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노마드(Energy Nomad)를 창업한 박혜린 대표. 그 회사의 직원들은 대개 그녀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들이다.    출처= 뉴욕타임스(NYT)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 중 하나에서 마이크로칩과 스마트폰으로 유명한 산업 강국으로 변모하면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념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글로벌 엔터프레너십 모니터(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근로 여성 중 12% 이상이 새 회사 창업에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불과 2년 전의 5%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여성들에 대해 비슷한 편견을 갖고 있는 일본의 경우 여성 창업은 4%에 불과하다.

지난해 57개 국가에 대한 마스터카드 보고서(Mastercard Report)도 여성 기업가 배출에서 한국이 가장 두드러진 나라 중 하나라고 보고했다. 한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기업의 4분의 1이 여성 창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NYT)가 29일(현지시간), 가장 보수적인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서 대기업의 유리천장에 막힌 여성들이 직접 창업에 나서고 있다며 4명의 여성 기업가를 소개했다.

새로운 물결, 젊은 여성들의 창업

에너지 노마드(Energy Nomad)는 전형적인 한국 회사들처럼 직원 대부분이 남성이다.

대부분 40대인 엔지니어들이 짙은 색 재킷과 검정색 바지를 입고 서울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공장의 생산 라인과 사무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 젊은 여성이 있다. 그러나 겉모습만으로 그녀를 판단하면 안 된다. 그녀는 이 회사의 홍일점인 33세의 박혜린 대표다. 그녀는 2014년에 에너지 노마드를 설립했다.

“내가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 격려의 계기가 된다면 좋겠지요. 더 많은 젊은 여성들이 미래의 사회에서 나와 같은 길을 걷기를 바랍니다."

박혜린 대표는 에너지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이용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창업했다. 그녀는 창업의 길을 택한 한국 여성의 새로운 물결 중 하나다. 남성 중심의 기업문화 속에서 기업 사다리를 오르는 데 좌절했던 그들이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한국 기업의 관리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10% 안팎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게다가 남녀 임금 격차는 가장 크다.

이러한 편견은 창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기업을 창업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위험한 시도지만, 한국 여성들의 창업은 남성 은행가, 임원, 심지어 직원들까지도 진지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 맞춤현 란제리 회사 럭스벨(Luxbelle)을 창업하며 창업 대열에 합류한 김민경 대표는 “한국에서 여성 기업가가 되려면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출처= 뉴욕타임스(NYT) 캡처

맞춤형 란제리 회사 럭스벨(Luxbelle)을 창업한 35세의 김민경 대표는 “한국에서 여성 기업가가 되려면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의 통상적인 성공 기준으로 볼 때, 그녀는 한국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삼성 그룹의 계열사에 취직하면서 이미 첫 단계 성공을 이룬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삼성의 관료주의 분위기에서 자신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공공연한 차별에 직면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매우 낮은 유리 천장에 부딪힐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2014년 삼성을 그만두고 1년 뒤 파트너와 함께 럭스벨을 창업했다

"전통적인 회사에서 여성으로서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고위직까지 오르지 못할 바 에야 빨리 나가서 내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회사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슈퍼우먼’이라는 고정관념

이런 유형의 기업가 정신은 한국에서 매우 드문 일이었다. 여전히 보수적인 가정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정부 기관이나 대기업에서 예측 가능한 일자리를 얻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경제를 지배하는 ‘재벌’이라 불리는 대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위해 만들어진 금융시스템에서 벤처 캐피털이란 말도 생소했다.

