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진통제는 통증 완화를 위해 가장 흔히 처방되는 약이다. 우리 몸에 통증이 있을 때 가장 쉽고 빠르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말기 암이나 만성 통증 등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은인과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들 환자에게 일반 진통제는 통증 완화 효과가 크지 않다. 강력한 진통 효과를 가진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해야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마약성 진통제가 치료와 상관없이 불법적으로 유통되면서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약성 진통제의 오남용을 부추기고 개인과 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 한 마디로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될 수 있는 것이 진통제다.

'마약'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약물치료에 사용되는 진통제는 크게 비마약성 진통제와 마약성 진통제로 구분된다.

먼저 비마약성 진통제는 우리가 흔히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약을 말한다. 타이레놀, 아스피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게다가 비마약성 진통제는 단기간 복용할 경우 눈에 띄는 부작용이 없어 안심하고 복용할 수 있다. 다만 마약성 진통제와 달리 용량을 늘려도 더 큰 효과를 볼 수 없는 이른바 '천장 효과'가 나타난다. 통증 완화 효과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 진통제 사다리. 출처=WHO

따라서 경미한 통증에는 비마약성 진통제를 우선적으로 처방하고, 이후에도 통증이 지속될 경우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약성 진통제는 통증이 심한 말기 암 환자나 만성 통증 환자에게 널리 쓰인다. 이 진통제는 중추신경계의 오피오이드 수용체와 작용해 진통 효과를 발생한다. 코데인, 트라마돌, 모르핀, 옥시코돈, 하이드로모르폰, 펜타닐 등의 약제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 약제는 오피오이드 수용체와 결합하기 때문에 오피로이드로도 불린다. 또 마약성 진통제는 천장 효과가 없어 약의 용량을 늘리면 늘릴수록 더 큰 진통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약물 오남용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의사 처방에 따라 적절한 용량을 사용해야 한다.

마약성 진통제는 중독을 연상케 하는 '마약'이란 단어와 달리 합법적으로 환자들에게 처방되는 약이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적절한 용량을 지킨다면 중독과 같은 부작용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치료가 아닌 정신적 쾌락 추구를 목적으로 진통제를 악용할 경우 중독을 넘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마약성 진통제와 전쟁 중인 미국

미국은 최근 몇 년간 마약성 진통제의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수많은 마약성 진통제가 약이라는 탈을 쓰고 마약으로 불법 유통됐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정부는 의약품 유통사 전 대표를 기소하고 대량살상무기(WMD) 지정을 검토하는 등 마약성 진통제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젊은 세대에서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마약성 진통제 과다복용 실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현 상황을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의사의 처방만 있으면 마약성 진통제를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약물 오남용 문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사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합법적으로 구입하기 쉬운 만큼 마약성 진통제의 장기 복용을 부추기고 오남용 문제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 마약성 진통제 사망자 수 출처 National Vital Statistics System Mortality File)

미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에 대한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다. CDC에 따르면 2017년 미국에서 약물로 인한 사망자는 약 7만 명이다. 이 중 4만 7천여 명(68%)가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에 따른 사망자는 1999년 이후 지금까지 40만 명을 넘어서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루 평균 130명의 미국인이 마약성 진통제로 사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회·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미국 정부가 마약성 진통제 중독 치료에 지출하는 의료비는 연간 785억 달러에 달한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현재 미국 48개 주와 2000여 곳이 넘는 지방자치단체가 제약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미국 오클라호마주 클리블랜드 카운티 법원은 존슨앤드존스사가 마약성 진통제의 과잉 마케팅과 오남용에 책임이 있다며 5억72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미국 법원이 제약회사에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더 많은 소송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마약성 진통제 대체 치료법 주목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이 비교적 제한돼 있다. 게다가 '마약'이라는 단어에 대한 선입견과 막연한 두려움으로 환자들 역시 비마약성 진통제를 선호하는 편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미국과 같은 상황은 쉽게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만성 통증 환자가 꾸준히 증가함에 따라 마약성 진통제의 필요성이 덩달아 커지고 있다. 대한통증학회에 따르면 한국에서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는 약 25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80%가 통증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만성 통증 환자는 수면장애·우울감·집중력 감소·불안감 등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 심할 경우 자살 충동을 느끼는 환자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 사용을 보다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다만 미국 사례에 비춰봤을 때 마약성 진통제의 치료 목적 외 사용과 불법적 유통 등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 디지털 헬스케어의 적용 영역 출처=Digital Health Summit

이로 인해 마약성 진통제를 대신할 수 있는 치료법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디지털 헬스가  대체 치료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관련 업계는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신경자극, 웨어러블, 빅데이터 등 각종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디지털 헬스를 통해 마약성 진통제의 오남용을 예방하고 만성 통증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VR을 통해 환자가 고통스럽다고 인지하는 움직임에 대한 인지를 바꾸는 훈련을 진행할 수 있으며, 인체 삽입형 신경자극 기기로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신경 자극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마약성 진통제에 비해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디지털 헬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 헬스 기술을 활용한 통증 완화 및 치료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관계자는 "현재 마약성 진통제를 대신하는 디지털 헬스에 대한 관심은 크지만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앞으로 시장 가능성을 보고 제품 개발 및 진출 전략을 세워볼 만한 분야"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