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사장단과 비상경영회의를 열어 현재의 위기에 대한 상황 공유, 나아가 대응과 미래 계획을 논의했다. 지난달 초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와 전자 계열사 CEO들과 연쇄회동을 가진 후 등장한 실질적인 액션플랜이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 부회장을 비롯해 진교영 메모리사업부장, 정은승 파운드리사업부장, 소비자 가전 부문 한종희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등이 참석했다. 여기에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전영현 삼성 SDI 사장 등도 회의에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전자 계열사 대부분이 회의에 참석한 셈이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긴장은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자”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자”는 메시지를 내놨다. 나아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전자 계열사를 직접 방문해 현장경영에도 시동을 걸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발언을 두고 결국 미중 무역전쟁, 한일 경제전쟁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간 삼성전자의 위기를 의미한다고 본다.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위기의 삼성전자
지금 한국 경제는 위기에 처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사실상 재발했으며 일본의 경제보복은 시간이 갈수록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일본은 지난달 4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3대 핵심 소재 수출 제한에 돌입하는 한편 지난 2일 각의를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추후 1000여개 소재 수출 품목에 대한 규제도 강화할 방침이다.

반도체 중심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는 상당한 리스크다. 지난달 4일 일본이 수출 제한에 돌입한 반도체 핵심 소재의 일본 의존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1월부터 5월까지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고순도 불화수소 수급에 있어 일본 의존도가 85.9%에 달하며 포토레지스트는 11.6%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종료 후 보리고개를 넘는 과정에서 일본의 소재 공격이라는 이중고를 버텨야 할 지경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7월 협력사에 공문을 보내 일본산 소재 및 부품 비축분 90일치 이상을 확보해달라고 요청한 이유다. 만약 협력사들이 재고 확보와 관련해 보관비 등 비용이 발생할경우 이를 삼성전자가 책임지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나아가 물량이 예상처럼 소진되지 않아도 그 부담은 온전히 삼성전자가 책임지겠다는 뜻도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본이 전격적인 금수조치까지 취하지는 않아도,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삼성전자의 동력이 크게 약화되는 지점도 악재다. 삼성전자는 2분기 실적 중 매출 56조1300억원, 영업이익 6조6000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1분기 대비 매출은 7.1%, 영업이익은 5.8% 증가했으나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 영업이익은 무려 55.63% 하락했다. 낮은 성적표를 받았던 1분기와 비교해 2분기 실적은 다소 올라갔으나, 반도체 호황기던 전년과 비교하면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특히 DS의 반도체는 하락세가 뚜렷하다. 2분기 매출 16조900억원, 영업이익 3조4000억원을 기록했으며 역대 최고 영업이익을 거뒀던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하면 25% 수준의 충격적인 실적이다.

삼성전자의 위기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력인 반도체 투자를 일정부분 미루는 장면도 연출된다.

삼성전자는 일단 미중 무역전쟁, 한일 경제전쟁의 여파가 심각하지만 인위적인 메모리 반도체 감산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실적발표 후 컨퍼런스콜을 통해 "반도체 사업은 데이터센터 고객사 구매 재개와 모바일 고용량화에 따라 수요가 일부 회복됐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꾸준히 감산 가능성이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SK하이닉스가 1분기 낸드플래시, 4분기 D램 감산에 돌입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도시바는 최근 라인을 재가동하며 낸드플래시 생산에 나서는 등 시장은 복잡다변한 고차방정식으로 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감산 가능성은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설비 투자도 늦어질 조짐이다. 4일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평택 P2 투자 설비를 내년으로 늦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경제전쟁의 여파라고 보기는 어렵고,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종료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라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당초 평택 P2 설비 투자를 올해 하반기로 잡았으나 내년 초는 되어야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시안의 신메모리 생산라인 일정도 늦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전반적인 설비 투자 로드맵 속도가 떨어지는 분위기다.

주변 경영환경도 심상치 않다. 일본의 제재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 뿌리가 흔들리는 가운데 파운드리의 강자인 대만 TSMC는 최근 엔지니어 및 연구개발 인력 3000명을 선발한다는 공고를 냈다. 삼성전자와 파운드리 영역에서 경쟁하는 상황에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한 방'을 보여준다는 각오다. 1987년 창사 후 TSMC가 3000명에 달하는 인재를 동시에 선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위 사업자인 인텔도 최근 부진한 실적을 거뒀으나 자회사인 인텔캐피털을 통해 무려 14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빠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신중에서 행동으로
미중 무역전쟁, 한일 경제전쟁의 여파로 삼성전자의 미래가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이 부회장은 최근 위기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 부회장은 6월에만 1일, 13일 두 차례 DS부문 경영진과 회동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전략인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후 투자 집행 계획을 직접 챙기는 한편 최근 경기둔화 우려에 따른 반도체 사업의 리스크 대응 체계를 재점검했다는 후문이다.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은 지난 4월 발표됐으며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 133조원을 투자해 시장 1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어려운 상태에서 위기론을 인지하고 새로운 동력을 찾자는 각오다.

6월 14일에는 더 생생한 메시지가 나왔다. 고동진 IM부문장 사장, 노희찬 경영지원실장 사장, 노태문 무선사업부 개발실장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 부회장은 “지금은 어느 기업도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며 “그 동안의 성과를 수성(守城)하는 차원을 넘어 새롭게 창업한다는 각오로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흔들리고 있는 IM부문의 경쟁력을 다잡는 한편 5G 이후의 6G 이동통신, 블록체인, 인공지능 전략을 구상하면서 그 기저에 강력한 위기론을 전제한 셈이다. 당시는 한일 경제전쟁이 시작되기 전이었으나, 이미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수처 사이클 종료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던 시기였다.

이후 미중 무역전쟁이 재발하고 한일 경제전쟁이 본격화되자 이 부회장은 다시 위기 메시지를 꺼내들었다. 지나친 두려움은 지양하면서 경각심을 갖자는 메시지다. 나아가 지금까지의 단순한 메시지에서 벗어나 실제 행동에 나선 장면이 눈길을 끈다. 이 부회장이 직접 현장을 돌며 한일 경제전쟁의 충격에 대비하는 모습은, 이번 사태가 삼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5일 공유한 위기 메시지를 두고 대내외적 존재감 강화를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정부가 소위 적폐청산이라는 대의명분을 바탕으로 전열을 정비하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등장했고,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점이 의미심장하다.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가 여전한 상황에서 최근 내부에서 등장하는 삼성의 위기론은 곧 이 부회장 중심의 삼성이 뭉쳐야 일본의 경제침탈을 막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확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