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잉태된 창조경제의 자식들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유니콘으로 변신하고 있다. 의미와 개념도 모호하던 창조경제의 방향성이 별안간 스타트업 전성시대를 꿈꾸며 시작된 제2의 모바일 O2O 시대는 현재의 유니콘을 끌어낸 산파이자 시작점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물론 현재의 스타트업 시대가 창조경제의 자손들은 아니지만,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는 비록 부침은 있으나 ‘제2의 닷컴버블이 될 것’이라는 저주를 뛰어넘으며 나름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라는 연합체도 생겼고 이제 스타트업이라고 부르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큰 규모를 가진 대형 스타트업, 유니콘들이 속속 등판했다. 그러나 한일 경제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며 그 어느 때보다 민족주의적 관념들이 기승을 부리는 지금, 유니콘의 국적을 묻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 유니콘의 국적에 시선이 집중된다. 출처=갈무리

유니콘 전성시대의 명암
국내 핀테크 강자 토스를 서비스하는 비바리퍼블리카가 홍콩의 투자사인 에스펙스 및 클라이너퍼킨스 등 기존 투자사들로부터 6400만달러(약 770억원)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를 약 22억달러(약 2조7000억원)로 인정받았다. 토스의 누적 투자유치 금액은 3000억원이다.

2015년 2월 출시된 토스는 공인인증서 없이 빠르고 간편하게 송금할 수 있는 간편송금 서비스로 각광을 받았으며 간편 송금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7월 현재 누적 계좌 등록 수는 1800만, 누적 등록 카드 수는 800만, 무료 신용등급 조회 누적 사용자는 770만명이며 부동산소액투자, 해외주식투자, 펀드소액투자 등 투자 상품의 총 누적 투자액은 총 7000억에 이른다.

그렇다면 비바리퍼블리카의 국적은 어디일까? 한국인 창업자가 운영하고 한국인들을 대거 고용했고 세금을 내고 있으니 당연히 한국 기업이다. 그런데 지분을 가진 투자자들의 면면을 보면 다소 모호한 지점이 있다. 세계적 투자사 클라이너퍼킨스, 알토스벤처스, 굿워터캐피탈, GIC, 세콰이어 차이나, 베세머벤처파트너스 등이 포진해있기 때문이다.

다른 대형 스타트업, ‘예비 유니콘과 이미 유니콘’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커머스 강자 쿠팡의 대주주는 일본 손정의 회장이 이끌고 있는 소프트뱅크며 야놀자는 싱가포르투자청이 주주로 들어가 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대주주는 힐하우스캐피털이다.

시장을 돌아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유니콘들에 엄청난 해외자본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현재 진행형인 경우도 있다. 여기어때는 지난 6월 CVC캐피털과 투자유치를 진행했다가 최근 다시 협상을 시작했고 마켓컬리는 김슬아 대표가 경영권을 확보하는 전제로 해외 자본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마켓컬리는 5월 중국계 사모펀드인 힐하우스캐피탈로부터 350억원 규모 투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스타트업 전문 리서치 플랫폼인 더브이씨에 따르면 7월 기준 국내 9개 유니콘 기업이 유치한 투자 총액은 6조1532억원이며, 미국과 중국 및 일본 자금은 무려 88%에 달한다. 한국 자본 비중은 5%다.

▲ 유니콘의 국적에 시선이 집중된다. 출처=갈무리

세밀한 판단 필요해
국내 경제의 차세대 엔진인 유니콘들이 외국의 자본을 대거 유치한 지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각에서는 해외 자본을 듬뿍 흡수한 이들을 두고 “국부유출의 주범”이라고 지탄한다. 특히 한일 경제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일본의 자금을 받은 유니콘에 대한 비판은 더욱 격렬하다. 한 때 쿠팡은 일본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았다는 이유로 불매대상에 올라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감정적 배설은 사태를 냉정하게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당연히 미래를 도모하는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니콘들의 선택 동기다. 이들은 왜 해외 투자를 적극 받아들였을까?

가장 현실적인 이유로는 국내 VC 생태계의 조악성에 있다. 규모의 경제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후진적인 VC들이 여전히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VC 업계 관계자는 “국내 VC들은 자금 운영적 측면에서 유니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본을 확충하지 못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국내 VC 일부는 소위 카르텔을 구축해 예비 유니콘들의 등골만 빼먹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과도한 지분투자, 카피 등을 서슴치 않는 일부 국내 VC들의 모럴해저드도 여전히 회자된다. 나아가 정부의 강력한 규제도 유니콘의 성장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는 해외 VC들만이 국내 유니콘들이 원하는 거대한 규모의 자금을 제공할 수 있다는 논리로도 이어진다.

‘예비 유니콘과 이미 유니콘’들이 성장을 위해 해외 자금 유치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야놀자는 지난 6월 싱가포르 투자청, 부킹홀딩스로부터 총 1억8000만달러의 시리즈D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히는 한편 부킹홀딩스와의 협력을 선언한 바 있다. 글로벌 여가 플랫폼으로의 발전을 위해 국내가 아닌 해외에도 시선을 돌리는 가운데, 투자와 글로벌 시장 공략을 동시에 시도하는 패턴이다.

야놀자는 지난해 초 일본 라쿠텐과의 협업을 발표한 후 7월에는 동남아 대표 이코노미 호텔(Economy Hotel) 체인이자 온라인 예약 플랫폼 젠룸스에 조건부 투자를 단행하며 빠른 외연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또 전 세계 170여개 국가에 호스텔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호스텔월드(Hostel World)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기도 했으며 대만 최대 공유숙박 플랫폼인 아시아요와도 손을 잡았다. 이러한 적극적인 글로벌 전략을 추구하면서 해외 자본을 유치하는 것은 상당한 도움이 된다.

최근 국내 유니콘들이 일정정도 성장궤도에 오르며 조금씩 글로벌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해외 자본을 유치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2010년대 중반을 지나며 스타트업 옥석가리기가 일정정도 완료되며 유니콘 군단이 등장했고, 이들이 최근 글로벌 진출을 시도하는 시기가 겹치면서 해외 자본 유치 문제가 필요이상 증폭됐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유니콘들의 해외 자본 유치를 두고 여러 가지 제반사항을 고려했을 때 ‘당연한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카카오의 경우도 텐센트가 대주주며, 현재 네이버와 카카오의 생태계 선봉인 몇몇 자회사들도 알리바바 등으로부터 많은 투자를 받는 일이 많다. 국경이 없는 ICT 업계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뜻이다.

다만 지나친 국부유출이라는 지적에는 동의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양한 이유로 국내 유니콘들이 해외 자본을 유치하고 있으며 이는 그 자체로 비판받을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선을 지킬 수 있도록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와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