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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일이 힘들까? 사람이 힘들게 할까?
   

“세수를 하고 온 것을 보니, 울었나 봐.”

“혹시, 여직원인가요?”

“아니, 서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야.”

“남자가 울 정도면 엄청 난처한 상황이겠군요.”

“걔 때문에 자리를 뜰 수가 없어.”

약속 시간에 늦어지는 지인이 카톡으로 엉뚱한 얘기를 전했다. 사연인즉슨 모 회사의 CEO로 있는 지인이 두 지역을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두 지역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 지인에게 부탁할게 있었는지 서로 자신들이 대접 하겠다고 요란스레 준비를 했다고 한다.  일정상 먼저 방문한 지역에서 간단히 전과 냉면으로 요기하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뒤에 다음 지역으로 가서 또 한번 식사를 하려 했는데, 그 전 지역에서부터 따라온 젊은 직원 하나가 또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놓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회장님 식사 좀 전에 하셨는데요.”

신입인지 경력인지는 알 수 없으나, 먼저 방문한 지역 김대표의 사무실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겨우 4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 마디가 중요한 손님인 지인을 포함, 두 지역 대표를 비롯하여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버렸다. 결국 다음날 다른 일정들에 지장을 단단히 줄 정도로 두 지역 사람들은 옥신각신 해댔다.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다. 지인에게 뭔가 큰 부탁을 하기 위해 초대를 했는데, 저녁 식사를 먼저 대접했다는 이유가 화근이 되어 대화는 나아갈 수 조차 없었다.

 

꼬리가 개를 흔드는 상황은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

문제는 둘째 날 이른 오후에 일정을 마무리한 뒤에 서울에서 나랑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가는 그 시간까지 출발도 못하고, 지역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나에게 카톡으로 양해를 구해왔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 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달라고도 했다. 그냥 막무가내로 일어나 버리면 본의 아니게 실수한 그 젊은 직원은 틀림없이 회사 생활이 어려워 질 듯 하기에 선뜻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아는 그 지인은 성격이 괄괄하고 깐깐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CEO라, 그를 대하면서 꼿꼿한 자세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차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맡긴 뒤에 대중교통으로 지방을 갔는데, 먼저 방문했던 곳의 대표와 사람들이 냉큼 그 지역의 유명한 고깃집으로 모셔간 것이었다. 부탁할 것이 뭔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뭐라도 대접해서 보내려는 마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다음 방문지의 대표들 역시 저녁 식사는 자기들이 대접한다고 단단히 벼르고 유명 한정식집을 잡고 진수성찬을 차리고 있었다고 한다.

지인은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먹은 티를 내지 않고, 적당히 두 번째 식사도 하려 했는데, 그만 말 한마디에 산통이 깨진 것이었다. 문제는 마음 상해버린 사람들이 식사 문제로 서로 옥신각신 하며 일 얘기는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속에 능구렁이가 수십 마리는 들어앉아 있는 김대표이기에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것은 아닌데, 계속 눈치를 주면서 젊은 직원이 안절부절하게 만들고 급기야는 참지 못해 눈물을 쏟았고, 그를 감추기 위해 세수까지 하고 온 것이었고,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지인은 쉽사리 다음 스케줄로 이동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걔를 내가 데리고 가고 싶지만…..’

‘김대표님께 잘 얘기해서 후환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얼른 일어서세요.’

‘괜히 나 때문인 거 같은데 걔한테 위로라도 해 줘야 할까?’

‘직접 위로 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지인은 상황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 직원 보러 다음에 또 와야겠으니, 김 대표가 잘 데리고 있어요.’라고 단단히 말하며 나왔다고 한다.

몇 달 뒤에 지인이 다시 그 지역을 방문했을 때 과연 그 직원은 그때까지 김 대표 밑에서 일을 잘 하고 있을까? 아닐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겨우 말 한 마디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고, 그 직원은 지인을 배려해서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결과는 스스로를 고락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결과를 가져왔다. 일이 문제였을까? 결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이런 일은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흔하다.

 

사실 이해하기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아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라는 말이 있다. 사기의 자객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진의 자객으로 있던 예양은 원래는 자신을 하찮게 대한 범씨와 중항씨를 모셨으나, 이들을 죽인 지백을 다시 모시게 된다. 하지만 예양은 자기를 알아보고 국사를 맡길만큼 총애하는 지백은 마음을 다해 따랐다. 하지만 지백은 조양자와의 전쟁에서 패해 목숨을 잃게 된다.

