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조-내적시선, 174.5×140㎝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은 온통 인공 구조물로 가득 찬 도시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유년과 청춘기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모여들며 나날이 첨단 대도시로 변해가는 서울의 에너지를 맘껏 얻었으면서도 아직까지 자연과의 교감에 서두르지 않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

서울의 저 멋진 건물에 감탄사를 지르는 순간, 그 자리에서 자라던 나무와 풀과 꽃의 풍경을 기억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잘 정돈된 한강변 대로를 자동차로 가고 오면서도 역시 나는 내 유년의 무성한 갈대밭에 지던 석양의 노을빛과 한겨울 꽝꽝 소리를 내지르며 파랗게 얼음이 얼던 강의 모습을 떠올린다.

서울은 그제나 이제나 모두 아름답다. 그 자연과 인공의 거리 사이에 내 삶이 펼쳐져 있다. 내가 구상적 전통이 강한 한국화를 배우고서도 추상에 이끌린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자연만으로도 그렇다고 인공만으로도 나의 삶은 그려지지 않는다. 자연과 인공이 겹쳐지는 어느 자리엔가 내가(한국화가 송수련,한지화가 송수련,송수련 화백,宋秀璉,SONG SOO RYUN,송수련 작가,Hanji Painter SONG SOO RYUN,종이회화 송수련,한지작가 송수련,여류원로화가 송수련, KOREA PAPER ARTIST SONG SOO RYUN, KOREAN PAPER ARTIST SONG SOO RYUN)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삶의 자리가 거대한 인공의 공간으로 바뀌어갈수록 내가 더욱 자연에 빠져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단순히 취향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내 존재의근원이기 때문이다. 우선 나 자신이 자연의 한 요소로서 나고 자라 늙고 죽는 길 위에 있다.

자연은 지금의 내가 정지된 확고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또렷하게 말해준다. 나는 과거에서 와서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한 생명이다. 한 포기의 풀이, 한그루의 나무가 깊은 산의 샘에서 솟아나와 저기 거대한 한강에까지 도달한 물이 그러하듯 나도 나날이 변하여간다.

생명은 그래서 움직임인데, 나는 내 존재에 스며들어 있는 그 시간의 깊이를 거기에 새겨진 삶의 의미와 표정을 그리려고 해왔다. 그동안 내 그림을 수놓은 테마들이 성취 여부와 별개로 모두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다.

△송수련/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