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서인원 기자] 청년들에게 고시원은 집이라기보다는 기숙사에 가까웠다. 그들은 취업이나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2년 이내 단기 목적으로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었다.

청년들은 왜 고시원에 사는 걸까. 또 고시원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그 이유가 궁금해, 12일 고시원이 많이 분포된 노량진 학원가와 신림 대학동을 찾아 고시원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그들은 주로 직장을 잡기 전이나 시험을 준비할 목적으로 고시원을 택했다. 보증금이 없고, 월세 하나로 관리비가 해결되는 것도 고시원을 선택한 주요 요인이었다.

고시원 거주자 대부분은 청년

고시원은 통계청의 통계자료에 ‘주택 이외의 거처’로 잡힌다. 주택 이외의 거처는 말 그대로 주택에 해당되지 않는 곳이다. 통계청이 정의한 주택의 요건은 부엌과 한 개 이상의 방이 있어야 하고 독립된 출입구를 갖춰야 한다. 또 영구 또는 준영구 건물이어야 한다. 이것에 하나라도 부합되지 않으면 주택 이외의 거처에 해당되는 것이다. 주택 이외의 거처 비율 중 가장 많이 차지하는 시설이 바로 고시원이다. 고시원은 주로 청년층이 거주하고 있다.

2019년 3월 발행된 국토연구원의 <국토이슈리포트>에 따르면,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37만 가구 중 51.5%(19만 가구)는 수도권에 살고 있고, 이 중 68.7%(13만 가구)가 고시원(고시텔)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중 75% 청년가구(9만8000가구)로 나타났다.

▲ 출처=국토연구원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서울 전체 고시원 수는 2018년 5840개로, 2년 전(2016년) 5862개에 비해 줄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시원 찾는 이유, 보증금 부담 없고 단기 계약 가능하기 때문

강모씨는 20대 후반으로 지방에서 올라왔다. 일자리가 서울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노량진에 있는 고시원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공시생이었던 친구 추천으로 이곳 노량진에 왔다. 3개월째 거주 중이다. 강씨는 일할 곳이 어디가 될지 몰라 보증금 부담이 없고, 1년 단위로 계약하지 않아도 되는 고시원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덕분에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회사 근처로 방을 옮길 계획을 세웠다. 강씨는 현재 월 36만원을 월세로 내고 있다. 수입의 20%다. 그는 고시원의 불편함으로 사생활과 안전 문제를 들었다. 소음 문제도 컸다. 일부러 조용한 곳을 찾아 아파트 단지 근처로 구했지만 내부가 문제였다.

강씨는 “아파트 단지 쪽에 있는 고시원에 산다”며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20~30대로 보이는 수험생도 있지만, 아이나 노인 분 등 연령대는 다양하다”고 전했다. 이어 “학원가 쪽은 대부분 수험생이고 대입 공부하는 20대 초반 친구들도 보인다. 취업 준비하는 20~30대도 많다. 직장인도 있지만 수험생이 아무래도 많은 편이다. 비율은 2:8 정도”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일부러 창문이 큰 방을 구했으나 바로 앞이 다른 고시원이라 마음 편히 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채광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고시원의 단점으로 들었다. 강씨는 “창문만 제대로 있어도 덜 칙칙하고 고립감도 적게 느껴질 것”이라 지적했다. 또한 “요즘은 조금 개선돼서 창문이 아예 없는 방은 잘 없고 못해도 내창 정도는 있지만 아직은 열악한 편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안전 문제에 대해서 “고시원들은 복도가 좁은 곳이 많아 화재가 나면 대피할 때 취약할 것”이라 걱정했다. 고시원을 구할 때 복도의 면적을 고려한 점도 답답한 게 싫은 것도 있지만, 화재에 대한 취약 여부도 한몫했다고 밝혔다. 이어 “건물 하나에 최대한 많은 방을 만들려고 나머지 공간을 너무 줄이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고시원에 살면서 힘든 점은 없냐는 질문엔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고시원이 마치 “기숙사 같다”고 했다. 그에게 고시원은 하루종일 밖에 있다가 잠만 자러 들르는 곳이었다.

