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30. 선고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사건 판결’(이하 이 사건 판결) 선고 결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평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상징적인 판결일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사건 판결은 지난 2일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불러일으키고 양국에 극단적인 반일, 혐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트리거’이자 ‘판도라의 상자’가 되어 버렸다. 특히 이 사건 판결과 관련해서는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코트’가 고의적으로 선고를 지연하기 위하여 ‘재판거래’를 하였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어 이 사건이 한일 양국 간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진영에 따라 서로 해석이 달라 논란이 되고 있는 이 사건 판결의 쟁점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은 현 시점에서 큰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 1.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전범기업인 구 일본제철에 끌려가 강제징용을 한 여운택 등 4인은 2005. 2. 28. 구 일본제철을 승계한 신일본제철 주식회사(이하 신일본제철)를 상대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를 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2008. 4. 판결 선고한 1심 법원 및 2009. 7. 판결 선고한 2심 법원은 모두 신일본제철 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여운택 등 4인의 신일본제출 주식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1965년에 이루어진 한·일 청구권 협정의 내용에 포함되어 이들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청구할 권리는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2012. 5. 선고한 대법원 판결은 달랐다.

#2. 당시 대법원 민사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에는 이 사건 이외에도 망 박창환의 유가족 등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을 당한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이하 미쓰비시)를 상대로 미쓰비시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를 하는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하 미쓰비시 사건)이 계류 중이었는데, 미쓰비시 사건은 앞서 살펴본 이 사건과 마찬가지로 1심과 2심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인하여 망 박창환의 유가족 등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잇따라 패소한 상태였다. 그러나 대법원 민사 1부는 2012. 5. 24. 이 두 사건에 대하여 1심 및 2심의 판단과 달리 강제징용을 당한 피해자들 측의 청구 중 일부를 받아들이는 취지로 파기 환송 판결을 내렸고, 각 서울고등법원과 부산고등법원으로 돌아간 이 사건과 미쓰비시 사건은 그 취지에 따라 청구한 위자료의 일부가 인정되었다.

#3. 대법원 민사 1부의 판결로 불의의 일격을 당한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는 각 두 번째 항소심 판결 선고를 받은 직후인 2013. 7. 30.과 2013. 8. 20. 나란히 상고장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 민사 1부가 1심 및 2심 법원의 판단을 뒤엎는 파격적인 선고를 하기 불과 2주 전 대법원 민사2부는 이 사건 및 미쓰비시 사건의 경우와 달리 강제징용 피해자들 쪽에 패소선고를 내린 바가 있어 대법원은 2018. 10. 30.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을 전원합의체 판결로 선고하여 관련한 사건의 리딩케이스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사건은 관련한 독립된 논문집이 나올 정도로 다양한 쟁점을 담고 있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역시 다수의견, 별개의견 이외에도 반대의견까지 포함하고 있는 등 다기한 논의가 이루어진바 있어 몇 마디 말로 어느 입장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다 단정 짓기는 어렵다. 다음 편부터는 이 사건 판결의 구체적인 쟁점에 대하여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