이번에는 예양은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그렇게 만든 조양자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처음에는 변소의 오물을 퍼내는 일을 맡아 조양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들통이 났다. 하지만 주군의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는 예양을 오히려 칭찬하며 놔주었고, 예양은 다시금 복수를 하기 위해 변장을 하고 길목을 늘 노리게 된다. 하지만 또 발각되어 잡히고 만다.

두 번째는 대노한 조양자가 예양에게 묻는다.

“네가 모시던 범씨와 중항씨를 죽인 지백이나, 지백을 죽인 나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

“지백은 나를 선비의 예로 대함으로 나를 알아봐 주었다.”

조양지는 그의 말에 감동하여 살려주려 했지만 주위 신하들의 거센 반대에 어쩔 수 없이 처형하게 했다. 그 때 예양은 ‘당신의 옷이라도 베어서 복수하기 위한 뜻을 이루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조양자는 기꺼이 옷을 내어주었고, 예양은 비수로 옷을 자르고 난 뒤, 자결했다. 이 일이 후세에 전해지며 사람들은 예양을 기억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들 ‘이해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뭔가를 배울 때에도 많이 사용하는 말이지만,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이해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사용하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전혀 이해가 바탕이 되지 못한 상황인데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관계’나 ‘이해’를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듯하다. 그냥 습관적으로 그 상황을 대충 넘어가기 위해 사용할 뿐이다.

이직하는 사람들의 8-90%는 이직의 원인을 사람과 사람관계라고 입을 모은다. 거기에 사람과의 힘든 관계의 70% 정도가 상사와의 문제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관계를 벗어나면 ‘사랑’ 보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가 기본이다. 평소에 회의시간이나 대화를 할 때에 ‘서로 이해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자주 사용하지만, 결론은 뻔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길 밖에 없다.

상대방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으면서, 자신을 알아주기를 원할 뿐이다. 상사는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기를 원하고, 부하 직원은 보여준 몇 번의 행동이 모범 답안이 되고 그 몇 가지만으로 다른 행동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또 많이 듣게 되는 것이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완전히 믿게 되면 모든 것을 맡길 것이지만, 완전히 믿기 전까지는 의심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한다. 과연 사람이 사람을 완전히 믿을 수 있을까? 반대로 전폭적인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디까지 해야 할까? 어떤 사람은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놔도 실수 할 수 있는 법이라며 인정을 받는 한편, 다른 사람은 제대로 일을 해 놔도 사소한 문제가 트집 잡히기도 한다. 제대로 마음 맞는 상사 만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통하는 후배 만나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서 코드경영이니 코드정치니 하는 말들이 나온다. 매사에 있어서 서로 비슷한 방향으로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의 부류를 신뢰나 이해라는 포장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십년 가까이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냈지만, 어느 순간을 계기로 그 뒤론 절대로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물론 내가 마음이 좁아터져서 벌어진 일임을 실토하고 나의 잘못을 먼저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을 먼저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시 가까워지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주중에 아르바이트를 두 세 개씩 뛰면서 학교를 다니는 나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히 나은 환경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모든 것을 나에게 부탁하고 의지하는 친구가 있었다. 시험기간이나 리포트를 포함해 모든 것을 나를 통해 해결하려 했다. 문제는 내가 도움을 주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나중에는 더 빨리 가져오지 않았냐는 둥, 이런 것을 하기 위해 자료를 뒤지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둥 늘 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참고 참다가 딱 한 마디를 했다. “내 것 보고 베끼지 말고, 스스로 해봐.” 서로 불편함이 속에 들어 있었던지 그 말을 한 이후로 그렇게 막역했던 관계는 소원해졌고, 졸업을 계기로 다시는 연락조차 않았다.

불편한 마음은 언제든 드러나기 마련이다. 소위 사람을 부리는 입장에서는 그런 불편한 마음을 언제 드러내는 지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신뢰라는 미끼를 빌미로 해서 말이다. 의인물용 용인물의(擬人勿用 用人勿疑)가 빛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신뢰는 신뢰를 낳지만, 불신은 불신을 낳을 수 밖에 없다. 써 놓고 언제 배신하는 지를 기다리는 것처럼 허망한 일도 없다. 그리고 돈을 받고 일 하는 관계인데, 마치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만 봐주면 되는 것이 아닐까?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08.20  06: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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