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일본이 2일 각의를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며 한일 경제전쟁이 확전양상으로 접어들었다. 정식 배제는 이달 말로 예상되는 가운데 추가 협상을 통한 극적인 반전 가능성도 있으나 현재로는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국산 소재 독립의 꿈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꼬리가 몸통 흔들다...대응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 약 1000여개의 소재 수급이 어려워진다. 지난달 4일 3개 소재에 대한 제재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 예상된다.

특히 반도체 산업 붕괴가 우려스럽다. 일본의 제재가 이어지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재고 물량도 없이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게 되며, 이는 글로벌 파트너들을 잃게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 틈을 노려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반도체 코리아의 빈 자리를 노릴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를 누비는 컨틴전시 플랜에 돌입한 이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현지로 날아가 물량 확보 및 거래선 조율에 나서고 SK하이닉스 대외협력총괄 김동섭 사장에 이어 이석희 CEO도 연이어 일본에 간 이유다.

일부 부분에서는 성과도 나오고 있다. 닛케이는 지난달 17일 삼성전자가 일본 외에서 불화수소를 수급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제3국 기업은 중국의 방훠그룹(浜化集団)일 가능성이 높다. LG디스플레이도 불화수소 거래선을 일부 확보하는 한편 현재 테스트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SK의 대응도 눈길을 끈다. SK머티리얼즈가 불화수소 중 에칭가스 국산화에 시동을 걸었다는 소식이 눈길을 끈다. 업계에서는 “아직 상용화 수준에 미치지는 못한다”면서도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샘플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소재 분야 공격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SK가 SK머티리얼즈를 중심으로 일종의 반격을 시도하는 셈이다.

SK머티리얼즈는 1982년 설립된 기업이며 2005년 OCI가 인수했다. 2015년 SK가 인수해 SK머티리얼즈가 됐다. 당시 김준섭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인수는 SK그룹이 집중 발굴·투자하는 신성장 포트폴리오 중 비어있던 반도체 소재 사업을 채워 넣는 포석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며 "OCI머티리얼즈는 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에도 NF3을 납품하고 있어 SK하이닉스와의 시너지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인수"라고 평가한 바 있다.

정부도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 소재 연구개발에 대해 세금 면제 및 주52시간 유예 등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단기간에는 어렵다
일본의 제재를 기회로 삼아 소재 국산화, 즉 소재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소재는 그 특수성에 따라 현장에 유동적으로 적용되며, 쉽게 바꿀 수 있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불화수소 국산화 논란을 두고 설전을 벌인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 장관은 지난달 1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강연 말미에 불화수소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이 한국을 겨냥해 불화수소 등 3대 핵심 소재 수출규제에 돌입한 가운데, 국내에서 불화수소를 자체 수급하지 못하는 책임을 대기업에 돌렸다. 박 장관은 “중소기업을 만나 물어보면 불화수소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면서 “그런데 대기업이 사주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같은 행사에 참여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입을 열었다. 최 회장은 불화수소를 국내에서도 만들 수 있다면서도 “품질의 문제가 있어 디테일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핵심소재 기술 독립을 이루지 못한 이유로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박 장관의 주장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박 장관은 재차 반박했다. 박 장관은 최 회장의 발언이 알려진 후 SNS를 통해 “첫술에 배부를 수 있을까?”라면서 “만약 20년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연구개발 투자를 하면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했다면 지금의 상황은 어떠했을까?”라고 반문했다.

업계에서는 박 장관의 주장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본다. 그의 말 대로 기술 독립을 이룰 수 있다면 일본에게 핵심소재 기습을 당하지 않았을 수 있으나 문제는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제공하는 불화수소는 국내 중소기업 및 제3국의 불화수소와 비교해 품질이나 순도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의 불화수소와 비교해 일본의 불화수소가 더 높은 품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이 나온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일 민관정협의회에서 감정적인 소재 분야 독립 가능성에 선을 그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의 위기에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큰 그림을 그린다는 마음으로 국산 소재 독립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본원적인 경쟁력이다.

일본의 모노츠쿠리 정신이 중요하다. 일본의 장인정신인 모노츠쿠리는 소재분야와 찰떡궁합이다. 소재 개발은 공정 노하우나 경험을 체화(體化)한 숙련공이 얼마나 많은 가에 따라 시장에서의 성패가 좌우되는 분야며, 이 지점에서 일본 특유의 모노츠쿠리가 빛을 발한다는 분석이다.

소재산업의 아날로그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오랫동안 숙련된 ‘장인’이 인내를 갖고 시행착오까지 감내하며 ‘예술품’을 만드는 모노츠쿠리가 현재 일본 소재산업의 압도적인 글로벌 시장 점유율로 귀결됐다는 설명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충격을 반면교사로 삼아 소재 독립의 꿈을 키우면서, 이를 즉각적인 대응카드로 내세우지 말고 협상의 카드 중 하나로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