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위안화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수준인 달러당 7위안을 넘자 미국은 5일 오후 늦게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출처= The Reckoning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과 중국이 양국간 경제 갈등을 더 확전시켜 새로운 전선의 포문을 열었다. 바로 환율 전쟁이다.

중국은 5일(현지시간), 그동안 엄격하게 통제해 온 위안화 가치가 11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하는 것을 허용했다. 위안화 하락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미국 제품의 가격을 비싸게 만들어 미국의 생산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러자 미국은 이날 오후 늦게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며 즉각 보복에 나섰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은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 이후 처음이다.

같은 날 벌어진 양국의 조치는 단순히 미중 무역전쟁이 더 격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애널리스트와 경제 전문가들은 양국이 다시 추가적인 무역 제재 공방을 벌이면 양국 모두 성장이 둔화돼 두 나라 모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에스와 프라사드 코넬대 무역정책학과 교수는 "미중 간 무역 갈등이 환율전쟁으로 비화될 경우 상황은 매우 심각해질 것"이라며 "미국이 본질적으로 중국으로부터의 모든 수입을 중단하는 상황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전쟁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주 중국과의 협상 부진을 이유로 중국 제품 3000억 달러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맞서 중국은 5일, 달러당 7위안의 문턱을 넘어 금융 위기 이후 11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도록 허용했다. 중국 통화의 가치 하락은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고, 월가의 급격한 손실로 이어졌고 투자자들은 크게 요동쳤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며 중국을 맹비난했고, 재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게시 몇 시간 만에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오늘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자국 통화 가치를 거의 사상 최저치로 떨어뜨렸다. 그것을 '환율 조작'이라고 한다. 연방준비제도, 당신들은 보고 있나? 이것은 중대한 위반이다. 시간이 지나면 중국의 힘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민주당 의원까지 나서 중국에 대한 우려에 관한 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고 나섰다. 민주당 원내총무 척 슈머 상원의원(뉴욕)은 미 행정부가 즉각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규정할 것을 요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과의 환율 전쟁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넘어 양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자국 통화 가치를 거의 사상 최저치로 떨어뜨렸다. 그것을 '환율 조작'이라고 한다. 연방준비제도, 당신들은 보고 있나? 이것은 중대한 위반이다. 시간이 지나면 중국의 힘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출처=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미국의 무역적자 확대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시절 때나 취임 이후에나,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 즉 미국의 대중 수입이 수출을 초과하는 액수를 줄이는 것을 핵심 우선순위로 삼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900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좌파 성향의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의 경제 전문가 로버트 스캇은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향후 몇 년 동안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달러 가치는 이미 지난해부터 계속 오르고 있다.

위안화 가치의 하락은, 미국의 생산자들이 중국이나 중국 생산자들과 경쟁하는 다른 시장에서 미국 제품을 파는 데 훨씬 더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더욱 확대시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스캇은 "만약 중국이 계속해서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한다면, 관세 때문에 중국의 대미 수입이 줄어들더라도 무역적자는 여전히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게 되면 관세 부과의 효과를 모두 상쇄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중국 수출품의 경쟁력은 우리가 경쟁하는 모든 시장에서 높아질 것입니다.”

보복의 악순환

미국이 과거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조작한 것은 1990년대 초였다. 이후 미국은 한 번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지난 5월에도 재무부 보고서는 여러 개의 적신호를 확인했지만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교역촉진법에 따라 1년간 환율 문제 개선을 위한 양자협의를 하게 된다. 만약 여기서 문제가 시정되지 않으면 미국은 대외원조 관련 자금지원 금지, 정부 조달계약 금지, IMF(국제통화기금) 추가 감시요청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따라서 이번 환율조작국 지정에 따라 미국은 지금까지 부과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관세를 중국에 부과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중국의 추가 보복을 촉발시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5월 산업보조금이나 덤핑행위 이외에 환율에 의해 자국의 상품 경쟁력을 훼손시킬 경우에도 상계관세를 부과할수 있는 규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번 환율 조작국 지정으로 미국은 중국에 상품에 대해 상계관세를 메길 여지를 남겨놓고있어 트럼프가 밝힌 관세이외의 또다른 관세 카드를 확보해놓은 것이다.  

프라사드 교수는 "미국은 이번 환율조작국 지정을 일방적인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더 많은 관세를 위한 정당성과 그에 대한 정치적 면피를 제공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또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에 대한 제재를 주장하거나, 중국과의 무역을 제한하기 위한 국제 동맹을 결집할 수도 있다.

프라사드는 교수는 "미국은 중국의 통화 가치 하락을 경제적 침략 행위라고 간주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게 되면 중국에 대한 경제적 적대감을 더욱 증폭될 것”이라고 말했다.

▲ 스티븐 찰스 카일 코넬대 경제학과 교수는 "양국의 관세 인상과 통화 평가절하 싸움을 보면 1930년대 대공황을 초래한 실수들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출처= History.com

글로벌 수요 감소

그러나 환율전쟁의 가장 위험한 잠재적 결과는 미국과 중국의 전반적인 경제 성장 둔화가 될 것이다. 분석가들이 이미 세계 경기 침체가 미국까지 덮칠 수 있음을 수 차례 경고한 바 있다(견조한 미국 경제 상황으로 아직까지 이를 실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중국의 성장은 이미 둔화되었다. 위안화의 가치 하락은 중국 제품과 경쟁하는 유럽 제조업체들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으며, 그렇지 않아도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는 유럽 국가들의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월가는 5일 대규모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올들어 최악의 날을 기록했고, 변동성 지수는 급등했으며, 전세계 11개 주요 주식 시장은 모두 빨간색으로 나타냈다.

마크 소벨 전 재무부 관리는 "무역전쟁과 관련된 금융 불안이 불확실성을 더 증폭시키면서 시장의 신뢰와 투자 심리를 크게 해칠 것이며 이로 인해 미국 경제에 더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티븐 찰스 카일 코넬대 경제학과 교수는 "양국의 관세 인상과 통화 평가절하 싸움을 보면 1930년대 대공황을 초래한 실수들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시 그런 공포 속으로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이 발생했을 때 벌어졌던 일과 너무나 똑같지 않습니까? 당시 모든 나라들은 관세 장벽을 높이 세우고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함으로써 교역 상대국들과 경쟁하려 했지요. 그러면서 몇 년 동안 세계 무역은 거의 완전히 중단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