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조, 122×118㎝, 1993

송수련의 그림에서 「관조」가 시사하는 것은 이성을 통한 접근방식에 대한 안내가 아닐까. 이미지의 표현이 대담해지고, 적극적이며, 활동적임을 느낄 수 있는 최근의 작품에서는 보다 자유로운 작가의식이 읽혀진다. 그러나 황갈색 또는 적갈색의 색채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여 색채의 상징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하기야 「관조」적인 감상태도는 색채의 상징성까지를 직관할 수 있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도달해 있는 사유의 세계에 이르기까지에는 적지 않은 시각적 훈련과 그에 따른 인내가 필요하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는 감상자, 즉 향수하는 자와의 소통이다. 예술이 일반적이고 전제적인 미감을 향상시키고 선도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할 때 소통은 어려워지고 자칫 관념의 나라 또는 나르시시즘에 빠질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붓 자국 하나에 까지 필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치밀한 화면 구성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 앞에 서는 감상자의 시각적인 폭이 좁아지는 동시에 심화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표현의 필연성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은 자칫 작품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표현된 것에 대한 불확실성을 메워보려는 생각은 변증법적인 논리의 함정을 유발할 수 있다. 변증법적인 논리에 의한 표현은 관념의 응집만을 남기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감성은 소멸하게 된다.

지나치게 논리적인 화면에서는 긴장감이 반감한다. 가능한 한 표현은 일회적인 것이 좋다. 이성 적인 표현구조일 경우에도 확실한 신념에 의한 일회 적인 표현이 좋다. 감성의 순도는 어쩌면 표현의 일회성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 109×141㎝, 1992

가장 최근의 한 작품에서 새로운 표현에 이를 수 있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종래의 논리적인 형식을 타파한, 자율적인 감성의 활동 흔적이 뚜렷한 표현이었는데 거기에서 새로운 시각적 쾌감을 맛볼 수 있었다.

물론 직관적인 이해의 눈에 걸려든 그의 새로운 모색은, 그의(宋秀璉,한국화가 송수련,한지화가 송수련,송수련 화백,SONG SOO RYUN,송수련 작가,Hanji Painter SONG SOO RYUN,한지작가 송수련,종이회화 송수련,KOREA PAPER ARTIST SONG SOO RYUN, KOREAN PAPER ARTIST SONG SOO RYUN) 표현욕구와 자유의 지를 등가(等價)로 설정할 때 개화될 수 있으리라 본다.

소박한 하나의 주문은 거기에다가 보다 선명하고 그리고 구체화된 사실적 이미지를 보태는 것은 어떨까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표현성을 강화하되 묘사적인 기분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면 짜릿한 감성적 쾌감을 맛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신항섭(申恒燮)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