1990년대 후반 전세계적으로 닷컴 붐이 일면서 상황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기업가정신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용인되고, 자금 융통 수단도 넓어졌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태도도 서서히 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여성(아내)들이 육아와 가사 책임의 부담을 짊어지길 기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방향제 회사 마크 웨일(Mark Whale)의 창업자 이지향 대표는 한국에서 여성의 직업적 목표에 대한 이해가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에는 가족과 직장 생활을 동시에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슈퍼우먼이라는 개념이 있지요.  그런 여성이 모든 여성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여성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안기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28세의 이지향 대표는 자신이 개발한 방향제를 판매하기 위해 지난해 회사를 창업했다. 서울의 여성창업지원센터의 한 책상에서 온라인으로 자동차 가죽시트용 방향제를 팔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남편과 나는 우리의 미래를 함께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과 창업의 갈림길에 섰을 때 남편이 많이 격려해 주었지요. 나는 내가 (여성 창업이라는) 트렌드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 방향제 회사 마크 웨일(Mark Whale)의 창업자 이지향 대표는 한국에서 여성의 직업적 목표에 대한 이해가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다.    출처= 뉴욕타임스(NYT) 캡처

"남자들은 나를 대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아"

그러나 한국의 여성 기업가들은 여전히 여성 고위 은행가나 임원이 거의 없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럭스벨의 김민경 대표는 거의 전부가 남성인 벤처 투자가들과 란제리를 의논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 그녀는 너무 자주 거절당하자 "자신감이 바닥을 쳤다"고 말했다.

"그들은 맞춤 브래지어가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금융자문회사 에임(AIM)의 이지혜 대표는 월가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다 한국에 돌아와 2015년에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임을 창업했다. 이대표는 현재 6명으로 구성된 팀과 서울 북부의 인기 있는 쇼핑 구역에 있는 위워크(WeWork) 사무실에서 ‘모바일 앱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하며 4200명의 투자자들로부터 4000만 달러(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관리하고 있다.

이대표는 여성 사업가로서 남성 직원을 관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대표는 회사의 현지 전문성을 보강하기 위해 한국의 증권사에서 간부직 매니저를 고용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매니저는 상사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한번은 자신이 전 직원 앞에서 권위가 훼손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개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그는 사과했지만 자신의 불편함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내가 여성 상사 밑에서 일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말하더군요.”

결국 그 직원은 3개월 후에 회사를 떠났다.

“한국의 많은 남성들은 권력 있는 여성, 결정을 내리는 여성, 혹은 파트너로서 여성을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성 상사를 처음 보았을 테니까요.”

▲ 금융자문회사 에임(AIM)의 이지혜 대표는 “한국 남성들은 여성 상사에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다.   출처= 뉴욕타임스(NYT) 캡처

2018년에 에너지 노마드는 전년 대비 3배인 280만 달러(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박혜린 대표는 최근 한국의 에너지 회사 SK 이노베이션 직원들로부터 16만 5000달러(2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두 명의 파트너와 함께 제품을 디자인을 마쳤는데 박대표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그것을 어떻게 제조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중대한 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박대표는 공장 운영 경험이 있는 기술자들을 고용했다. 한국에서 이런 종류의 근로자들은 대개 중년 남성이다.

결국 문화 충돌이 발생했다. 젊고 눈이 밝은 여성 기업가와 나이 들고 위험을 회피하는 생산 기술자들 사이의 갈등이 회사를 분열시켰다. 급기야 그녀의 원래 파트너들이 떠나는 일이 발생했다. 박대표는 대부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13명의 남성 직원을 직접 관리해야 했다. 한국의 젊은 여성으로서는 매우 특이한 상황에 처한 박대표는 고립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직원들과 대등한 모습을 보이려면 최대한 빨리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매일 아침 그런 생각을 하며 일어났습니다. 전체적으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내가 존경할 만한 역할 모델이나 여성 리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박대표가 회사의 운영담당 간부와 대화를 할 때 그 간부는 최고경영자(CEO)에게 합당한 존칭어를 쓰지 않고 박대표를 마치 젊은 부하직원 대하듯 취급한다.

"남자들은 내가 CEO인데도 나를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박혜린 대표는 창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과 차를 팔 정도로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여성으로서) 이 사업을 하는 것은 매우 외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좋은 점은, 내가 개척자가 되어 우리의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