반면 결이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대방역 고시텔에 거주하는 20대 중반 김모씨는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출입문 바로 옆에 총무실이 있기 때문에 아주 늦은 밤만 아니라면 걱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화재 우려에 대해서도 방마다 화재 방지 시설이 설치돼 있어 별다른 걱정이 없다고 했다. 단 남녀 층을 확실히 분리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창문이 없어 햇빛이 들지 않는 방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창문이 각 방마다 있었으면 한다. 창문이 없다면 우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광과 관련해서는 앞선 강모씨와 일치된 의견을 보인 것이다.

▲ 노량진 학원가. 사진=서인원 기자

시설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

12일 노량진역 근처 거리는 책이 한가득 든 가방을 맨 청년들로 분주했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굳은 날씨에도 학원으로 바삐 향하는 모습이었다. 길거리 카페는 청년들을 타깃으로 한 것인지 2000원대에서 3000원대까지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다. 아메리카노를 1500원에 파는 곳도 있었다. 노량진역 4번출구 근처의 L 프랜차이즈 햄버거 집은 책을 펴고 공부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책 보는 데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곳곳에 복사, 제본, 프린팅 간판이 붙은 가게가 많았다. 또 고시원이 독서실과 학원 등과 가까운 거리에 인접해 있었다.

노량진역 근처 고시원을 탐문한 결과, 대체로 시세는 화장실이 없거나 지하에 위치한 곳은 30만원대로 나타났다. 샤워기와 세면대가 같이 딸린 화장실 있는 방은 40만원대였다. 엘리베이터가 딸려 있거나 평균보다 방이 큰 곳은 50만원대에서 60만원대까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량진 역 근처 K고시원 관리자는 “잠만 자면 된다는 생각에 화장실 없는 방을 찾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반면 시설에 따라 비교적 높은 비용을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기본적인 세탁실, 화장실 외에 독서실, 스터디룸, PC실까지 갖춘 J고시텔은 1층부터 9층까지 건물을 단독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로 각 층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곳의 월세는 1인실은 55만원, 2인실은 60만원이었다. J고시원 총무는 “다른 곳보다 비싼 편이긴 하다”면서 “안전 문제를 걱정하는 여성 분들이 많이 사는 편이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관리자가 열어줘야만 내부로 출입할 수 있었다.

보안 문제가 궁금해 다른 고시원들을 방문해봤더니 잠금 장치 등 출입문 시스템은 갖춰 놓았지만 문을 외부인이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해놓은 곳이 많았다. 관리자가 출타 중인 경우도 빈번했다. 시스템의 문제보다는 인력이 한정돼 있는 것이 허점이었다. 보안에 대한 우려로 일반인은 받지 않고 수험생들만 받는 곳들도 있었다.

소방 시설과 관련해서 고시원 관리자들은 “소화기가 비치돼 있고,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어 기본적인 안전 장비는 갖추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노량진역 근처 B부동산은 “고시원도 양극화가 있다. 60만원대 방을 찾는 사람과 30만원대 방을 찾는 사람이 갈린다. 특히 올해는 더 그런 편이다. 골목 깊이 위치하거나 시설이 노후화된 곳의 경우 20만원대 물건도 있다. 대체로 방을 구할 때 30만원대부터 찾고 있는 것 같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리비나 공과금 부담 없는 게 장점

20대 중반의 김모씨는 현재 5개월째 대방역 근처 고시원에 거주 중이다. 월 44만원을 방세로 납부한다. 수입의 30%에 해당하지만 지금은 부모님이 월세를 지원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아직 자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모씨는 “직장 다니기 전 잠깐 살려고 들어갔다. 부모님 지원이 필요해 방을 같이 알아봐야 하는데, 타지에서 당일치기로 방을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잠깐 지낼 거면 고시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취직했지만 아직 이사는 못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행동 반경이 조금 좁을 뿐 큰 불편함은 못 느낀다고 한다. 손 뻗으면 있을 게 다 있어서 가끔은 편한 느낌도 들지만 주변 친구나 가족은 자신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거기 불편하지 않느냐. 나 같으면 거기 못 있어”라는 식이다. 하지만 김씨는 "관리비나 공과금 추가 없이 다달이 월세로 44만원만 내면 된다는 게 장점"이라며 “욕심을 버리면 많은 것들이 따라온다”고 설명했다.

