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르는 돌(Rolling Stone #493), Acrylic on paper, 99.5×70.5㎝, 2019

2006년 ‘어떤 상황’전과 관련해 흥미로운 부분은 이즈음 이르러 특수하고 개별적이며,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가 전면에 부상하면서5) 근본적으론 ‘존재방식’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주변화 된 우리에서 ‘현존재’(Dasein)에 관한 예민한 자기투영이 이뤄지는 시기이자, 작가(서양화가 안준섭, 안준섭 작가,Ahn Junseop,Artist Ahn Junseop,painter Ahn Junseop)의 철학내지는 가치관이 진하게 스며드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래서인지 굳이 친절하지 않은 그림임에도 우린 ‘어떤 상황’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표상체계를 통한 감정교류가 수월해지고, 물성과 반비례한 관념의 노획을 통한 찰나의 연속인 존재에 관한 자문을 더 이슥하게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 구르는 돌(Rolling Stone #541), Acrylic on canvas, 162×130㎝, 2019

더구나 한층 은유되면서 자기중심적 내면화가 엿보이는 흐름은 과거의 작업과 변별력을 지니게 하는 원인이다. <어떤 상황-우리나라>를 비롯해, <어떤 상황-그해 여름>, <어떤 상황-예술가>, <어떤 상황-놀기>, < 어떤 상황-삶>, <어떤 상황-자화상> 등의 작품에서 열람되듯, 이 상황 들은 드러남과 감춰짐이며, 그 둘은 상보적 작용을 거치며 작품 내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마치 억 겹의 나날을 드러내는 것 마냥 서서히 말라 고착된 채 집약된 삶의 궤적에서 체감했을 법한 ‘어떤 결’6) 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특유의 자연적이며 본질적인 것을 탐구해온 작가 작업에서의 맥락은 유효하다. ‘매립지…’ 연작에서 이해했듯, 자연을 정복하고 사회와 인간 정신을 개조함으로써 무한한 진보 발전을 기대하고 지상 천국을 꿈꾸던 근대인이, 도리어 기계로 대변되는 문명과 대중 속에서 그 본래적인 자아를 소외(-상실)하고, 그곳에 가장 근원적인 현대문명의 위기와 갈등이 숨어 있다는 메시지도 살아 있다.

특유의 리듬감 있는, 다시 말해 보이지 않으나 느낄 수 있는 내재율(內在律)이라는 특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도 이 즈음이다.

△홍경한│미술평론가

 

▲각주(脚註)

5)그래서일까, 안준섭이 발표한 일련의 엣 작업들에선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비판을 내포 하고 있는 하이데거(Heidegger)의 ‘일상인’(das Mann)이나, ‘구토’, ‘부조리’로 대변되는 사르트르(Sartre), 카뮈(Camus)의 소설에서 체감되는 감성이 배어 있다.

이에 필자는 문득 그 의 대표작인 <덮혀진 땅>을 중심으로 한 전후 작업들을 보며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숱한 질문과 함께 어쩌면 의문의 해답으로 가는 길에 작은 나침반을 제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6) 여기서 말하는 어떤 결이란, 현실에서 체감하는 절망이나 현실의 암담함 혹은 작가 자 신의 정체성에 관한 것일 수 있다. 어쩌면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느낄 법한 모든 순간자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문자화 혹은 조형화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