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미 등을 중심으로 매년 2000여 건의 발생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출처=WHO, 질병관리본부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흑사병'으로 잘 알려진 '페스트'가 여전히 인류에게 위협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몽골 서북부 바얀올기 지역에서 관광객들이 대형 설치류인 마못을 먹고 페스트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다행히 검역 당국이 역학조사를 통해 감염자들과 접촉한 사람들을 격리하고 항생제를 투여해 페스트 확산을 조기에 진화했다. 중세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던 페스트가 또다시 똬리를 틀고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페스트 위협 줄었지만 여전히 치사율 높아

페스트는 중세 유럽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갔던 전염병이다. 페스트균에 감염되면 피부가 검게 변하는 증상이 나타나 흑사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전문가들은 1347년부터 1352년까지 유럽에서만 약 2400만 명이 페스트 감염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페스트균은 주로 야생 설치류에 기생하는 벼룩을 통해 전염된다. 오늘날 위생 상태가 개선되고 항생제 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페스트 위협이 상당히 줄었지만 여전히 치사율은 약 30%로 높은 편이다.

게다가 최근 몽골 및 마다가스카르에서 다재내성 페스트균이 발견되면서 페스트 공포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페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미 등을 중심으로 매년 2000여 건의 발생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8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마다가스카르에서 2417명의 페스트 환자가 발생했다. 이중 209명이 사망했다. 

▲지난 2017년 8월부터 11월까지 마다가스카르에서 2417명의 페스트 환자가 발생. 출처=WHO, 질병관리본부

특히, 전체 환자의 75.6%가 비말을 통해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폐 페스트에 감염됐다. 폐 페스트는 이름 그대로 균이 폐를 침범해 발생한다. WHO는 사람에 의한 감염사례가 증가함에 따라 페스트를 재출현 감염병으로 분류했다. 또 국가 간 전파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엄격한 대응과 통제, 지속적인 감시활동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페스트 청정국으로 꼽힌다. 최근 페스트 환자나 페스트균에 오염된 설치류가 발견된 사례가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해외여행객의 증가와 페스트 발생지역으로부터 입국하는 내·외국인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한국도 더 이상 페스트 위협에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페스트 공포 차단하는 백신 개발 시급

항생제 치료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페스트 공포를 더욱 키우고 있다. 페스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백신 연구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개발된 백신들은 페스트 예방 효과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분석센터에 따르면 1940년 커터 바이올로지컬에서 개발한 USP는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에서 최초로 승인을 받은 페스트 백신이다. 포르말린을 이용해 페스트균을 사멸하는 이 백신은 림프절 페스트를 예방하는데 효과적이었지만 여러 부작용을 유발했고 추가로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또 폐 페스트에 대한 예방 효과가 전혀 없어 1999년에 생산이 중단됐다.

▲미국 FDA에서 최초로 승인을 받은 페스트 백신 USP. 출처=USP, 질병관리본부

과거의 실패를 타산지석 삼아 최근 페스트 주요 항원을 이용한 백신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F1과 LcrV 단백질을 결합한 백신이 긍정적인 임상 결과를 나타내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F1과 LcrV 단백질을 단독으로 이용했을 경우 페스트균 방어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두 단백질을 결합한 F1/V 백신은 단독으로 이용했을 때보다 폐 페스트와 림프절 페스트에 대한 방어 효과가 높게 나타났다. 현재 F1/V 결합 단백질 백신은 FDA 승인을 목표로 임상 2상 연구를 진행 중이다.

더불어 F1과 LcrV 항원 기반 'DNA 백신'이 면역 증강제인 IL-12와 tPA 단백질 결합을 통해 체액성 면역반응을 유도함으로써 폐 페스트 방어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보고됐다. 다만 DNA 백신은 지나치게 면역 증강제에 의존하는 탓에 지속적인 임상을 통해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도 여러 바이러스 벡터를 활용한 바이러스 기반 백신도 개발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분석센터 관계자는 "페스트를 이용한 생물 테러나 자연 발생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고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를 통해 공중보건 위기 대응을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