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위원회. 사진=이코노믹리뷰 DB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신복위로 인해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습니다”

경기도 화성시에 거주하는 K씨(49세)는 이 말로 편지의 끝을 맺고 신용회복위원회로 서신을 보냈다. 채권자를 설득하면서까지 채무를 조정해준 고마움 때문이다. 

K씨는 오래전에 이혼을 하고 생활고를 겪다 노숙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의 빚은 원금만 800만원이었다. A대부업체가 500만원을, B대부업체가 300만원을 K씨에게 독촉하고 있었다. 원금은 벌써 10년 전에 생긴 빚이었다. 이자는 이미 수천만원으로 불어 있었다. 

K씨는 지난달 식당에서 받는 소득으로 채무조정을 하기 위해 신복위를 찾았다. 신복위는 K씨의 채무를 조정할 수 없었다. 총 채무의 50%가 넘는 A대부업체의 반대 때문이었다. 채무조정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K씨는 최근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신복위 관계자가 A대부업체를 설득해 채무조정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서울 영등포에 거주하는 B씨. 5급 공무원인 그는 최근 급여가 압류됐다. 보증이 화근이었다. 이 같은 일이 원인이 돼 이혼 후 6세 아들과 거주했다. 압류로 인사상 불이익도 이어졌다. 채무조정을 위해 신복위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채권자의 부동의가 문제였다. 지난 7월 B씨는 채무조정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신복위가 역시 채권자를 설득해 동의를 받아 낸 결과였다. 

B씨는 “아들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일을 다녔는데 빚이 정리되지 않았으면 전 부인에게 아들을 보낼 작정이었다”며 “신복위의 노력으로 가정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채무조정 상담과 채권소각 운동을 펼치는 ‘주빌리은행’이 첫 상담을 한 두 사례는 모두 신복위의 채권자 설득으로 채무조정이 확정됐다. 

K씨가 신용회복위원회에 쓴 손편지. 

신용회복위원회(위원장 이계문)의 소득 있는 채무자 대한 채무조정 성공사례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이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소득이 있는 신청자에 대한 채무조정 성공률이 2016년 평균 85%에서 지난해에 들어 88%로 상승했다. 

이 같은 상승요인에는 사례와 같이 신복위의 채권자 설득도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복위는 지난달부터 채권금융회사와 간담회 등을 통해 채무조정 동의율에 대해 협조를 구해왔다. 

법원의 개인회생이나 파산과는 달리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은 채권자 과반의 동의가 있어야 채무조정이 가능하다. 채권금융회사의 협조가 필요한 이유다. 

취약계층에 대한 워크아웃 신청 건수도 늘었다. 

신복위의 자료에 따르면 신복위에 접수된 월평균 신청자는 2017년 614명, 2018년 633명으로 늘어난 뒤 올해 들어서는 전년 대비 10.9% 늘어난 701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일용직 개인워크아웃 신청자는 2017년 4만3260명에서 지난해 4만2916명으로 감소했지만 역시 올해 들어 증가세로 전환됐다. 올해 들어 7월까지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한 일용직은 2만8417명이다. 월평균으로 따지면 지난해 3576명에서 올해 4060명으로 13.5% 증가했다. 

무직자의 월평균 신청자 수는 지난해에 비해 올해 신청자가 25.3% 늘었다. 

60대 이상 고령자의 워크아웃 신청 건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워크아웃을 통해 채무조정을 신청한 60세 이상 고령자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7249명으로 집계됐다. 연말까지 5개월 더 남았지만 지난해 연간 신청자(8843명)의 82% 수준까지 오르고 있다. 

시민단체 등 채무조정 업계는 신복위의 워크아웃 제도가 많이 알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빌리은행 유순덕 상임이사는 “최근 상담 사례 등에 비춰볼 때 급여소득자나 자영업자와 달리 일용직 등 취약계층들은 파산이나 개인회생 등 법원절차보다 신복위의 워크아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절차 비용이 적고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통해 신속하게 채무조정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득 있는 채무자의 워크아웃 채무조정 확정 건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자료=신복위 제공

◆ 신복위 실적 ‘쉬쉬’...실적 늘어도 걱정?

자영업자 개인워크아웃 신청과 이들의 채무조정 건수도 늘었다. 자영업자의 신청 건수는 올 들어 7월까지 4910명으로 집계됐다.

자영업자 개인워크아웃 신청은 2014년 7310명, 2015년 7211명, 2016년 7007명으로 감소해왔지만 2017년 7363명을 기록하며 증가세로 전환된 뒤 2018년에는 7590명으로 확대됐다. 이들의 채무조정 건수도 덩달아 늘었다. 개인워크아웃으로 채무조정이 확정된 자영업자의 수는 2014년 6492명(신청건의 88%), 2015년 6384명(88%), 2016년 6082명(86%), 2017년 6651명(90%), 2018년 6781명(89%)를 기록하면서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는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폐업하지 않고 정상 영업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신복위가 이 같은 증가한 실적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홍보를 강화해 위기의 서민을 도울수록 그 실적이 경제 위기론의 지표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것일까? 

연령별 워크아웃 신청건수와 채무조정 확정건수. 자료=신복위

◆ 자영업자 신청자 증가세...“경제 위기 징후와 관계없어”

채무조정 전문가들은 워크아웃 신청건수를 경기 하강 지표로 삼는 것은 무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채무자의 채무상황이 제각각이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워크아웃은 원칙적으로 연체일수가 90일을 넘어야 제도 이용이 가능하다. 연체일수 90일 넘기고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채무자가 있는가 하면 사례와 같이 10년 전 채무를 가지고 신복위를 방문하는 채무자도 있다. 일용직이나 무직자, 고령자의 경우 이미 오래전에 연체된 채무를 가지고 신복위에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편 신복위 자료에 따르면 노동력이 있는 30~40대와 급여소득자의 워크아웃 신청은 큰 변화가 없거나 감소세다. 그나마 경기 지표를 가늠할 수 있는 대상층은 큰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신복위가 이미 과당경쟁 시장에 내몰린 자영업자를 위해 오히려 홍보를 지금 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의 백주선 회장은 “한해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100만명이라는 통계가 나오고 있는데 법원의 회생절차를 이용하는 채무자는 약 10만명이고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자영업자는 1만명이 채 안된다”며 “나머지는 90만명은 야반도주를 하는 등 채무조정을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 회장은 이어 “개인회생이나 워크아웃은 정상 영업을 하면서 채무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폐업 위기의 자영업자에게 널리 홍보되고 장려되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널리 알릴수록 자영업자 폐업율을 줄일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사단법인 ‘금융과행복네트워크’의 정운영 의장(신복위 심의위원)은 “자영업자 워크아웃의 신청원인을 분석하면 과당경쟁 시장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며 “워크아웃 신청건이 늘었기 때문에 경기가 악화된 것이 아니라 홍보를 통해 제도를 알게 된 한계 자영업자가 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정치권 등이 정확한 분석 없이 신복위나 법원의 채무조정 건수의 증가수치를 경제 위기의 지표로 포장하면 어려운 서민들을 위한 신복위의 홍보활동이 위축된다”며 “결과적으로 제도의 도움을 받아야 할 서민들의 재기가 늦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