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영 바이오네틱스 대표가 5일 경기 수원 광교 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은 편하고 안전하다. 그러나 새로움이 없고 뻔한 결과가 예상된다. 시대의 변화를 이끈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이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말이다.

정두영 바이오네틱스 대표는 녹내장과 난치성 혈액암 분야에서 신대륙을 찾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작고 열악한 환경이라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블루오션 개척에 초점을 맞추고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면역항암제 등 일확천금을 노리고 인기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회사들과 비교했을 때 마음가짐부터 남달랐다.

정 대표는 “녹내장, 난치성 혈액암 등의 치료제는 미충족 욕구(unmet needs)가 굉장히 높지만 시장이 작거나 유망한 기술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많은 회사가 활동하지 않고 있다”며 “바이오네틱스는 이와 다르게 미충족 요구가 있다면 어떤 분야든지 활동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표적항암제와 녹내장 치료제의 재발견

2017년 2월 설립된 바이오네틱스는 저분자 기반의 합성신약 개발 전문기업이다. 특허청에서 의학·화학 분야 특허심사를 담당했던 정두영 대표가 동화약품 연구소장 출신인 이진수 CTO, 전 헤라우스코리아의 조현용 COO와 의기투합해 회사를 창업했다. 작년에는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 출신 박승현 이사를 CFO로 영입해 108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설립한지 3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다수의 벤처캐피탈로부터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총 146억원의 투자금을 조달했다. 이를 통해 올해 상반기 2종의 핵심 파이프라인의 전임상을 완료했다.

바이오네틱스는 현재 표적항암제(NTX-301), 녹내장 치료제(NTX-101) 등을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보유하고 있다.

NTX-301은 골수형성이상증후군(MDS)와 급성골수성백혈병(AML)을 적응증으로 하는 표적항암제다. MDS와 AML은 골수에서 발생하는 악성 혈액암으로 흔히 백혈병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뼈에서 혈구를 생성하는 기관인 골수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과 같은 혈액세포를 형성한다. 하지만 MDS와 AML에 걸리면 골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미성숙한 혈액 세포를 생성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미성숙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증식해 악성 혈액암으로 발전하고, 점차 몸이 쇠약해지면서 사망에 이르게 한다. 특히 MDS와 AML은 65세 이상 고령일수록 발병률이 매우 높고,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생존율도 낮은 편이다.

정 대표는 “65세 이상 고령 환자군에서 MDS와 AML을 치료할 수 있는 옵션은 제한돼 있다”며 “실질적으로 불치병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들 환자군을 위한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흔히 노화, 스트레스, 발암물질 등의 영향으로 DNA 메틸화가 과도하게 진행되면 MDS/AML을 유발한다. DNA 메틸화는 특정 유전 인자의 발현 여부를 결정하는 On/Off 스위치로 볼 수 있다. NTX-301은 암세포에서 특이적으로 변형된 DNA 메틸화를 정상적으로 만들어 암세포가 정상 세포로 분화되거나 사멸하도록 유도한다. 전임상 동물실험을 통해 경쟁 약물보다 독성 안전성과 암세포 억제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바이오네틱스가 보유 중인 파이프라인 현황. 출처=바이오네틱스

녹내장 치료제인 NTX-101은 코르티솔 농도가 녹내장의 전형적인 증상인 안압 상승과 허혈성 망막, 시신경 손상에 관여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개발됐다. 코르티솔 농도를 조절하는 효소 저해제로 단순히 안압을 떨어뜨리는데 그치지 않고 안압을 정상범위로 조정하는 기능까지 더해 치료효과를 높였다. 이로 인해 시신경을 직접적으로 보호하는 효과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대표는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 안압이 전혀 올라가지 않아도 시신경 손상이 진행되는 정상안압 녹내장 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가 약 60%에 이른다”며 “현재까지 이러한 환자를 위한 검증된 치료제는 없기 때문에 미충족 수요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101은 전임상 동물 실험에서 안압조절 및 LCD(녹내장 진행정도 지표) 복원 등 시신경 보호효과를 확인했다”며 ”안압을 정상적으로 조정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어 정상안압 녹내장 치료제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NRDO와 다르다

바이오네틱스는 연구소나 생산시설 없이 신약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 기업과 종종 비교된다. 하지만 바이오네틱스는 신약 연구개발보다 기술수출에 초점을 맞춘 NRDO와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NRDO는 말 그대로 연구(Research)는 하지 않고 오직 개발(Development)만 시도하는 사업모델을 일컫는다. 외부 파트너사로부터 도입한 신약 후보물질의 가치를 끌어올린 뒤 기술이전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게 핵심이다. 신약 연구개발 비용과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은 사업모델로 꼽힌다.

