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지난달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항공업계의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져가고 있는데다, 유력후보로 거론됐던 기업들이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내년이 넘어야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매각 주간사인 크레디트스위스(CS)증권은 다음주 초부터 입찰안내서(IM)를 배포할 것으로 알려진다. 입찰안내서에는 매각 일정과 거래 구조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금호산업과 CS증권은 9월 초에 예비입찰을 진행하고 적격예비인수후보(쇼트리스트)를 추린다는 방침이다. 이후 매수자 측의 아시아나항공 실사 등을 거쳐 10~11월쯤 본입찰을 진행하고,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연내에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 출처=아시아나항공

하지만 일각에서는 매각이 올해를 넘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두번 다시 없을’ 매력적인 매물임에도 불구, 지금까지도 선뜻 인수 의사를 밝히는 기업이 없어서다. 주요 대기업들의 실적 악화와 함께 항공업계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연내 성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조심스런 추측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의 1분기 실적 어닝쇼크, 값비싼 통매각 금액, 거액의 부채 등도 인수 불확실성을 높이는 이유로 꼽힌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매각금액은 1조~2조5000억원으로 예상되며, 부채는 7조원 이상이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발표 직후부터 애경, SK, 한화, GS 등 유수의 기업들이 후보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현재 공식 입찰 의사를 밝힌 곳은 애경그룹 한 곳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한진칼의 2대주주 사모펀드 KCGI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업이 대외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일본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리스크가 큰 업종이다. 매력적인 매물은 맞지만 대규모 부채까지 책임지는 경우 인수 그룹전체에 무리가 갈 수가 있다. 상당수 그룹의 2분기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신중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장세 주춤’ 애경그룹, 아시아나 안기엔…

특히 유력 인수후보로 꼽혀온 애경그룹의 경우 알짜 계열사인 제주항공과 애경산업의 2분기 실적에 먹구름이 끼면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우선 국내 LCC업계 1위로 꼽히던 제주항공은 올 2분기 별도기준 매출 3114억원, 277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를 기록했다. 5년, 20분기만의 위기다. 제주항공 측은 지난해 대비 여행수요가 줄어든 점과 함께 환율 상승 등 거시경제 악화로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하반기 전망도 밝지 않다는 점이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 여행객 수요가 줄어든 이유가 가장 크다. 제주항공은 티웨이항공과 함께 국내서 가장 많은 일본 노선을 운항해왔다. 70개 노선 중 22개인 31%가 일본 노선으로, 매출의 26%가 해당노선에서 나왔다. 그러나 최근 일본 불매 운동으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오는 10월 26일부터 9주간 최대 78편에 달하는 일본 노선 감편을 결정했다. 이로 인한 수익성 악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 제주항공의 2분기 실적표.출처=제주항공

상황이 이쯤 되면서 증권업계는 앞다퉈 제주항공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을 대폭 낮춰잡고 있다. KT투자증권은 기존 1110억원에서 718억원으로 35.3% 가량 낮춰 잡았고, 한화투자증권도 기존 940억원에서 690억원으로 영업이익이 27.4%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또다른 알짜배기 계열사인 애경산업도 2분기 예상 실적을 훨씬 밑도는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매출은 157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7%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61억원으로 무려 71.5%가 줄었다. 특히, 화장품 사업부문에서 매출(-24.7%)과 영업이익(-76.5%)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1분기에 이어 2분기까지 연속 하락세를 보이며 3년 연속 이어오던 성장세에 브레이크가 걸린 모양새다. 

애경산업의 위기는 화장품 매출 90%를 책임지던 대표 상품 에이지투웨니스(AGE 20’s) 판매 둔화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견미리 팩트’로 불리던 K팩트가 견미리 남편의 주가조작 등 구설수에 오르면서 매출이 직격타를 입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여파에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중국 현지 사업도 제동이 걸렸다. 

애경산업의 하반기를 바라보는 시선도 제주항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 TV홈쇼핑 채널의 성장 둔화, 화장품 업체간 경쟁 심화 등으로 국내 영업 요건이 녹록치 않은데다가 주력 지역인 중국의 전자상거래법 등 영업환경이 변화되면서 매출 부진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유진투자증권은 올해 애경산업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740억원에서 600억원으로 18.5%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2020년 영업이익도 830억원에서 710억원으로 15% 줄어들 것으로 봤다.

또 다른 시나리오… SK·한화·KCGI 거론되지만 ‘글쎄’

SK와 한화는 공식적으로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사가 없다는 점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 유력 인수자로 거론되고 있다. 자금 조달 여력과 계열사 간 시너지 측면에서 가장 유리하다는 분석 때문이다. 

▲ 유력 후보 기업의 인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내년이 돼야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출처=각사

우선 SK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의 정유업은 물론 SK텔레콤의 이동통신 사업 등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최태원 SK회장은 과거에도 과감한 투자와 사업전략을 바탕으로 한 인수합병(M&A)으로 회사를 키워왔다.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가 대표적이다. 

한화는 항공기 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레이더 등을 만드는 한화시스템을 계열사로 뒀다. 호텔과 리조트 사업을 항공업과 연계할 경우 시너지 효과도 뛰어나다. 여기에 주력 계열사로 꼽히는 한화케미칼과 그룹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한화큐셀이 인수합병의 결과라는 점도 유력 인수 후보설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이들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SK의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의 2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637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9% 급감했다. 한화케미칼의 2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또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09% 감소한 975억원에 그쳤다. 업계에서는 상황의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굳이 무리한 M&A를 추진해 부담을 늘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최근에는 한진칼의 2대주주 사모펀드 KCGI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자금 조달이 어려운 만큼 KCGI가 대기업들과 컨소시움을 꾸려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KCGI는 최근 한진그룹에 이어 자금력이 풍부한 네이버·카카오 등 IT기업에도 컨소시엄 참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KCGI는 현재 한진칼의 2대 주주로 지분 15.98%를 보유하고 있다. KCGI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성공하면 국내 대표 국적항공사 2곳의 경영에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충분한 자금을 보유한 기업을 찾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