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드링크 인터내셔널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철옹성처럼 여겨지던 고급의 상징 ‘위스키’의 가격들이 내려가면서 국내 업계의 분위기도 점점 달라지고 있다. 주요 위스키 업체들이 각자의 주력 제품 가격을 하나 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이는 수요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위기 속에서도 절대 가격을 내리지 않던 업체들이 이제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시장에 순응하기 시작했다는 흐름으로 해석되고 있다. 

위스키 등 주류 유통기업 드링크 인터내셔널은 지난 1일 국내 위스키 업계 최초로 자사의 주력제품인 ‘임페리얼(Imperial)’의 출고 가격을 15% 인하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드링크 인터내셔널 측은 “몰트 위스키의 대중화를 위해 인기 품목인 몰트 위스키 임페리얼 스무스 12년산과 17년산의 출고 가격을 15% 인하해 공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이어 21일 주류 유통기업 골든블루는 자사의 주력 위스키 4종(골든블루 사피루스, 팬텀 디 오리지널, 팬텀 디 오리지널 17, 팬텀 더 화이트)의 출고가격을 낮춰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골든블루는 자사의 이름이 걸린 주력제품 ‘골든블루 사피루스’의 출고가격 7.9% 인하를 결정했다. 아울러 ‘팬텀 디 오리지널’은 가격도 지난해 6월 (2만1945원에서 1만9745원으로 10% 인하한 데 이어 1년 만에 추가로 4.2% 인하했고 ‘팬텀 디 오리지널 17’의 출고가도 8.7% 내렸다. ‘팬텀 더 화이트’는 450ml 제품은 30%, 700ml 제품은 30.1% 출고가를 내렸다. 이에 대해 골든블루 김동욱 대표는 “점점 감소하고 있는 시장 침체의 위기를 타계할 방안을 모색해 왔고 주력 제품의 선도적인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 출처= 골든블루

위스키는 2008년을 기점으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시장 규모가 단 한 번도 커진 적이 없다. 업계가 추산한 국내 위스키의 연간 총 출고량은 2008년 284만 상자를 기록한 이후로 매년 줄어 딱 절반 수준인 140만 상자까지 줄었다. 과거에는 업계 1,2위 업체가 출고하던 물량이 이제는 업계 전체가 감당하는 물량이 됐다. 재미있게도 이렇게 시장 규모가 반토막나는 동안 국내 주요 업체들 중 주력제품의 출고가격을 낮춘 사례는 없었다. 수요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추세에도 업체들은 생산 현지의 제조비용 상승, 유통비용 혹은 인건비 상승을 근거로 오히려 가격을 올려왔다. 

이러한 차에 정부는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 개정안’의 공표로 주류 기업들이 도매상과 유흥업소 등에 제품을 유통할 때에 지급하는 ‘리베이트’라는 이름의 판매 촉진비의 상한을 법으로 정했다. 개정안에서는 도매업체에 대한 판매 촉진비는 출고가의 1%, 업소에 대한 판매 촉진비는 출고가의 3%로 제한했다. 통상 대형 도매상에 위스키 유통업체들이 제공하는 판매 촉진비는 최대 출고가의 10% 수준이었다. 유통업체들에게는 납품 비용으로 계산되던 판매 촉진비가 최대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에 위스키 유통 업체들은 그간 판매 촉진비로 투입되던 유통비용의 감소분을 출고가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 출처= 업계 추산

현재 주력제품의 출고가격을 낮춘 업체는 드링크 인터내셔널과 골든블루다. 업계에서는 인기 위스키 브랜드 윈저(Windsor)를 보유한 디아지오코리아와 발렌타인(Ballantine)을 보유한 페르노리카 코리아도 곧 주력제품의 출고가격을 인하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두 브랜드 관계자는 “출고가격 조정은 계속 논의 중이며, 아직까지 확정된 내용은 없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비싸도 잘 팔렸던 위스키 업계가 이제야 시장의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위스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요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동안 출고가격의 인하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였다”면서 “각 업체들은 그간의 자존심을 버리고 주류 판매 촉진비 규제로 인한 비용 절감을 출고가에 반영함으로 현재 마주한 위기에 대한 대응을 이제야 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김영란 법’에도 흔들리지 않던 ‘고급의 상징’ 위스키가 드디어 자존심을 내려놓고 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식의 비난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업계에는 작은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