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디다 아우리스의 감염사례 발생국가. 출처=미국 질병통제센터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변화가 각종 질병을 부르고 있다. 일찍부터 지구온난화가 폭염과 가뭄, 홍수 등 각종 기상이변을 일으키며, 인류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정설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변화가 질병 확산의 근원으로 지목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실제로 기온변화로 인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 진균'이 출몰하고 기존의 열대성 전염병 발생 지역에선 감염속도가 빨라지는 이상징후가 관찰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급속한 질병 확산이라는 또 다른 재앙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온에서 살아남는 '슈퍼 진균' 확산 경고

최근 지구온난화가 공포의 곰팡이 균으로 불리는 '칸디다 아우리스' 출현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와 텍사스대 공동연구팀은 계통 분류학적으로 가까운 종간의 열 감수성 비교를 통해 칸디다 아우리스가 다른 진균보다 높은 온도에서 자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온라인 저널인 '엠바이오'에 게재했다.

칸디다 아우리스는 칸디다균의 일종으로 2009년 일본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한국과 미국, 인도, 이스라엘, 영국, 스페인, 쿠웨이트 등 30개국 이상에서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이 진균은 일반 칸디다균과 달리 항생제에 내성을 갖고 있어 '슈퍼 진균'으로 분류된다. 증상은 고열, 통증, 피로 등으로 지극히 평범해 발견이 어렵고, 특수장비로 검사하지 않으면 다른 균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치사율도 약 50%로 높은 편이다. 이 진균이 혈류로 들어가면 90일 안에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칸디다 아우리스 출현의 가상 시나리오. 출처=mBio

향후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다면 감염 위험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미국 내 감염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미국의 감염 사례는 685건으로 뉴욕주(336건), 뉴저지주(124건), 일리노이주(180건), 플로리다주(20건) 등 12개 주에서 보고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4월 칸디다 아우리스의 위협 등급을 상향 조정하며 확산 가능성을 경고했다. 우리나라도 과거 20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한 만큼 결코 안심할 수 없다.

특히 칸디다 아우리스는 다른 진균들과 달리 42도의 고온에서도 살아남는 강력한 생존력을 자랑한다. 이와 관련해 연구팀은 공중보건의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온 칸디다 아우리스가 기후변화로 인해 등장한 새로운 병원성 진균의 첫 사례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일반 칸디다균을 포함한 대부분의 진균은 차갑고 습한 환경에서 증식하기 때문에 36.5°C의 비교적 고온에 가까운 인간의 몸은 곰팡이균이 서식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칸디다 아우리스가 고온에 적응하도록 진화되면서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에 침입해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세계는 하나…원헬스로 항생제 다제내성 예의주시

항생제 내성 증가로 칸디다 아우리스와 같은 다제내성균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동수단의 발전으로 국가 간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감염병 문제만큼은 국경이 사라진 지 오래다. 미국 타임지는 2050년까지 항생제 내성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연간 1000만 명에 달하는 감염병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기존 항생제를 대체할 새로운 유형의 치료제 개발과 다제내성균에 대한 감시 및 역학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항생제 내성균 질환은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균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질환을 일컫는다. 특히 다제내성은 여러 종류의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다제내성균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출처=하버드 의과대학

우리나라에서도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고 정부 차원의 전담관리부서 신설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한국은 인체에 유해한 다제내성균에 대한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동물이나 환경까지 아우르는 항생제 내성 감시체계는 마련하지 못한 것이 한계로 지적된다. 더불어 항생제 사용량 및 항생제 처방 적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 표준지표와 인구집단에 따른 일반적인 투여용량뿐만 아니라 중증환자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들은 국제기구와 협력해 항생제 내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사람, 동물, 환경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원헬스' 감시체계를 가동해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원헬스는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식량농업기구(FAO), 세계동물보건기구(OIE) 등 국제기관들과 연합해 주요 전염병과 항생제 내성 문제 등을 공동대응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한국도 2017년부터 원헬스 개념의 항생제 내성 감시 체계를 조성하며 글로벌 이슈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항생제 내성균이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환경에서도 순환하기 때문에 이 모든 부분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게 대부분 국가에서 권장하는 사항"이라며 "한국도 항생제 내성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2017년부터 사람과 동물, 환경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원헬스 기반을 조성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