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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0년]한지작가 송수련ⓐ‥명멸하는 점묘
   
▲ 관조, 145×112㎝, 2000

“유년시절에 나는 어두움의 장막이 적당하게 드리워진 정원에, 나뭇가지를 희롱하는 바람과 풋풋한 흙 내음에, 그 단단한 표면을 뚫고 삐죽 고개를 내민 이름 모를 풀잎들에, 그리고 풀잎들이 스치며 내는 서걱거리는 소리에(마치 저네들의 언어를 상기시키는) 매료되곤 했다.”

이 말은 작가의 회상으로써 그의 작업에 있어서 정신적 혹은 정서적 원형의 정체에 대해 말해준다. 아마도 그 정체란 작게는 외부와는 다른 어떤 세계로서의 정원을, 크게는 정원이 함축하는 자연 혹은 자연성 특유의 생명력을 말할 것이다.

대개가 그렇듯이 정원은, 특히 유년시절의 정원은 일정 정도의 내밀한, 은밀한 비밀스러움으로 인해 꿈의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밀스럽지 않은 정원은 없다. 그것은 유년의 정원이 다름 아닌 발길과 눈길이 닿지 않은 미답지이며 처녀지이기 때문이다.

   
 

유년시절의 정원은 이렇듯이 작가의 꿈을 대변하는, 혹은 꿈과 일체를 이루는 주관적인 공간이며, 때로는 자연이 갖는 생명의 비밀스러움을 펼쳐서 보여주는 장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이후 작가의 의식과 관심은 흙의 질감에, 분청사기의 문양에, 오랜 벽면의 표면에, 수련에 항아리에 하는 식으로 소재를 옮겨 다니기는 하지만, 결코 소재주의에 빠진 적은 없다. 요컨대 특정의 소재 자체를 대상화하고 그것의 재현을 회화의 목적으로 취하지 않는다.

대신 작가는 관조라는 방식을 취한다. 곧 소재가 작가에게 말을 걸어오는 특유의 방식에 주목한다. 이때 소재가 작가에게 말을 거는 방식은 주관적인 것이며 임의적인 것이다. 이러한 주관적인 이해와 해석을 전제로 하고서야 비로소 객관적인 소통이 당위성을 얻는다.

이렇듯이 사물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인 이해와 그 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소통이 만나는 접점이 다름 아닌 정서이다. 정서란 사물 자체로부터 기인한 것이기 보다는 그 사물이 환기시키는 어떤 특유의 느낌을, 인상을, 분위기를, 관념을 추상을 생산하는 반쯤은 무의식적인 채로 남아 있는 지층을 말한다.

흔히 작가(한국화가 송수련,한지화가 송수련,송수련 화백,宋秀璉,SONG SOO RYUN,송수련 작가,Hanji Painter SONG SOO RYUN,한지작가 송수련,종이회화 송수련,여류중견화가 송수련,KOREA PAPER ARTIST SONG SOO RYUN, KOREAN PAPER ARTIST SONG SOO RYUN)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한국성 혹은 한국적 정체성을 갖는 회화에서 그 지층을 이루는 것 역시 다름 아닌 사물에 대한 정서적 회화이다(사물의 즉물적인 제시와 비교되는), 융 식으로 말하면 사물 혹은 존재, 원형이 이러한 정서가 의미하는 바에 근접할 것이다.

△글=고충환/미술평론가

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  kdc@econovill.com  |  승인 2019.08.12  15: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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