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한번 씩 탈북한 분들과 만납니다. 여러 가지 아픔과 나쁜 기억, 또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그분들과 말을 같이 나누고,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같이 고민하기도 합니다.

이들 중 청소년들이 있는데,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자립이 모두를 위해서 가장

중요해 보입니다. 혼자 내려 온 청년들이 외로움으로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 딱해 집니다.

이들이 학교는 어렵지 않게 들어가도 너무 다른 배경으로 고등학교나 대학에 들어가서

따라가는데 너무 버거워 하는 등 여러 면에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젊은이들도

그렇겠지만, 북에서 온 청년들이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려면 무엇보다 확고한 비전이

있어야겠습니다. 그런 고민 끝에 이들 청년들과 남쪽 청년들을 묶어 내년에 독일의 통독

현장을 방문하고, 다가올 통일을 꿈꾸며 비전을 갖게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이러한 구도 하에 방문 일정, 장소, 현지 방문 단체나 만날 사람 등 기초 수준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갈 곳도 처음 통독의 불씨가 되었던 라이프찌히 촛불 교회, 통독의 많은 현장이 남아있는 베를린 등 컨셉에 맞추어 차차 채워나가려 합니다.

독일에서 유학했던 분과도 얘기를 나누며, ‘기억의 미술관, 베를린’이라는 책 등과 관련 영상을 보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독일인들의 방식을 보며 새삼 놀라게 됩니다.

아시죠? 베를린은 오래된 역사의 도시로, 과거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본

나치와 공산주의에 대한 흔적도 선명한 도시입니다. 나치가 2만권이 넘는 책을 태운 장소를 기억하기위해 만든 텅빈 도서관,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 죽음의 수용소로

출발시켰던 역에 조형물을 세웠으며, 시내 곳곳에 베를린 전역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의

집터, 흔적들의 표석까지 세웠습니다. 히틀러 암살 음모 사건의 주 무대도 흔적으로 남겨놓았고, 유대인의 강제 이송을 담당한 걸로 악명이 높은 아이히만에 대한 기록이 새겨진 버스정류장까지 있었습니다. 한편 냉전의 추억인 찰리 검문소며, 동독에서 서독으로 담을 넘다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베를린 장벽 지역의 추모 공간들이 구석 구석 위치해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의 추모공원 내 추모의 창은 베를린 장벽을 넘다 희생된 131명의 초상 사진을

전시했는데 상당수가 젊은 남성들이더군요. 이렇듯 과거 기록을 철저히 남겨 그걸 기억하고, 거울로 삼아, 역사의 반복을 막자는 게 그들의 사고방식입니다. 물론 이 기념조형물도

절제미를 발휘해,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되게 만들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었습니다.

독일인들의 방식과는 사뭇 다른 일본, 또 기록과 기억에 약한 우리네도 생각되어 졌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함께 갈 탈북한 청년들이 독일의 저 기록, 장치들을 보며, 북한에서의 기억들로 인해 몸을 떨며 거친 분노를 하게 될 장면이 생각되어졌습니다. 과거에 대해 얼마나

소화를 하고, 용서를 하며, 스스로와 어떤 화해를 하고, 극복하며, 어떤 비전을 갖게 될지

자신이 안서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진지하기만한 독일 사람들의 구전 속담에 '좋은 사람 딱지를 떼야 자유롭고 즐거워 진다'가 있더군요. 미래 개척이 제일 과제인 우리 청춘들에게 우선 그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청춘들이 지금도, 또 앞으로도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유사한 아픔과 기억이 있는 독일을 두루 살펴도 좋겠습니다. 하나의 역사적 공간마저도 공공 예술로 승화시킨 그들의 안목, 경제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의 강국, 산림 선진국으로 독일 전역에서 마주치는 숲 또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위로들이 용기가 되는 비전을 기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