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덕호 기자] 비료공업에서 시작했던 우리 석화산업은 중화학공업, 정밀화학공업 등 다양한 분야로 발을 넓혔다. 이 기간 경쟁력 높은 기업들이 생겨났고,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한계도 있다. 주력 제품이 범용품에 머물러 있고, 중국·중동 등 후발주자들의 투자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기술수준 상승과 자급률이 동반 상승하고 있는게 문제다.

이에 대한 석화업계의 대응이 시작됐다. 1일 정유사와 화학사에 따르면 모두 각자의 영역을 강화, 에틸렌, 의료·전자재료, 미래차 소재 등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그룹사 내부의 소재 개발 역량을 결합하고, 사업 경쟁력과 경영 효율성을 강화를 위한 지분투자와 자회사 합병 등 구조개혁도 시작됐다.

▲ LG화학 여수 NCC 전경. 사진=LG화학

◆ 블루오션 찾는 화학사, 레드오션 피하는 정유사

화학업체들의 변화는 기존 주력 품목이었던 올레핀(에틸렌, 프로필렌의 재료) 부문의 경쟁 과열과 불확실한 수익성, 원가 경쟁력 약화 등의 요인이 꼽힌다.

현재 국내에서만 LG화학(245만톤), 롯데케미칼(233만톤), 여천NCC(195만톤), 한화토탈(140만톤) 등 1000만톤에 가까운 에틸렌이 생산되고 있고, 미국과 중국 업체들의 설비 증설도 잇따르면서 경쟁이 심화됐다. UAE 48조원 규모 정유단지 조성을 시작했다.

올레핀의 원자재인 ‘납사’를 판매하던 정유3사가 이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이들은별도의 원자재 납사를 구매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NCC(원유 기반 올레핀) 부문 원가 경쟁력에서 앞선다.

설비산업인 만큼 후발주자들의 경쟁력이 앞설 가능성도 있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 모두 납사는 물론 LPG, 부생가스 등을 원료로 사용하는 설비를 도입할 예정이고,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롯데케미칼 역시 설비 도입을 진행중이다.

설비가 준공되는 시점에는 GS칼텍스(에틸렌 70만톤, PE 50만톤), 에쓰오일(에틸렌 및 PE 150만톤),현대오일뱅크(PE 75만톤, PP 40만톤)이 추가적으로 시장에 나온다.

이에 업계의 주력 품목인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8년 879만톤에서 2023년 1288만톤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 SK이노베이션 FCW 생산 프로세스. 사진=SK이노베이션

◆ 미래 먹거리는 '소재', CPI·EP에 집중

미래 디스플레이 시장이 폴더블, 롤러블 등 다양화 될 것으로 기대되면서 차기 디스플레이에 사용될 투명폴리이미드(CPI)에 대한 관심도 크다. 디스플레이 액정을 보호하면서도, 수십만번 이상 접었다 펼 수 있는 플라스틱 소재다.

특히 기대되는 시장은 폴더블폰 분야다. ‘디스플레이 서플라이 체인 컨설턴트’는 2022년에는 폴더블폰 시장이 연 6300만대 규모로 확대되고, 관련 PI 시장 규모는 1조2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 분야에는 SKC와 SK아이테크놀로지 2개사를 비롯해 코오롱인더스트리, LG화학이 진출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CPI(Colorless PI)’라는 자체 브랜드 상표를 보유하고 있고, SK 아이테크놀로지 역시 ‘FCW(Flexible Cover Window)’라는 제품 개발을 마쳤다. SKC 역시 TPI(Transparent PI)라는 상품의 등록을 추진주이다.

▲ 자동차 내·외장재에 사용되는 EP / 사진=SK이노베이션

◆ 잘 되는 사업은 더 잘되게…고부가 플라스틱 잡중

기존 플라스틱보다 기계적 강도, 내열성, 내마모성이 뛰어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하 EP)’의 개발도 활발하다. 특히 ‘미래차’ ‘친환경’ 등 친환경 이슈가 있는 제품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

기술 개발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부문은 전기차 분야 EP다. SK그룹 3사(SK종합화학, SKC, SK케미칼) 를 비롯해 LG화학, 삼양사가 진출, 자동차 부품 소재 시장을 노리고 있다.

LG화학은 EP소재를 적용한 자동차 엔진 부품, 내외장재, 고성능 합성고무(SSBR)가 포함된 타이어 등 첨단 소재의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글로벌 화학사인 바스프의 계열사 ‘솔베이’가 보유했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사업부 인수를 타진하는 등 EP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SK종합화학 역시 자동차부문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 지난해 8월에는 자동차 범퍼, 대시보드 등 자동차 내·외장재에 적용할 수 있는 고결정성 플라스틱(HCPP)을 개발하기도 했다. 기존 제품 대비 적은 양으로도 동일한 강도를 낼 수 있고, 이를 통해 중형차 한 대당 10KG의 무게 감축이 가능하다.

SK케미칼은 친환경 무염소 EP 제품인 ‘에코트란’을 비롯해 ‘스카이퓨라’ ‘스카이펠’ 등 EP제품군을보유하고 있다. SKC와 공동 개발한 PCT 고부가 필름은 기아차 니로의 필름형 케이블에 적용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도 했다.

SKC는 생 분해성 플라스틱 개발에 도전한다. 샘플 제작은 3~4년 전 완료했다. 생 분해성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 제품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지만 매립 등 퇴비화 조건이 마련될 경우 자연계에 존재하는 미생물에 의하여 생분해 되는 친환경 제품이다.

 

◆ 미래 위한 ‘선택’과 ‘집중’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등 빅2 화학사는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체질개선을 시작했다. 특수소재 부문 자회사들을 흡수합병하고, 해당 부문의 시장 확대에 나선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2일 롯데첨단소재를 합병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PC, 휴대폰 등 IT기기에사용되는 폴리카보네이트(PC), 고부가 플라스틱(ABS)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업체다. 합병이 완료되면 롯데케미칼은 상공정과 하공정 모두를 수행하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갖게된다

한화케미칼도 내년 1월을 목표로 자회사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의 합병을 추진한다.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 역시 EP 등 특화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업체다. 이번 합병으로 한화케미칼 역시 화학부문 수직계열화를 이룬다.

지난해에는 종속회사인 한화첨단소재가 한화큐셀코리아를 흡수합병해 태양광과 첨단소재 부문의경쟁력 강화에 나선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