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의 김인수 교수가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재도전 현황과 재도전 활성화를 위한 방안'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실패를 공유하면 창업과 재도전 과정의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카이스트 김인수 교수는 23일 '재도전 현황과 재도전 활성화를 위한 방안' 이라는 주제로 열린 국회 심포지엄에서 "창업가의 실패사례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 이를 자산화하지 못하고 있다"며 "성공사례와 더불어 사업가의 실패사례를 공유해야 새로운 도전에서 오는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카이스트 기업가정신연구센터에서 부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대학에서 창업에 도전했다 실패한 제자들을 보며 창업과 재창업 실패요인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왜 실패를 했는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젊은 기업가들이 동일한 실패를 반복적으로 답습하는 것"이라며 "실패 기업 사례와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연구할 수 있는 개념적 물리적 플랫폼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런 점에서 중기부와 대전시가 실패사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중기부는 지난달부터 기업인의 실패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2019 재도전 인식개선 공모전'을 시작했다. 혁신적 실패 사례를 모아 재도전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공모전의 취지다. 

대전시도 지난 5월 '2019 실패 박람회 in 대전- 실퍠를 감각하다"를 개최, 실패 사례를 전시하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실패에 대한 인식 전환을 꾀하고 있다. 

핀란드는 2010년부터 매년 10월 13일을 '실패의 날'로 정하고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김 교수는 청년 기업가의 폐업과 재창업 과정이 제도적 문제로 많은 시일이 걸리고 컨설팅할 수 있는 전문가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 폐업에 걸리는 기간만 평균 3년이 넘어 창업 시 보유한 고정자산의 수명이 단축되는 소위 '진부화'로 재창업에 실패하고 있다"며 "중견기업과 대기업 등은 회생절차에서 변호사, 회계사, 기업구조조정 투자자 등 다양한 전문가가 있지만 위기에 직면한 벤처기업가의 경우 자구노력이나 파산의 과정에서 도움 받을 수 있는 전문가가 없어 금융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하곤 한다"고 현황을 설명했다. 

카이스트 기업가정신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11년까지 폐업한 기업 8만2154곳 가운데 재창업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47개월이고 폐업한 기업의 대표가 재창업을 통해 다시 대표이사나 임원을 한 경우는 5904건으로 전체의 7.2%에 불과하다. 재창업을 한 기업 가운데 72%에 해당하는 4260곳의 대표이사와 임원은 은행거래를 하지 않았고 21.6%에 해당하는 1276곳의 기업은 다시 폐업했다. 연구센터는 “재도전 기업인의 심층 인터뷰 결과 40%는 제3자의 이름으로 창업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와 같이 재창업 대표나 임원이 금융거래를 하지 않고 타인의 명의로 사업을 하는 것은 연대보증의 폐해라는 것이 이날 심포지엄의 진단이다.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융자금이 폐업후에는 장기간의 파산절차 등을 거쳐야 보증채무가 정리되기 때문에 여전히 폐업 후 발빠른 창업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망하는 게 두려워 창업하지 못하는 악순화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 “지원자금, 줬다 뺏는 게 목적이라면 도전 부추길 수 없어”... 기존 보증채무 감면 허용해야

이날 법무법인 인헌의 허재창 변호사는 ‘중소벤처기업인의 재도전 활성화를 위한 법률안’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허 변호사는 공학도 출신으로 IT 관련 업무를 하다 로스쿨에 진학, 변호사가 된 뒤 구인구직 정보업체인 스타트업을 창업한 바 있다.

허 변호사는 “중진공과 기술보증기금 등이 가지고 있는 약 12만건의 기존 대출과 보증에 대해 향후 5년간 연대보증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고 발표했다”면서도 “이미 폐업을 해서 구상금이 된 채무는 연대보증 폐지의 대상이 아니”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구상금은 기보나 신보 등이 은행 대출에 보증을 서고 대출연체 등이 발생하면 대출 채무자에게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지난 2018년 4월 2일 중소기업과 기보 및 신보 등 보증기관의 융자금에 대해 연대보증 제도를 폐지를 발표, 이를 적용했다. 2022년까지 연대보증제도를 완전 폐지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허 변호사는 “2018년 4월 2일 이전에 회사의 채무를 연대보증한 대표자는 2022년까지 폐업도 못하고 연차별로 진행예정인 연대보증 해지계획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미 폐업한 대표자는 채무불이행자로 파산이나 개인회생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게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들에 대한 감면제도를 법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도덕적 해이 등 보증채무 감면을 반대하는 주장을 감안해 보증채무를 신규 법인에 대해 승계하는 안이 시선을 끌었다. 

허 변호사는 “일반적인 연대보증과 달리 정책자금을 받은 대표이사를 다르게 평가해 보증채무를 감면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폐업으로 인해 연대보증 채무를 지는 경우 대표자가 재창업을 하면서 신규법인을 설립하면 이 채무를 승계하는 안을 고려할 수 있다”며 “최소한 사업을 하다 생긴 빚은 새로운 사업체에서 갚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놔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 외 기금 소진에 대한 우려를 감안해 1억원 이하의 연대보증 채무를 감액하는 안도 제안됐다. 

중소진흥공단이 지난 7월 내놓은 ‘채권을 상각한 기업 연대보증 금액 자료’에 따르면 개인에게 남아 있는 연대보증 대출 건수와 잔액은 총 2057건에 2642억원이다. 이 가운데 연대보증 채무액이 1억원 미만 건수와 잔액985건에 529억원으로 건수기준으로 47.9%이고 금액기준으로 20%이다. 

허 변호사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고속도로의 최고속도를 40킬로로 제안하면 큰 사고는 나지 않겠지만 고속도로의 의미는 사라진다”며 “도전적인 창업자금이 결국 개인의 연대보증 채무로 되어 모두 회수할 목적으로 운영된다면 도전적인 사고와 실패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어서 창업을 지원하는 정책자금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주제 발표 이후 김남성 법무법인 리앤킴 변호사와 임동한 서울회생법원 판사, 이동원 중소벤처기업부 재기지원과 과장, 이원배 주식회사 더원리비 대표이사, 정재호 한국일보 기자가 토론을 이어갔다. 

심포지엄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과 중소벤처기업법 포럼의 정재욱 대표가 개회사를, 대한변호사협회의 이찬희 회장이 축사를 낭독했다. 

김병관 의원은 개회사에서 “대한민국이 중소벤처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좋은 창업을 활성화하고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국가가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창업 및 재도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불필요한 규제를 혁신해 실패의 위험부담을 국가가 덜어줄 수 있는 정책 및 입법활동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