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물결갤러리 전시전경, 2015

송수련의 작업은 그린다기보다 지운다는 역설적 방법에 지지된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지워진 흔적의 자리만 떠오른다. 화면에는 무언가 구체적 인 대상이 잡히지 않는다. 구체적인 존재가 지나간 흔적만이 지워진 것이다. 존재에 대한 지워짐의 알리바이라고 할까 그러기에 그의 화면은 자각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이와 종이 위에 시술되는 안료의 물성이 어우러져 표현이란 자각적 진술로 현현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를 두고 마지막 본질'만을 남기는 일이라고 술회한다. 단순히 없는 것이 아니라 지우고 가린 이후 마지막으로 남은 에센스로서 말이다.

▲ 관조-내적시선, 207×148㎝

그러고 보면 그가 30년에 가까운 작업시간을 통해 일관되게 견지해 오고 있는 관조가 사물본질에 닿으려는 소망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기에 물리적 시선으로서의 세계와의 관계가 아니라 내 안의 내면적 시선으로서의 세계와의 관계가 추구된다.

작가(한국화가 송수련,한지화가 송수련,송수련 화백,宋秀璉,SONG SOO RYUN,송수련 작가,Hanji Painter SONG SOO RYUN,종이회화 송수련,한지작가 송수련,여류화가 송수련, KOREA PAPER ARTIST SONG SOO RYUN, KOREAN PAPER ARTIST SONG SOO RYUN)는 빈번히 자연에 대해 언급한다.

자신의 예술적 뿌리가 자연에서 온 것이란 사실을 천명한다. 그러나 자연은 단순한 물리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일종의 시공간을 연결하는 우주적 관념으로서의 자연이다.

▲ 98×128㎝

화면은 일종의 전면성으로 구현된다. 바탕인 종이는 선염의 진행으로 전면성으로 이어진다. 거기 긁힌 자국, 얼룩, 그리고 일정하게 반복되는 점 점 때로는 식물의 줄기 같은 가녀린 흔적들이 지나가는가 하면 봄날 매화가지에 움트는 꽃망울 같은, 또는 밤하늘에 흩날리는 유성과 같은 작은 점들이 수없이 화면을 누비고 지나간다.

어쩌면 그것들은 작가가 언급한 봄의 푸릇한 기운과 여름의 무서운 분출과 성숙을 경험한 자연, 그리고 이재는 그것을 툭툭 털어버리고 마지막 본질만 남긴 자연인지 모른다. '명상과 삶의 흔적을 포함하는 보다 보편적인 존재의 기억' 등 인지도 모른다.

△글=오광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