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쉬트 클럽> 제시 에이싱어 지음, 서정아 옮김, 김정수 감수, 캐피털북스 펴냄.

2001년 세계 최대 에너지기업 ‘엔론’의 대규모 회계부정이 드러났다. 당시 미국 연방검사들과 연방 증권거래위원회(SEC) 변호사들은 사건의 전모를 철저히 파헤쳤다. 엔론은 최고 로펌의 변호사들을 선임해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법정에서 패배했다. 주범 제프리 스킬링 CEO는 12년 징역형이 확정됐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달랐다. 전 세계에 심대한 피해를 초래했는데도 미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 고위 간부 가운데 ‘부정행위’로 기소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무엇보다 기소 과정에서 연방검찰의 사명감이나 정의 추구 의지는 볼 수 없었다. 제약회사, 거대 테크놀로지 기업, 자동차 제조기업들의 범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미국 법무부 연방검찰의 기소의지와 역량이 약화되는 과정과 원인을 집중 분석한다. 이를 위해 법무부에서 지난 15년 동안 일어난 기소 실패, 재판 패소 사례를 살피면서 특히 내부 조직문화의 변화에 주목한다.

엘론 사건 직후인 2002년 1월 제임스 코미가 뉴욕 맨해튼 남부 연방검찰청 58대 검사장이 되었다. 직무 개시 몇 달 후 코미는 형사국 검사들에게 인상깊은 연설을 했다. 맨해튼 남부의 올드 코트하우스를 가득 채운 검사들은 대부분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엘리트들이었다.

코미는 연설을 시작하면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여러분이 기소한 사건 가운데) 무죄 평결이나 불일치 평결을 한 번도 안 받아본 사람 있나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검사가 자랑스럽게 손을 들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코미가 말했다. “내가 여러분을 부르는 명칭이 있어요. 여러분은 ‘겁쟁이 클럽(Chickenshit Club)’ 회원입니다” 코미는 패소가 두려워 기소를 꺼리는 연방검찰의 안이한 조직문화를 질타한 것이다.

코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겁쟁이클럽 회원들은 갈수록 늘었다. 연방검사들은 재판에서 질 경우 자신의 명예나 미래의 일자리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까봐 범죄자들을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 대신 검사들은 벌금을 내도록 유도했다. 기업들은 기꺼이 수표를 끊어 주었다. 이에 대해 연방 정부는 정의가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언론도 엄청난 규모의 벌금이라며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범죄자들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기업이 낸 벌금은 결국 주주들의 돈이었다.

실제로 2001년 이후 대기업관련 기소가 250건이 넘었지만 대부분 기소가 아닌 합의로 종결됐다. 화이트칼라 범죄에 관한한 대형 로펌들은 연방검사들과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공생관계가 되었다.

책에는 연방 검사와 SEC 변호사 대다수가 ‘겁쟁이 클럽’의 회원으로 전락해 가는 과정에서도 정의를 위해 외로운 투쟁을 벌이는 연방 검사 폴 펠티어, SEC의 변호사 제임스 키드니, 연방 판사 제드 레이코프를 소개한다. 그들을 통해 법무부가 과거의 역량을 회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저자는 금융전문 언론인으로서 ‘프로퍼블리카’의 선임 기자다. 이 책은 2018년 금융 저널리즘 도서 최우수상(Winner of 2018 Excellence in Financial Journalism Book Awards)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