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9일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지난해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월 및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하고 다시 사건을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1심과 마찬가지로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전 이름 최순실)에게 공여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16억 2800만원의 후원금과 최씨의 딸인 정유라의 마필 구입대금 34억 1797만원 상당 합계 50여억 원이 다시 뇌물액으로 인정된 것이다. 이로써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건넨 뇌물의 액수는 86억 여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또 다른 쟁점이었던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을 건네며 ‘삼성그룹 승계작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도 인정되었다. 그 동안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1심 및 2심, 이 부회장의 1심과 달리 이 부회장의 2심은 ‘삼성그룹 승계작업’에 대한 ‘부정한 청탁’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이 사건은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승계작업을 위해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일가에 부정한 청탁을 한 것’으로 사실관계가 일관성 있게 정리된 것이다.

이제 공은 다시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으로 돌아갔지만, 이전의 원심법원과 비교해 재판부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의 여지는 매우 협소하다. 이른바 파기판결의 ‘기속력’에 따라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환송한 경우 상고심의 판단은 하급심을 기속 혹은 구속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법원은 상고심 판결의 파기 이유가 된 사실상의 판단도 기속력을 가지고(대법원 2009.4.9.선고 2008도10572 판결), 사실관계의 변동과 같이 기속력이 배제되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파기판결과 다른 판단을 할 수 없다(대법원 2012.5.10.선고 2012도2496 판결)는 입장이어서 원심법원은 이번에 대법원이 판단한 사실관계에 기초하여 판단을 받게 된다.

- 이 부회장은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구속까지 될 것인가?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로 이 부회장이 파기 환송된 원심에서 다시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는 2017년 8월 선고된 1심과 대법원에서 각 선고된 판결의 내용이 비슷하기 때문인데, 현재로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대법원이 이번에 이 부회장이 제공한 뇌물액을 86여억 원으로 인정함에 따라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대한 횡령액 역시 그 만큼 늘어났다는 것이다. 횡령액의 경우 그 이득액이 5억 원 이상일 때부터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특히 이득액이 50억원을 넘어가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의 법정형 적용을 받게 된다(제3조 제1항 제1호).

50억 원 이상의 횡령액에 대한 특경법 법정형은 최하한이 5년 이상의 징역이므로 만약 재판부가 선처를 베푼다면 재판부는 5년의 징역형을 선택할 것이다. 실제로 1심 당시 이 부회장이 5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만약 이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를 노린다고 하면, 이 부회장으로서는 반드시 원심 법원의 작량감경을 이끌어내야 한다(형법 제53조).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을 대상으로 1년 내지 5년의 유예기간을 주는 것이고(형법 제62조), 5년의 징역형을 작량감경하면 징역형의 기간이 2년 6월로 줄어들어 3년 이하의 징역형이라는 최소한의 요건은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까지 받기 위해서는 이처럼 작량감경을 받은 상태에서 양형상 참작사유가 있어 집행유예를 선고할만한 사유가 있음을 보여야 하는데(형법 제62조), 파기환송된 원심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제시하고 있는 집행유예 사유로서 이 부회장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뇌물을 공여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압력 등에 의해 소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하였다는 점, 오로지 회사 이익을 목적으로 하였다는 점 등을 강조해야 하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강압에 못 이겨 마지못해 뇌물을 건넸다기보다는 경영승계라는 사익적인 목적으로 뇌물을 건넸다는 사실관계가 확정되어 더 이상 이 같은 집행유예 참작사유를 주장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사정을 고려해 선처를 해줄지는 앞으로 두고 볼 문제지만,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는 짜고 비틀어야 겨우 집행유예를 노려볼만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물론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된 원심에서 재판을 받는다 하더라도 도주우려 등 특별한 구속사유가 없는 한 구속이 되는 것은 재판 중이 아닌 선고 시점일 것이므로 만약 이 부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된다 하더라도 항소심 선고시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 부회장은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이 노심초사 잠 못 드는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 이번 대법원 판결, 앞으로 삼성그룹과 재계에 어떤 영향 미치나?

만약 이 부회장이 이번 파기환송심을 잘 이겨낸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의 파고를 다시 한 번 넘어야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은 제일모직이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통해 삼성물산과 불공정한 합병을 하였다는 것이 주요 골자인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노력이 실제 있었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관계로 확정됨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가 곧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의 일부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로서는 관련 수사에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대법원 판결의 ‘불똥’은 비단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뿐만이 아닌 다른 대기업에도 튈 가능성이 높다. 가령 이번 대법원 선고 과정에서 언급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 롯데면세점 특허 재취득과 관련해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건넸다는 혐의로 1심 선고에서 법정구속 되었다가 지난해 10월 박 전 대통령이 적극 요구해 수동적으로 응했다는 판단 하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와 있는 상태인데, 물론 이 부회장과는 사실관계 자체가 완전히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선례삼아 신 회장도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이 아니라 롯데면세점 특허 재취득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대등한 관계에서 ‘청탁’했다는 판단을 내리는 순간, 신 회장 역시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최근 세계경제의 침체, 불안정한 한일관계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재계로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정계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가에 대한 또 하나의 정치적 리스크를 안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