정두영 대표는 “바이오네틱스는 NRDO에 가까운 모델이긴 하지만 버츄얼 바이오텍을 표방한다”면서 “NRDO가 신약 연구개발에서 이미 정해진 후보물질을 가지고 계획된 임상 트랙을 따라가는 형태라면, 바이오네틱스는 이보다 앞선 디스커버리 단계의 기술이라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공동연구를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정 대표는 NRDO 기업과 마찬가지로 기술이전 가능성도 시사했다. 다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기술수출은 지양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기술을 이전하고 기술료를 많이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초기 조건이 좋지 않더라도 우리와 함께 신약을 잘 개발할 수 있는 파트너사가 있다면 손을 잡고 싶다”고 말했다.

▲정두영 바이오네틱스 대표가 자사의 사업모델과 핵심 파이프라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현재 바이오네틱스의 사업모델은 VIPCO(Virtual Integrated Pharma Company)로 분류돼 있다. 신약 개발에 필요한 거의 모든 활동을 외부 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이다. 초기 개발 단계에서 자금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검증된 파트너사를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고정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실제로 바이오네틱스는 IDACO, BDC 등 기술사업 관련 컨설턴트 업체와 손잡고 다수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업체가 전 세계 대학이나 공공 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기술에 대한 정보와 아이디어를 바이오네틱스에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 별도의 실험실이 없는 바이오네틱스는 최첨단 연구시설을 갖춘 다수의 임상시험수탁기관(CRO)과 협력해 프로젝트의 안정성과 유효성을 검증한다.

정 대표는 “바이오네틱스는 직접 연구개발(R&D)에 참여하지 않지만 개발 초기부터 임상 기획, 설계 기능을 수행하고 다양한 파트너사와 협력해 전체 프로젝트를 관리한다”면서 “기존 제약사들이 갖추고 있는 모든 영역을 수행하지만 보다 효율적이고 가상화된 운영을 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회사 이름 붙인 신약 출시 목표

정 대표의 최종 목표는 바이오네틱스의 이름을 단 신약을 출시하는 것이다. 20~30년 뒤의 일까지 고려한 장기적인 계획도 이미 세워뒀다.

우선 현재 가동 중인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한층 끌어올릴 계획이다. 바이오네틱스는 현재 101과 301의 전임상 개발을 완료했다. 올 하반기 2개의 파이프라인에 대한 임상 1상을 진행해 본격적으로 치료효과를 검증한다. 101의 경우 301에 비해 상대적으로 결과가 빠르게 도출되는 만큼 내년 중으로 임상 1상을 완료하고 곧바로 임상 2상 준비에 들어갈 전망이다.

정 대표는 2개의 핵심 파이프라인을 앞세워 내년에 코스닥 시장의 문도 두드릴 예정이다. 2021년 코스닥 입성을 목표로 기술특례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궁극적인 목표는 신약 개발이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자금 조달을 위해 상장이 필요하다”면서 “다수의 전임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회사의 기술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향후 개발 일정. 출처=바이오네틱스

바이오네틱스는 101과 301의 뒤를 이을 차세대 파이프라인 개발에도 지속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 내년까지 대장암 치료제 NTX-302의 전임상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향후 101과 301 중 하나를 기술이전하거나 실패를 하더라도 공백을 빠르게 메꿀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지속적으로 보강해 나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일정 개수 이상의 파이프라인이 전임상, 임상 개발에 들어갔을 때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2개 중 하나를 중간에 팔아버리면 성장동력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당장에는 수익처리가 되겠지만 다시 성장동력을 끌어올리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바이오네틱스는 2개의 핵심 파이프라인을 앞에 보내고, 나머지 2개의 파이프라인을 전임상 라인에 대기시켜놓고 있다.”

정 대표는 니치마켓(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만큼 이 같은 전략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바이오네틱스와 같은 소규모 기업들이 글로벌 제약사를 상대로 블록버스터 영역에서 경쟁하기란 쉽지 않다. 시장 규모가 작더라도 좋은 치료제를 만들어낸다면 얼마든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정 대표는 주장했다.

그는 “지금까지 국내 바이오텍은 자체적으로 증명한 역사가 없다”면서 “같이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열심히 신약을 연구개발해 성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