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조, 171×138㎝ 순지+채색+먹, 1999

송수련 작가는 사물의 즉물적인 표면이 아닌(흔히 결정화된 형식을 취하기 쉬운), 그로부터 환기되는 정서의 다발에(비결정화의 방식에)주목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모호하게 비쳐질 수도 있는 이러한 태도는 회화 특유의 뉘앙스를 극대화하기 위한 의식적인, 무의식적인 전략적 장치로 기능한다.

곧 내면화한, 혹은 체질화한 정서가 가시적인 회화적 표현과 구분되지 않음으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회화적 효과의 지평을 증대시키고 있다. 작가는 이렇듯이 회화적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백발법이라는 특유의 기법에 기대고 있다.

주로 아교나 계란으로 처리된 부위가 완전히 마른 후에 그 위에 안료를 가하면 그 부분이 안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성질을 토대로 특정 부위가 흰 여백으로 드러나게 하는 백발법의 과정 자체는 물론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작가의 작업 중 특히 근작에서처럼 이 기법이 회화적인 화면을 가능하게 하는 거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경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주로 점묘로 처리된 부위에 집중적으로 반영되며, 점묘 외에 여타의 드로잉적인 효과에까지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아교나 계란으로 처리된 부위가 지나치게 두드러져 보일 때에는 그 위에 호분을 가해 화면이 다시 안료를 받아들이게 조율하기도 한다.

이렇듯이 아교나 계란, 호분, 그리고 안료가 때로는 순차적으로, 때로는 무구분적으로 화면에 가해지면서 중층화하면서, 화면 내부에 침잠과 울림을 강조하는 회화적 뉘앙스가 풍부한 화면을 가능하게 한다.

더러는 호분과 함께 토분이 사용되기도 한다. 토분을 사용한 그림은 여타의 그림들이 비교적 투명하게 느껴지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불투명한 인상을 준다. 토분을 전면적으로 사용한 그림에서는 그 표면에 무심한 듯 그어진 선묘와 어우러지면서 발그스레한 흙 특유의 발색효과를 띤다.

이러한 효과로 인해 그림은 마치 흙 혹은 대지 자체를, 오랜 시간의 지층을 경과하면서 원래의 이미지를 흔적으로만 간신히 상기시킬 따름인 벽면을, 조선자기 중 특히 서민 혹은 민중의 정서를 (소박한 자연스러움의 미학으로 대변되는)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분청사기의 표면을 보는 듯도 하다.

송수련(한국화가 송수련,한지화가 송수련,송수련 화백,宋秀璉,SONG SOO RYUN,송수련 작가,Hanji Painter SONG SOO RYUN,한지작가 송수련,여류중견화가 송수련,KOREA PAPER ARTIST SONG SOO RYUN, KOREAN PAPER ARTIST SONG SOO RYUN)작품의 이러한 표면적인 느낌은 차라리 특정의 정서와 일체가 된 나머지 일견 추상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글=고충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