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 연방거래소(FTC)와 특허 라이선스 비즈니스를 두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퀄컴이 초반 승기를 잡았다. 과도한 라이선스 비즈니스를 가동해 제조사로부터 필요이상 로열티를 받고있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최소한의 논리싸움에서 비즈니스의 타당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 퀄컴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사진=최진홍 기자

무슨 일 있었나?
지난 2017년 1월 FTC는 퀄컴이 모뎀칩 시장의 지배자적 위치를 이용하며 제조사들에게 과도한 로열티를 받는다며 전격 제소한 바 있다. 특히 문제가 됐던 부분은 독점 공급이다. 과도한 특허료도 문제지만 독점 공급이라는 족쇄를 통해 제조사들을 과도하게 옥죄고 있다는 것이 FTC의 주장이다. 

동시에 애플을 비롯한 제조사들은 반(反) 퀄컴 전선을 구축하며 강력한 압박에 나섰다. 퀄컴은 강력한 연구개발을 바탕으로 라이선스 비즈니스를 핵심으로 삼고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모뎀칩 시장을 사실상 평정한 상태다. 그러나 제조사들은 퀄컴이 과도한 로열티를 받으며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제기했다.

로열티 비즈니스를 두고 벌어진 세기의 대결은 지난 4월 한 차례 변곡점을 맞이한다. '반'퀄컴의 중심에 섰던 애플이 퀄컴과 전격적으로 합의하며 분쟁을 끝냈기 때문이다. 더버지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애플과 퀄컴은 두 회사의 특허 분쟁과 관련해 모든 소송을 중단하고 전격적인 합의를 이뤘다. 애플이 퀄컴에 대해 일회성으로 특허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는 한편 2년 연장 옵션의 6년 단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의 지난한 싸움을 고려하면 전격적인 합의다. 애플은 자기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퀄컴의 제조사 파트너들을 규합해 일종의 여론몰이에 나섰고, 이후 애플은 모뎀칩 수급에 있어 퀄컴과 인연을 끊고 인피니온을 인수한 인텔과 협력, 새로운 전선을 구축하고 나섰다. 인피니온은 초기 애플 아이폰에 모뎀칩을 제공하던 곳이다. 

퀄컴도 물러서지 않았다. 특허 라이선스 비즈니스의 특성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특허계약 위반 논란도 불거졌다. 퀄컴은 2017년 7월 애플을 상대로 소프트웨어 특허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기밀자료를 빼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두 회사는 이후 몇 차례 세계를 무대로 한 공방전을 벌이며 올해 3월 진검승부에 돌입하기도 했다. 전초전의 승자는 퀄컴으로 결론났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3월 15일 미국 샌디에이고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2주간의 심리를 마친 후 “애플이 퀄컴의 특허 3건을 침해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3100만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직후 두 회사는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5G 경쟁에서 뒤쳐진 애플이 퀄컴과 대립하며 인텔과 손을 잡았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는 가운데, 결국 연구개발의 퀄컴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애플이 퀄컴과 대립하며 5G 정국에서 뒤쳐지는 가운데 중국의 화웨이가 애플에 5G 모뎀칩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향을 언론에 흘리며 사실상 '조롱'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도 애플의 전격적인 판단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 퀄컴이 한 숨 돌리게 됐다. 출처=갈무리

1심 판결, 그리고 명령 집행유예
애플과의 화해를 끌어낸 퀄컴의 행보에 탄력이 붙었으나, 지난 5월 미 연방지방법원이 FTC의 손을 들어주며 퀄컴의 스텝이 꼬였다. 퀄컴의 로열티 비즈니스가 독점 금지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5월 22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연방지방법원은 퀄컴의 특허료 사업 관행을 두고 반독점법 위반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퀄컴의 관행은 많은 경쟁사들을 고사시켰다”면서 “결국 소비자에게도 피해를 준 셈”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고객사와 특허료 계약을 재협상해야 한다”면서 특정 업체와의 독점 공급 계약도 맺지 못하도록 했다. 앞으로 7년간 모니터링 결과를 법원에 제출하도록 하는 한편 법원의 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별도의 자료도 요구했다. 

퀄컴은 즉각 반발했다. 법원의 사실 해석과 법 적용, 결론에 반대한다며 항소했다.

첨예한 신경전이 불거지는 가운데 제9연방순회항소법원은 26일(현지시간) 퀄컴의 손을 들어줬다. FTC가 명령한 시정명령을 유예해달란는 퀄컴의 입장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로열티 비즈니스 퀄컴의 완벽한 승리가 아니라, 퀄컴의 요청을 들어줬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퀄컴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마지막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시행명령을 유예해달라'는 점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4월 판결로 퀄컴은 즉각 자사의 라이선스 관행을 변경하는 시정명령을 수행해야 했으나, 이번 판결로 당장의 비즈니스 모델 변화는 피하게 됐다는 점에서 퀄컴의 국지적 승리로 봐야 한다. 또 이번 판결이 추후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아 퀄컴 입장에서는 더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퀄컴의 라이선스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도널드 로젠버그 퀄컴 수석부사장은 "우리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기쁘다"면서 "우리는 우리의 관행을 유지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퀄컴은 5G의 중요한 시기에 모바일 통신의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데 계속 투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입장은 지난 1월 소송 당시 "모바일 사업은 건강하며 퀄컴은 낮은 로열티를 받고 있다"는 주장의 연장선에 있다.

업계에서는 승기를 잡은 퀄컴의 행보를 두고 '예견된 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퀄컴과 LG전자가 로열티를 두고 첨예한 대결을 벌였으나 이를 마무리하고 계약에 합의하는 등 일부 전향적 모습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퀄컴이 패소하자 미 법무부가 나서 법원을 상대로 반독점 판결집행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한 대목도 중요하다.

당시 미 법무부는 퀄컴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5G 경쟁력을 위해 신중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현재 미국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며 중국의 기술굴기 선봉장인 화웨이를 정조준하고 있다. 최근 화웨이 제재 유예기간을 늘리기는 했으나 계열사 46개를 새롭게 제재하기로 결정하는 등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글로벌 5G 패권을 중국에 빼앗길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나며, 당연히 자국 기업인 퀄컴에 대한 압박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결국 제9연방순회항소법원의 결정은 미 법무부의 의도를 충실히 따랐으며, 퀄컴이 한 숨 돌리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반사효과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