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국내 섬유유연제 시장에서 소비자 성향이 나뉘고 있다. 기업에서도 고농축을 앞세워 향을 강조한 제품을 선보이는 반면, 매출감소를 예상하고 향을 포기한 친환경 제품도 출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소비자 성향은 섬유유연제 시장의 지각 변동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섬유유연제 시장은 2002년 약 1400억원에서 2012년 약 2600억 원으로 약 2배 성장했다. 현재는 오프라인 채널 판매 기준으로 2300억원 규모로, 온라인 시장까지 더하면 약 6000억원으로 추정된다.

▲ 고농축 피죤 리치퍼퓸. 출처=피죤

국내 고농축 프리미엄 국내 섬유유연제 시장은 이미 경쟁이 치열하다. 1990년대만 해도 ‘피죤’이 국내 시장을 거의 장악했지만 지난해 기준 점유율이 45%로 떨어지면서 LG생활건강(이하 LG생건)의 ‘샤프란’과 한국P&G의 ‘다우니’가 그 뒤를 바짝 추격했다. 이후 샤프란이 무거운 플라스틱 섬유유연제에서 가벼운 티슈 제형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1위 자리에 올라섰다.

그러나 시장의 판도가 ‘편리함’보다 ‘고농축’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2012년 다우니는 브랜드 출시 후 3년 동안 점유율 1위를 유지했다. 이후 LG생건이 ‘샤프란 5배 농축’, ‘샤프란 10배 농축’으로 고농축 마케팅에 나서면서 한동안 시장 2위로 밀려났지만,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다우니는 점유율 39.6%로 다시 1위를 차지한 상태다.

국내 섬유유연제 시장 1위 자리를 지켜온 LG생건은 7년여 만에 다우니에 1위 자리를 내준 셈이다. 샤프란은 2011년 시장점유율 43.3%를 기록하며 32년여 동안 섬유유연제 시장 선두였던 피죤을 제쳤다. 하지만 2013년 39.5%, 2015년 37.7%, 2017년 37.3%로 시장점유율이 점차 감소했다.

이러한 섬유유연제 지각 변동은 고농축 시장의 확대에 따른 결과다. 정전기를 방지하는 등 섬유유연제의 기본적인 기능만이 아니라 고가의 향수와 다름없는 특별한 향을 내세우며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 전문 조향사가 휴식과 안정에 도움이 되는 원료를 엄선해 완성한 향을 제품에 더했다.

▲ 다우니 보타니스. 출처=한국P&G

또한 다우니의 시장점유율 확대는 방탄소년단(BTS) 효과도 함께 작용했다. 방탄소년단의 멤버 정국이 팬카페 채팅 중 섬유유연제 ‘다우니 어도러블’을 사용한다고 공개한 직후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네이버 실시간검색어 1위에 오르고 품절 대란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정국은 제품의 PPL 의뢰나 다우니 관계자와 접촉한 사실이 없는 상태였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소비자들이 섬유유연제의 정전기를 방지하고 옷감을 부드럽게 하는 기능에 주로 관심을 가졌지만, 강한 향에 대한 요구가 점차 늘어났다”면서 “그 결과 고농축 섬유유연제의 매출이 일반 섬유유연제를 이미 넘어섰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스타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이 다우니 어도러블을 사용한다는 소식까지 알려지면서 섬유유연제 향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는 더욱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 애경산업X르샤트라 1802. 출처=애경산업

이처럼 고농축 섬유유연제 시장이 되살아나면서 애경산업(이하 애경)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애경은 지난 3월 프랑스 프로방스의 200년 역사의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르샤트라 1802’와 함께 향을 강화한 ‘애경산업X르샤트라 고농축 섬유유연제’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고농축과 명품 향을 찾는 소비자 니즈에 맞춰 프랑스 프로방스 르샤트라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100% 내추럴 허브 에센셜 오일을 함유해 깊은 향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이 특징이다.

화장품 사업으로 2분기 부진한 실적을 보였던 애경은 생활용품사업은 온라인 채널이 크게 성장했다. 르샤트라가 매출을 견인했기 때문이다. 고농축 시장에 가장 늦게 진출했지만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743억원, 64억원을 기록하면서 전년 동기대비 5.1%, 44.8% 성장했다.

▲ LG생활건강 기술연구원에서 연구진이 생활화학제품에 함유된 미세플라스틱 성분을 확인하고 있다. 출처=LG생활건강

이러한 섬유유연제 향기전쟁 속 과감히 향기를 없애고 친환경을 선택한 기업도 있다.

최근 다우니에 1위 자리를 내준 LG생건이다. LG생건은 더 강하고 오래가는 향을 포기하고 친환경을 택했다. 일부 소비자들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해 지난해 9월부터 모든 섬유유연제 제품에 미세 플라스틱 성분을 넣지 않고 있다.

본래 섬유유연제 속 미세 플라스틱은 향기 성분을 감싸고 있어 세탁 후 옷감에 남아 강한 향을 오래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미세 플라스틱이 물속 생태계는 물론 인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용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태다.

▲ 미세 플라스틱을 알리고 사용 자제를 촉구하는 ‘샤프란 아우라’ 온라인 광고는 론칭 20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150만 건을 돌파했다. 출처=LG생활건강

우려했던 소비자 반응은 긍정적이다. LG생건의 섬유유연제 속 미세 플라스틱을 알리고 사용 자제를 촉구하는 ‘샤프란 아우라’ 온라인 광고는 론칭 20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150만 건을 돌파하면서 화제가 됐다. 해당 광고는 배우 김영철이 출연 중인 실제 방송 프로그램을 콘셉트로 소비자들과 인터뷰를 통해 생활 속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우리 이웃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섬유유연제 속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소비자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관련 제품들이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서 “누구나 쓰는 섬유유연제에 미세 플라스틱과 관련된 환경 문제가 있는지 새롭게 알게 된 소비자도 많아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