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한일 경제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추가로 허가했다. 20일 산업통상자원부 및 업계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19일 한국에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허가했으며, 수출하는 기업은 일본의 JSR이고 수입하는 곳은 삼성전자로 확인됐다. 

일본은 지난 8일 포토레지스트 수출 허가를 내주고 이번에 또 수출 승인을 한 셈이다. 삼성전자가 이를 바탕으로 확보한 포토레지스트는 총 9개월 물량이다. 일본의 미묘한 기류 변화에 시선이 집중된다.

한일 경제전쟁..지소미아 변수
일본은 지난달 4일부터 한국을 대상으로 3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에 나서는 한편 2일 각의를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방침을 정했다. 

아베 신조일본 총리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은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100% 배제할 것"이라며 "한국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나 완전히 괜찮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한국도 적극 대응했다. 일본의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WTO 일반이사회 등을 중심으로 여론전에 돌입하는 한편 여야 5당의 초당적 기구인 일본 수출규제 대책 민관정 협의회도 출범시켰다.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석희 SK하이닉스 CEO는 연이어 일본으로 날아갔고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정부 차원의 대책도 나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수출제한 3대 품목을 포함한 총 100개 전략 소재 품목을 지정해 집중적으로 투자, 5년 내 공급안정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100대 품목의 조기 공급 안정성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20대 품목은 1년 안에, 80대 품목은 5년내 공급을 안정화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문 대통령은 국내 최초로 로봇의 팔다리 관절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인 정밀 감속기 개발에 성공한 업체를 방문하며 ‘소재 국산화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던 두 나라의 기류는 7일을 기점으로 미묘하게 변했다. 일본은 한국이 일방적으로 국제조약을 파기했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화이트리스트 확정안이 담긴 정령(한국의 시행령)을 공포, 관보에도 게재하면서도 추가제재 방침을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4일 수출 규제에 들어간 불화수소나 포토레지스트 등 3대 핵심 소재 외 어떤 물품을 개별허가에 포함시키는지 적시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기에 특별일괄포괄허가제도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CP, 즉 법령준수 자격을 받은 기업은 수출 상대 국가가 그룹A에 속하지 않아도 물품에 대한 개별허가를 거치지 않고 3년간 바로 물품을 조달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를 잘 활용하면 일본의 수출 규제 타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본이 경제보복을 감행하면서도 나름의 여지를 남겼다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8일에는 일본이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허가하기도 했다. 총 3개월 물량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미묘한 변화를 보면서도 일단 맞대응을 택했다. 12일 일본을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전략물자수출입고시’ 개정안 카드를 꺼냈다. 화이트리스트로 볼 수 있는 ‘가’를 ‘가의1’ 과 ‘가의2’로 나누고 일본을 ‘가의2’로 이동시켰다.

일본이 경제보복 기조를 유지하면서 '틈'을 내어준 방식을 그대로 따라갔다. 일단 일본이 속하게 되는 ‘가의2’ 수출통제 수준은 원칙적으로 ‘나’와 동일하다. 사용자포괄수출허가를 받는 ‘가’의 혜택은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개별허가 신청서류 일부와 중개허가를 면제받을 수 있는 길은 열린다. CP에 내주고 있는 사용자포괄허가는 ‘가의1’에 모두 통용되지만 ‘가의2’는 예외적인 경우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상황은 악화일로다. 업계에 따르면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광복절 직후인 16일, 혹은 17일 아키바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회담을 갖기로 했으나 결국 불발됐다. 최소한의 소통창구가 막혔다는 뜻이다. 여기에 한일 경제전쟁의 조정자 역할로 관심을 모았던 미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전격적인 개입에는 선을 그으면서 기계적인 우려만 보이고 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뉴저지주 소재 자신의 골프클럽으로 휴가를 떠나기 전 기자들과 만나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지 못해 걱정”이라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 했다.

경색된 분위기는 24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두고 요동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중국과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홍콩사태를 두고도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발사체 도발 및 군비경쟁이 벌어지며 동북아시아 전역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은 아시아의 중요한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며, 이를 상징하는 것이 지소미아다. 만약 한국이 지소미아 연장에 합의하지 않으면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 자체가 휘청일 수 있다.

일본 입장에서도 지소미아는 중요한 카드다. 가뜩이나 북한현안에서 밀려났다는 우려가 큰 가운데 지소미아도 폐지되면 아베 내각은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여기에 일본의 경제보복이 글로벌 전자 공급망을 교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한편, 이러한 흐름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부담스럽다.

한국 입장에서는 지소미아를 중심으로 미국을 설득, 궁극적으로 일본과 합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21일 열리는 한중일 외교장관회담 참석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단 지소미아를 두고 "연장 여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면서 "상황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지소미아 카드를 바탕으로 한일 경제전쟁의 타협점을 찾겠다는 의지다.

향후 분위기는?
일본이 8일에 이어 19일 자국의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허가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일본의 강경기류에 변화가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제보복이 이어질수록 한국의 불매운동도 거세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국내 기업들의 탈 일본 행보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9일 일본 기업인 모리타(森田)화학공업이 올해 말부터 중국 공장에서 고순도불화수소 생산에 나선다고 보도하며 "삼성전자 중국공장 등에 납품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도 나섰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 13일 오봉 명절을 맞아 지역구인 중의원 야마구치현 제4선거구에 방문해 “민민간의 일은 민민 간에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전쟁은 정부와 정부의 일이며, 민간에서는 필요이상 확전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한국도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축사를 통해 "우리는 세계 6대 제조강국, 세계 6대 수출강국의 당당한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열었고, 김구 선생이 소원했던 문화국가의 꿈도 이뤄가고 있다"면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도록 다짐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근대화의 과정에서 뒤처졌던 동아시아는 분업과 협업으로 다시 경제발전을 이뤘다. 세계는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불렀다"면서 "침략과 분쟁의 시간이 없지 않았지만, 동아시아에는 이보다 훨씬 긴 교류와 교역의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의 최근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한편 분업과 협업의 가치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극일을 여전히 강조하면서도 일본과의 전격적인 대화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면서 "공정하게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이어지고 있으며, 극일 메시지는 유지하면서도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일본 언론도 나섰다. 아사히는 16일 "아베 정권은 과거의 반성에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여기에는 한국의 씻을 수 없는 불신감이 있다"면서 "양국은 이미 호혜 관계로 발전해온 실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사 문제에서 시작된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부당성에 무게를 싣는 한편, 두 나라의 협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일본의 최근 반응을 두고 정밀타격을 위한 포석, 혹은 유화적인 입장 변화로 보고 있다. 전자의 경우 일본이 약간의 제재 완화를 통해 한국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는 주장이며 후자는 전쟁의 타협점이 보인다는 논리다. 중국에서 진행될 한중일 외교장관회담과 지소미아 연장과 관련된 현안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