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의 공식 인수 의사를 밝힌 지 7개월이 지났지만 인수절차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슈퍼 빅 1체제로 인한 독과점과 구조조정, 조선업 생태계 파괴 등의 우려에 부딪힌 탓이다. 최근엔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한 일본의 기업결합 심사 ‘몽니’, 공정거래위원장 교체 등도 변수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무리하게 매각을 추진할 경우 ‘제2의 한진해운 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 인수, 7개월 넘도록 속도 안나는 까닭?

올해 1월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보통주 지분 55.72%를 현대중공업에 매각하는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돌연 발표했다. 이어 3월 8일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 인수를 위한 본계약을 체결했다. 일사천리로 이뤄지던 인수과정은 노조와 지역사회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현대중공업은 5월 임시 주총을 열어 한국조선해양 법인을 신설하기에 이른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노조의 저지로 주총장을 변경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중공업 노사는 심한 마찰을 빚게 됐고, 대우조선해양의 기한 내 실사는 결국 불발되는 사태를 맞았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1일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했으며, 22일에는 중국 공정경쟁당국에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 출처=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지지부진한데는 크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독과점 체제 형성과 국제사회의 견제 심화로 인한 조선산업의 경쟁력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다. 

지금의 인수합병이 빅2(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로의 재편이 아닌 현대중공업을 필두로 한 ‘슈퍼 빅1’ 중심 체제의 개편이라는 것. 현재 통합을 추진하는 현대중공업그룹 4사 이외의 조선소들은 생존전략을 갖추기 어려운 만큼, 오히려 한국 조선산업의 생태계를 허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두 회사의 기업결합이 경쟁력 향상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소속된 노동자들이나 하청기업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는 고용 불안정과 일자리 감소로 직결된다. 실제 현재 대우조선해양은1400억원대 하도급 미지급 문제로 검찰에 고소까지 당한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은 엔진사업을 제외한 해양플랜트, 특수선, LNG선 등 사업 분야에서 대우조선과 상당수 중복된다. 이에 경쟁력 제고를 위해 인력 감축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아울러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에 중복 납품하는 공동 하청업체수가 상당한 수에 달해 이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2015년 기준 대우조선의 하청업체 수는 1차 밴더 227개사를 포함해 총 598개사에 달하며, 이 가운데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에 중복 납품하는 공동 하청업체 수는 372개사에 달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도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한 일본의 기업결합심사 ‘몽니’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서면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에 어깃장을 놓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본이 국내 조선업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도 대우조선에 대한 산업은행의 공적자금 투입과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관계까지 악화돼 합병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재벌개혁론자로 알려진 조성욱 서울대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내정되면서 기업결합심사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2의 한진해운 사태’ 되풀이 되나 

상황이 이쯤 되면서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채권단 영향력 강화를 위해 무리하게 매각을 추진할 경우 ‘제2의 한진해운 사태’가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황이 최악이었던 2016년 이후 2년 연달아 흑자를 내면서 경영 정상화의 기반을 닦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2017년 개별 기준 매출 11조1018억원, 영업이익 7330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보다 매출은 13.4%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2011년 이후 6년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2017년 말 부채비율도 281%로 2016년 말 2185%와 비교해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에는 9조5998억원의 매출과 1조444억원의 영업이익, 946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은 업황 침체 여파로 전년 동기 대비 9.7% 줄었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45.8%, 28% 증가했다. 지난해 흑자를 기록한 조선사는 빅3 가운데 대우조선해양이 유일하다. 

이들 실적은 2016년 발표된 대우조선 경영정상화안에서 목표치로 설정한 실적을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당초 경영정상화안이 추정한 영업이익은 2017년 130억원, 2018년 870억원으로 실제 영업이익은 각각 56배, 12배나 더 많다. 

▲ 대우조선해양 최근 영업이익 추이.출처=이코노믹리뷰 이가영 기자

조선업황이 살아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무리한 매각을 추진하는 것은 과거 한진해운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2016년 정부는 금융 논리를 앞세워 한진해운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높다는 보고서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에 구조조정의 목표가 됐어야 할 산업경쟁력은 크게 훼손돼 뒷전으로 밀려났고, 한진해운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이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해 경영정상화를 어느 정도 이룬데다 지난해부터 조선업계가 수주를 회복한 점을 감안, 지금이 M&A 최적기라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영정상화에 투자한 금액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회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이러다보니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에 대한 특혜 시비까지 불거지는 상황이다. 더 많은 인수후보들을 고려할 경우,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가치가 높아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으로 특정 지어놓고 매각을 결정·추진한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매각이 이뤄질 경우 현대중공업은 2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과 이로 인한 경영정상화 효과를 고스란히 누리게 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합병 리스크에 대한 선결 없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한진해운 청산사태의 반복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며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투입해 살린 대우조선을 독자 생존이 아닌 인수합병(M&A)한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