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서윤 기자] 서울 강남의 대표 상권인 신사동 가로수길과 세로수길. 아직도 이 거리를 생각하면 수많은 외국인과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는 패션, 개성 넘치는 카페와 식당, 상점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것도 10년 전 이야기다.

▲ 가로수길의 모습. 사진=장서윤 기자

가로수길이 10여 년 전 서울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임대료가 치솟았다. 거침없이 비싸진 임대료로 기존에 자리하던 개성 있는 카페와 식당들이 임대료가 싼 뒷골목으로 밀려나가면서 세로수길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신사동 가로수길 양옆 이면도로를 따라 길게 뻗은 좁은 거리를 ‘세로수길’이라 부른다. 개성 있는 가게들이 뒷골목으로 모이면서 세로수길의 임대료도 급등하며 열병을 앓게 됐다. 3~4년 전부터 세로수길의 가게들이 썰물처럼 임대료가 싼 곳으로 빠져나가면서 가로수길의 전철을 밟게 됐다.

2년 전부터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낮추면서 상권 회생의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는 세로수길을 찾아가봤다.

유동인구 감소에 임대료도, 상권도 힘 잃어...

지난 7일 오후 6시 세로수길. 전체적인 거리 분위기는 썰렁했다. 3년 전에 비해 임대료가 많이 인하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비어있는 점포가 많았다. 임대 표지가 붙어있는 빈 점포는 거리를 흉흉하게 했고, 대형브랜드 매장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만 축내고 있었다. 상권이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인근 중개사 사무실부터 찾았다.

▲ 임대표지가 붙어있는 점포. 사진=장서윤 기자

중개사무실 중개사 K씨는 “2년 전에는 세로수길 상권이 많이 회복돼서 길거리를 걸으면 인파에 어깨가 스칠 정도였어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죠. 그런데 올해 들어 또 다시 거리가 한산해졌어요”라며 “3년 전처럼 또다시 썰물 현상을 보이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옆 편의점 주인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예전에는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사람이 말도 못하게 많았는데, 이제는 그 정도의 사람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 신사역 상권 중대형 상가 공시율

10여 년 전 가로수길이 유명해지면서 임대료는 높아졌다. 높은 임대료 때문인지 대기업 매장이 줄을 이으며 거리의 특색은 사라졌다. 특색이 사라지니 유동인구가 줄었고, 매출은 상승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개사 K씨는 “임대료 가격이 하향세를 보인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비싼 땅이에요. 건물주와 임차인이 희망하는 임대료 차이가 커 빈 점포가 줄지 않아요. 당분간 하향 추세는 지속될 것 같은데 임대료가 문제라기보다는 유동인구가 많아져야 해요”고 말했다. 세로수길 1층에 입점한 점포들을 조사해본 결과 10군데 중 7개의 점포가 올해 초에 오픈했거나 1년이 아직 안된 가게들이다. 세로수길 상권이 다시 뜨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체감하는 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부분의 점포가 별 차이를 못 느낀다고 대답했다.

세로수길을 걷다보면 삼삼오오 다니며 구경하는 외국인 관광객과 피팅 촬영을 하는 외국인 모델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 수도 예전만치 못하다. 세로수길에서 가장 사람이 많아보였던 S카페 직원은 “가게가 이제 딱 1년 정도 되었는데 외국인보다는 한국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다. 외국인들은 길거리에 많이 보이는데 매장에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 길거리에서 외국인 피팅 모델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장서윤 기자

가로수길보다 세로수길에 더 많은 유동인구가 있었다. 세로수길에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SNS로 유명세를 탄 맛집과 카페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유명세를 탄 음식점은 줄이 너무 길어서 못 가고, 어떤 가게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들어가기 불편한 상황을 겪었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던 청년들 중 한 명은 동네 주민이지만 한 번도 유명세를 탄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SNS에서 빈티지한 멋으로 유명해진 K카페 주인은 “세로수길에 그나마 사람들이 모이는데 사람들이 가게를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가거나 구경만 하고 가는 경우가 많아요. 유동인구가 조금더 많다고 해서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유동인구가 늘어나는 것만큼 유동인구의 마음을 끌 수 있는 상권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 세로수길의 모습. 사진=장서윤 기자

새로운 콘텐츠로 상권 회복 기대, 그러나 신선하지는 않다.

“단가는 낮지만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을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세로수길 초입에 위치한 꽃집 점원 A씨가 한 말이다. 세로수길에는 눈에 띄게 꽃집과 전자담배 상점이 많이 생겼다. 더불어 향수, 가죽공예, VR 등 세로수길도 명동거리와 홍대거리, 유명한 거리들을 따라 다양한 콘텐츠로 사람들의 눈길을 잡으려고 한다. 최근 미국 액상전자담배 ‘쥴(JUUL)’이 세로수길에 두 번째 직영소매점을 오픈하면서 상권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기대했다. 대형브랜드 매장으로 획일화된 패션 아이템을 대신해 새로운 상권 아이템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세로수길에서 ‘쥴 랩스’가 새로운 콘텐츠는 아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세계적인 전자담배 브랜드 아이코스, 글로 그리고 올해 초에 오픈한 모크까지 전자담배 매장 문을 열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주요 타깃인 전자담배처럼 대부분의 대형브랜드 매장은 매출보다는 홍보에 목표를 두고 세로수길을 점하고 있었다.

다시 상권의 회생을 기대하는 세로수길은 경제 공항과 불황,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계정세 속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애쓴다. 그곳에는 세로수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입맛대로 다양하게 즐기고, 또 오고 싶은 거리를 만들고자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