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대법원은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 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사건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고등법원으로 보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당장 대법원의 판결로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 씨에게 건낸 뇌물액과 횡령액이 2심때보다 더 늘어났다. 2심에서는 재판부가 뇌물이 아니라고 봤던 말 3필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이 뇌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형량이 늘어나 추후 법정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린 이 부회장

이 부회장은 2017년 8월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받았으나, 지난해 2월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두 판결이 달라진 것은 공여된 뇌물의 성격과 뇌물로 제공된 것으로 알려진 말 3마리의 소유권에서 법원의 판단이 갈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1심에서는 이 부회장이 전형적인 정경유착 범죄를 저질렀으며 포괄적 경영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이 적극적인 뇌물 공여로 이어졌다고 봤다.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한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 대해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을 받은 최지성 전 삼성 미전실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은 각각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또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김 재판장은 범죄사실에 대해서 "삼성물산 합병에 관련해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와 관련이 있다"며 "삼성측이 박 전대통령과 최순실 공모해 정유라의 승마 지원이 뇌물이라는 점을 인식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김 재판장은 "이재용이 승마지원에 관여한 점이 인정되고 박 전대통령도 승마지원 과정을 알고 있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최순실에게 건너간 총 77억원중 코어스포츠에 지원한 36억원과 정유라에게 지원한 36억원 등 72억원은 뇌물 제공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77억원 가운데 64억원에 대해서는 횡령 혐의를 인정했다. 이로써 국외 재산도피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로 판결했다.

삼성은 충격에 빠지며 휘청였다. 당장 미국의 블룸버그는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 가능성에 의문을 던진 판결”이라고 긴급 타전했으며 미국의 매트 와인버그 전 중소기업청 수석고문(오바마 행정부)은 미국의 허핑턴 포스트에 기고를 통해 “삼성전자가 제2의 소니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의 판단을 달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는 지난해 2월 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은 구속 1년 만에 풀려났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 대해 "삼성의 후계자이자 삼성전자 부회장, 등기이사로서 이 사건 범행을 결정하고 다른 피고인들에게 지시하는 등 범행 전반에 미친 영향이 크다"면서도 "대통령의 승마지원 요구를 쉽사리 거절하거나 무시하긴 어려웠던 점, 수동적으로 범행에 이르렀고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혐의가 2심에서는 대부분 무죄가 됐다. 2심 재판부는 포괄적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재단 출연금도 뇌물이 아니라고 봤다. 특검이 재단 출연금을 뇌물로 규정하며 일반 뇌물죄와 제3자 뇌물죄 모두 포함해 기소했으나 무위로 돌아간 셈이다. 거의 대부분의 대기업이 재단에 출연금을 냈기 때문에, 이 지점이 무죄가 된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정유라 승마지원에서 마필제공에만 일부 뇌물죄를 적용했을 뿐이다. 논란을 일으킨 0차 독대로 인정되지 않았고 국회위증혐의도 무죄다.

즉, 1심에서는 이 부회장의 뇌물과 둘러싼 논란을 두고 전형적인 정경유착이라는 판단이었으나, 2심에서는 정권의 강압에 대한 수동적 뇌물 제공으로 봤다는 뜻이다. 여기에 삼성이 뇌물로 제공한 말 3마리의 소유권을 2심에서는 삼성에 있다고 봤다. 최순실 씨가 딸인 장유라에게 말을 주며 “너의 것인 것처럼 타라”고 한 대목은, “너의 것이 아니다”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1심에서 뇌물로 산정한 34억원은 2심에서 해당사항이 아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죄는 횡령금액이 50억원 이상이면 하한형이 징역 5년이며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2심에서 말 구입비가 뇌물에서 제외되며 이 부회장 집행유예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인 16억2800만원에 대한 제3자 뇌물 혐의 및 허위 지급신청과 예금거래 신고서로 78억9430만원의 해외 자금 송금을 혐의는 1심에서 유죄였으나 2심에는 역시 무죄로 결론났다.

그러나 29일 대법원의 판결로 이 부회장은 어려운 상황에 몰리게 됐다. 2심에서 이 부회장이 받은 뇌물 제공 혐의는 승마지원 용역 대금 36억원이 전부였으나 이제는 말 3필 구입액 34억원, 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도 뇌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후 진행될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에서는 뇌물혐의를 다시 판단하는 작업이 이어질 전망이며 뇌물액과 횡령액도 다시 정해야 한다. 이 부회장은 당분간 지루한 법정 공방에 시달릴 전망이다.

위기의 삼성

삼성전자는 대법원 판결 후 즉각 입장문을 내어 머리를 숙였다. 삼성전자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 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면서 “앞으로 저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기업 본연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 지점이다.

삼성전자는 “저희 삼성은 최근 수년간,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미래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준비에도 집중할 수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면서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당시 정치권을 휘감았던 비선실세 논란에 빨려들어가 기업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웠고,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불편한 심기가 감지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 전체가 요동칠 것으로 본다. 미중 무역전쟁, 한일 경제전쟁이 심각하게 펼쳐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물론 5G 및 사물인터넷 전략을 예성대로 진행할 예정이지만, 앞으로 지루한 법정 분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당장 이 부회장이 중심이 되어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대형 인수합병은 어려울 전망이며, 그룹 전체의 콘트롤 타워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최악의 경우 이 부회장이 법정구속이 되면 삼성은 물론 한국 경제의 위기도 커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