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다시 재발할 조짐이다. 지난달 말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미중 무역협상이 사실상 빈손으로 끝난 가운데 미국은 중국에 추가 관세 부과 방침을 시사했고, 중국은 국유기업을 대상으로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두 수퍼파워 사이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한국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이어질 전망이다.

빈손 협상, 예정된 파국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초부터 서로에 관세폭탄을 던지며 무역전쟁을 벌였으나, G20을 맞아 사실상 휴전에 돌입했다. 직전까지 미국이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추가 관세 부과에 나서는 한편 중국의 기술굴기 선봉장인 화웨이에 대한 제재에 돌입했으며, 중국은 희토류 전략 무기화 카드를 꺼내는 한편 600억달러 상당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25% 관세 의지를 강조하는 등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으나 아슬아슬한 휴전에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G20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90분 담판이 끝난 후 "(두 나라는)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올 것"이라면서 "(시 주석과의 만남은) 훌륭했다"는 말을 남겼다. 두 나라는 서로를 향한 관세폭탄을 중지하는 한편 확전 자제를 통해 무역 정상화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윈윈'을 선택했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국과의 무역분쟁을 오래 지속시킬 경우 지지도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자국 기업의 피해가 커지는 것도 부담스럽다. 절대권력 체계를 구축한 시 주석도 미국과의 분쟁이 계속되면 내부의 동요를 막을 수 없다. 천안문 광장 30주년, 홍콩 시위 등 민감한 정치적 논란까지 연결된 상황에서 빠른 해결이 필요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으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이끄는 미국 협상단이 지난달 30일 상하이에 도착해 중국 류허 부총리가 이끄는 현지 대표단과 협상을 시작했으나 사실상 빈손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미국 백악관은 협상이 종료된 후 “강제 기술 이전 및 지적 재산권, 비관세 장벽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으로 합의된 안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두 나라는 9월 워싱턴 2차 회담 재개만 확정한 상태에서 서로간의 이견만 확인했다.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이 시작됐다. 회담 결렬 직후 트위터를 통해 내달 9월 1일부터 3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10%의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25% 관세를 물리고 있으며, 이번 관세가 추가되면 일부 면제 품목을 제외한 중국 제품 전체가 고율 관세 타격을 받게 된다. 사실상 전면전을 택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는 중국이 '시간을 끌고 있다'는 의심에서 비롯되고 있다. 내년 재선을 목표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국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미중 무역전쟁의 빠른 탈출구가 필요하며, 결국 시간은 절대권력체계의 중국에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이 무역협상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트위터를 통해 “중국은 민주당의 융통성 없는 사람 중 한 명이 당선되는지 지켜보려고 아마 우리의 대선을 기다릴 것"이라면서 "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그들이 얻는 합의가 현재 협상보다 훨씬 더 가혹하거나 아예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하며 양측의 공방전도 심해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의도'를 의심하는 한편 화웨이에 대한 명확한 규제도 풀어주지 않는 상태에서, 중국은 미국산 농수산품 수입 제한에 나서는 분위기다. 실제로 블룸버그는 5일 중국 정부가 국유기업에 미국산 농수산품 수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으며, 당분한 사태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미국이 관세를 철회하고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면, 미국산 농수산품 수입 재개에 나서며 동일하게 관세를 철폐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지난달 회담 직전 이례적으로 중국이 미국산 농수산품을 수입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국 관영언론인 신화통신은 지난달 29일 자국 기업이 지난 19일 미국산 대두 및 돼지고기 등을 수입하기 위해 미국 기업과 접촉했으며, 구입을 완료한 물품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믿을 수 없다고 반박하는 한편 추가 관세 가능성까지 시사하자 중국도 실질적인 미국산 농수산품 수입 제한이라는 맞대응 카드를 빼들었다.

위안화 환율이 11년만에 시장의 심리적 저지선인 달러당 7위안을 돌파한 점도 눈길을 끈다. 실제로 5일 홍콩 역외시장 기준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장중 전 거래일보다 1.98% 급등한 7.1092위안까지 솟구쳤다. 역내 시장에서도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7.0397위안까지 올랐다.

중국은 지금까지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는 '포치'(破七) 현상을 경계하며 지속적으로 관리한 바 있다. 위안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글로벌 자금의 대규모 유출 및 증시 폭락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포치 현상이 벌어지며 경기 침체의 명확한 신호가 감지된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의 의도적인 전술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위안화 가치가 낮아지면 수출 시장에서 유리해지기 때문에 미국의 관세 폭탄 파괴력을 경감시킬 수 있다. 이번 포치 현상이 사실상 중국 정부의 '작품'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는 중국 정부가 통화 가치를 임의적으로 조종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심을 살 수도 있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양날의 검이다.

전방위적 파국
미중 두 수퍼파워의 갈등은 경제에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다. 외교 안보적 갈등도 점입가경이다.

당장 러시아에 이어 미국이 중거리핵전력 조약(INF)에서 탈퇴한 점이 눈길을 끈다. INF는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한 조약이며 당시 냉전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인 조치였으나, 이번에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INF 폐지는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나아가 한국의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은 INF 폐지 후 아시아 동맹국에 신형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싶다고 밝힌 상태다. INF 폐지 후 마크 에스퍼미 국방부 장관이 “신형 정밀유도 중거리 미사일을 아시아 동맹국에 배치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급한 아시아 동맹국은 일본과 한국이 유력하며, 미국은 둘 중 한 곳에 민감한 군사시설을 배치하고 싶다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환구시보는 5일 모바일판 사설을 통해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 미사일이 겨냥하는 밀집 표적이 되지 말아야 한다”면서 “미국의 기세등등한 아시아 정책의 총알받이가 되지 말아라”고 경고했다.

만약 미국이 신형 정밀유도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할 경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당시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을 규탄하는 한편 미국의 미사일을 용인한 나라에도 보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신중하게 접근하는 이유다. 일단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미측과 중거리 미사일 도입과 관련해 공식 논의하거나 자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으며 계획도 없다"면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 기본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오는 9일 에스퍼 장관이 정경두 국방장관과 만나는 가운데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는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에 구축할 예정인 연합함대에 참가하라고 제안한 가운데, 한국이 호라무즈 카드와 중거리 미사일 카드 중 하나를 택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은 전자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청해부대 파병을 검토할 것"이라면서 호라무즈 파병에 무게를 뒀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더불어 한일 경제전쟁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호라무즈 파병으로 미국의 중재를 끌어내는 반대급부를 끌어내고,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피하며 중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경계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