더 나은 주거 환경으로 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6개월 정도 일하고 보증금을 마련한 뒤 천천히 알아볼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신림 대학동에 1년째 살고 있는 전모씨도 “주거 공간에 애착을 가지는 타입이 아니라 무리해서 옮길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잠 자고 씻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뒤이어 가족들은 좋은 환경으로 이사 가라고 하지만 아직 여건이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 신림 대학동 고시촌. 사진=서인원 기자

소음이나 환기 문제 지적돼

“옆방 드라이 소리, 알람 소리까지 들려서 귀마개를 끼고 잡니다.” 신림 대학동에서 살고 있는 두 청년이 말했다. 그들은 소음을 가장 불편한 문제로 꼽으며 “어쩌다 있는 일이지만 술에 취해 들어오는 사람이 몇 번 고성방가를 저지른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불만도 있었다. 9월 개강을 앞두고 미리 방을 알아보러 다니던 한 서울대학교 학생은 냄새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현재 그는 고시원이 아닌 원룸을 찾아 다니고 있었다.

그는 “1층을 공용주방으로 쓰는 곳이 많아 자체적으로 순환 환기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공용 시설 관리가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에게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게는 고시원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한 적도 있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농담 반 진담 반의 얘기였다.

그는 “환기가 안 된다는 것은 건강에도 안 좋다는 이야기”라며 “고시원을 보러 다닐 때 환기 여부도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끔 방에서 몰래 담배피는 사람도 있어 총무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때도 많았다”고 했다. 관리자 측에서 시정 조치하지만, 보통 원장 1명과 총무 1명이 관리 인력의 전부이기 때문에 모든 불만을 재빠르게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같은 문제가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20대 후반으로 대학동 근처에 사는 전모씨는 “화장실이 좁아서 씻기 불편하고, 빨래 널 곳이 마땅치 않아 집에 널어 놓아야 한다”고 불만사항을 토로했다.

다만 전씨는 “싸고 좋은 집이 많이 생기면 좋겠지만, 싼 것과 질이 좋은 것이 양립하긴 힘들다”며 “지금보다 자리잡고 더 많은 돈을 받을 때나 돼야 이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시원에도 적정 기준 필요해

종합적으로 고시원에 사는 청년들은 크게 힘들어하거나 고립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취업, 시험 준비 등 주거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시설에 대한 불만이나 개선했으면 하는 사항도 있었다. 대체로 청년들은 소음 문제에 관해서는 일관되게 지적하는 편이었다. 사생활, 채광, 환기 등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사람 수에 비해 비치된 세탁기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의견도 있었다. 모두 방을 쪼개는 데서 나오는 문제로 보인다.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고시원이 단순히 숙식과 공부를 같이 해결하는 공간에 그쳤다면, 현재는 보증금 없이도 싸게 살 수 있는 사실상 주거 공간으로 개념이 변모했다”면서 “고시원이 빈곤한 청년들에게 가장 밑단의 거처로 쓰인다”고 주장했다.

진미윤 연구위원은 “이에 따라 고시원에도 적정 거주 요건을 마련하고 최소한의 1인당 면적을 할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 연구위원은 “노후고시원 간이스프링클러 설치 추경 예산이 반영됐지만 이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며 “화재 관련해서 소방청 차원에만 묶여서는 안 되는 문제”라고 첨언했다. 진 연구위원은 고시원에 딸린 창문으로는 환기가 잘 안 되고 비상 시 출구로도 쓰이기 힘들다는 것을 같이 지적했다. 진 연구위원은 “정부 차원에서 보다 거시적으로 이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기태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수익성을 이유로 방을 지나치게 쪼개거나 벽을 열악하게 설치하는 고시원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하는 등 적정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택과 동일 기준이 아니더라도, 준주택으로 기능하는 고시원에 대해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장 고시원 거주 실태가 나아지진 않더라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좁은 복도, 작은 창문 등 고시원의 문제로 지적된 것들이 안전과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고시원을 '다중생활시설'로 분류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표현을 어떤 개념으로 대체할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