숙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연결하는 기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에는 익숙했으나, 휴게소를 운영하며 자동차 운전자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신사들은 시간이 지나며 기간 인프라를 직접 운영한다는 강점과, 콘텐츠 관련 노하우를 파악하며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5G 시대를 맞아 통신사들의 탈통신 전략은 더욱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5G 경쟁에 있어 단순한 네트워크 인프라 강점만 내세우면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어필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상태에서, 경쟁의 판도가 실질적인 5G 서비스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콘텐츠 영역으로의 빠른 확장이 이뤄졌다. SK텔레콤은 지상파와 만나 옥수수와 푹의 결합을 통해 웨이브를 끌어내고 있으며 티브로드 인수에 나서고 있다.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의 손을 잡고 CJ헬로 인수에 집중하고 있으며 KT도 IPTV 1위 사업자의 저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이 외에도 증강현실 및 가상현실에 대한 강력한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SK텔레콤은 아예 T맵을 중심으로 모빌리티 시장 공략을 전개하고 있으며 통신3사 모두 인공지능 스피커까지 출시했다. 스마트홈, 스마트 건설 등 다양한 접점도 탄생하고 있다.

클라우드 게임과의 만남도 눈길을 끈다. 애플의 아케이드, 구글의 스태디아 등이 속속 준비되는 상황에서 SK텔레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LG유플러스는 엔비디아와 만났다. 5G의 강력한 네트워크 강점을 게임 콘텐츠 시장에서 확실하게 발휘한다는 각오다.

▲ SKT의 클라우드 게임 공략이 시작된다. 출처=SKT

통신사 제국 만들어지나
통신사들은 5G라는 기간 인프라를 직접 운영하면서, 예전에는 위를 흐르는 콘텐츠에 대가를 받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직접 콘텐츠 플레이어로 뛰며 강력한 생태계 조성에 대한 야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제 판만 깔아주며 고객들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판에 뛰어들어 고객과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개척한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종속현상이 벌어진다. 플랫폼 사업자인 통신사들이 콘텐츠 사업을 강하게 틀어쥘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아가 많은 ICT 경쟁력도 통신사를 중심으로 전개될 소지가 커졌다. 이는 통신사의 존재감 강화로 이어지며, 말 그대로 통신사가 콘텐츠와 플랫폼을 석권하는 '통신사 제국 시대'로 이어질 수 있다.

통신사들은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5G 시대를 맞아 대두되고 있는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대표적이다. 통신사들은 자사가 구축하거나 만든 콘텐츠 서비스에 망 경쟁력을 집중시켜 고객들을 더욱 강하게 끌어당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궁극적으로 망 중립성 약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통신사들이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며 자사가 가진 네트워크 인프라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통신사들의 탈통신 전략 자체를 막을 수 없지만, 통신사들이 통신 네트워크라는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콘텐츠 시장을 공략하며 지나친 권력의 쏠림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심지어 네트워크 슬라이싱과 같은 자사 콘텐츠 제일주의 전략은 일반 콘텐츠 사업자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 LG유플러스의 U+5G 갤러리가 보인다. 출처=LG유플러스

특히 최근은 망 이용료를 둘러싸고 일반 콘텐츠 사업자, 즉 CP의 어려움이 배가되는 중이다. 2016년 상호접속고시 개정으로 통신사가 IT 기업, 즉 CP의 망 비용을 지속해서 상승시킬 수 있는 우월적 지위를 고착화한 가운데 일반 콘텐츠 사업자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간 인프라를 가진 통신사들의 권한은 더욱 강해지고, 일반 콘텐츠 사업자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다.

물론 시대와 고객의 선택이 탈통신 전략의 통신사 로드맵을 선택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통신사들에게 유리하게 굳어지는 콘텐츠 및 플랫폼 시장은 그 자체로 건전한 경쟁의 기회를 박탈하고, 나아가 전체 ICT 산업의 다양성을 훼손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IT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톡이 성공한 것은 통신사들의 메시지 인프라보다 카카오톡이 더 훌륭했기 때문이며, 이는 당시만 해도 좋은 IT 서비스가 공정한 기회에서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라면서 "막강한 플랫폼을 가진 통신사들이 자사에 유리한 지형에서 콘텐츠 시장을 더욱 압박한다면, 시장의 획일화를 끌어낼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