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한일 경제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당분간 두 나라의 냉각기는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이어지는 한 한국의 반격도 계속될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중재 역할에 나설 것으로 보이던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싸잡아 비판하는 등 사태가 복잡해지고 있다.

한일 외교차관회담 전격 취소

일본은 지난달 4일 한국에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3대 소재 수출 규제를 거는 한편 2일에는 각의를 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방침을 확정했다. 이후 시행령을 통해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밝히지 않으며 소위 숨 고르기에 들어갔으나, 일본의 경제보복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두 나라의 냉기류가 여전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소통창구도 막히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광복절 직후인 16일, 혹은 17일 아키바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회담을 갖기로 했으나 최근 전격 취소됐다. 한일 경제전쟁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두 나라가 최소한의 소통에 나서려고 했으나,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모두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두 나라는 내주 중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을 계기로 한일 외교 장관회담을 여는 방안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두 나라 모두 현안 해결을 위한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전격적인 ‘담판’ 가능성도 열려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아직은 이러한 협의 가능성을 논할 상황이 아니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민간교류 계속돼야”...그러나

한일 경제전쟁이 벌어지며 한국에서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되자 일본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사실상 ‘소재 탈일본’을 선언하며 강공모드로 돌아서자 일본 내부에서도 동요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베 총리도 나섰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 13일 오봉 명절을 맞아 지역구인 중의원 야마구치현 제4선거구에 방문해 “민민간의 일은 민민 간에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전쟁은 정부와 정부의 일이며, 민간에서는 필요이상 확전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일본 내부에서 미묘한 흐름이 포착되고 있으나, 한국 정부는 물러설 조짐이 아니다. WTO를 중심으로 국제 여론전에 돌입해 일본의 경제보복 부당성을 알리는 한편,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최고수준의 압박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오염류 방류 계획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제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면 아베 내각의 아킬레스건인 2020 도쿄올림픽을 공격 범위에 넣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후쿠시마 논란과 경제전쟁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효과적인 대응 로드맵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한편 한일 경제전쟁의 조정자 역할로 관심을 모았던 미국은 일단 요지부동이다. 전격적인 개입에는 선을 그으면서 기계적인 우려만 보이고 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일 미 뉴저지주 소재 자신의 골프클럽으로 휴가를 떠나기 전 기자들과 만나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지 못해 걱정”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보였다.

14일에는 펜실베이니아주 모니카에 있는 셸 석유화학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한국의 안보무임승차를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