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정경진 기자] 

◆일본, 그들은 왜 20년의 장기침체를 걸었을까

지난해 주택금융공사에 발표한 주택금융리서치 ‘하락의 추억, 침체에 대한 회고(일본 주택시장 장기침체 원인 분석 및 한국 주택시장 시사점 검토)’에 따르면 일본의 주택가격은 2010년 이후 실질적으로 2013년부터 도쿄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일본 전국 평균 공시지가는 지난해 기준 3년 연속 상승했다. 3년 연속 상승한 것은 버블 붕괴 직전이었던 1992년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2013년을 기준으로 일본의 주택가격은 현재의 급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1990년대 초 버블붕괴 이후 20여 년 간 하락세를 면치 못했으며 현재도 겨우 그 절반을 회복한 상황이다.

일본부동산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도쿄 주택가격지수는 1986년 100을 넘지 못했던 지수가 단 5년 만에 두 배가 넘는 200을 초과하는 수준까지 급등 한 후 1991년을 정점으로 급락해 현재는 정점의 절반인 100에도 못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장기침체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일본 부동산 시장은 1980년대 후반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며 버블상태에 돌입, 1991년을 정점으로 버블이 피크를 이뤘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사상 최대의 경제 호황기를 누렸던 일본은 미국의 플라자 합의를 기점으로 엔고 영향으로 수출길이 막혀 급속도로 쌓였던 버블이 꺼져가기 시작했다.

이때 일본은 떨어진 수출 경기를 내수경기 부양으로 살리고자 금리를 전폭적으로 인하, 이때 풀린 유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몰리면서 1985년부터 1990년까지 5년간 주택가격은 3배 이상 폭등하게 된다. 정책금리지표였던 재할인율은 1985년말 5.0%에서 1987년초 2.5%로 2.5%포인트 인하했다. 이때 은행은 LTV의 120%까지 대출을 해주는 등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으며 주택가격 폭등에 주택공급이 급속히 이뤄지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일본 부동산 지가는 1987년 이후 상업용지를 중심으로 급등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추세는 주가가 급락한 1991년까지 이어졌다. 상업용지 지사지수는 1984년 114에서 1990년 503으로 341%, 주거용지는 1984년 79에서 1990년 219로 177%가 올랐다.

이 같은 일본 부동산 버블은 순식간에 꺼지며 장기침체 터널로 들어서게 됐다. 2000년 기준 상업용지 가격은 정점대비 1/5 수준, 주택용지 가격은 1/2이하 수준으로 급락했다.

◆금리인상·부동산 대출 관리 미흡·공급과잉 그리고 고령화

여기에는 정부의 과도한 통화긴축정책, 금융기관의 부동산 대출에 대한 미흡한 감독, 공급과잉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당시 일본은행은 기준 금리인상 기간이었던 1989년 5월부터 1990년 8월까지 2.5%였던 기준금리를 6.0%까지 무려 350bp를 올렸다. 이는 1년간 250bp를 내린 1986년 금리인하 기간보다도 더 큰 수치였다.

갑작스런 금융기관의 ‘부동산관련 융자 총량규제’ 역시 주택시장 장기침체 원인으로 꼽힌다.

KDI연구에 따르면 1990년 3월에 실시한 부동산관련 융자 총량규제가 부동산 가격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금융기관의 부동산업에 대한 대출 증가율이 총대출 증가율 이하가 되도록 규제하고 대출상황을 감독당국에 보고하도록 의무하는 이 규제로 부동산대출 급증은 잡았지만 오히려 버블붕괴를 촉발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부동산관련 융자 총량규제는 지가가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1992년 1월에 완화됐다.

김동길 한국주택금융공사 리스크관리부 주택보증리스크 관계자는 “총량규제 시기는 도쿄에서의 대출증가폭과 부동산가격 상승세가 컸던 1987년과 1988년 무렵이 적절했지만 결과적으로 주택가격 버블을 훨씬 키운 후 시행되면서 시장에 가해진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라면서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총량규제 시기가 겹치면서 주택시장 붕괴에 비견되는 수준의 침체 국면으로 전환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공급과잉 역시 일본 부동산 시장 불황의 시작으로 꼽히는 부분이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15년간 연간 160만호가 공급이 됐다. 당시 일본 인구 수는 1.2억으로 3억 인구의 미국이 지난 30년간 연평균 주택건설수가 150만호인 것과 비교하면 주택공급 과잉 규모를 알 수가 있다. 특히 버블 붕괴 초 지가가 하락하면서 주택건설이 오히려 개선돼 이후 5~6년간 주택공급량이 크게 늘면서 주택시장 침체를 더 부추겼다.

1990년대 초반 버블 붕괴 이후에도 일본의 부동산 등 자산 가격 하락세가 2000년대 전반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1992년부터 2016년까지 일본 주택가격의 누적 하락률은 53%에 달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경기침체 장기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여기에 일본 정부는 1999년 ‘제로금리’ 정책을 실시한다. 양적완화 정책으로 금융정책을 바꾸며 파산위기를 겪은 은행들이 막았던 돈의 흐름을 다시 뚫어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5년간 제로금리 정책을 실시했다. 2006년 콜금리를 0%에서 0.25%로 인상했지만 2007년 다시 0% 시대에 진입하면서 사실상 15년 이상 제로금리 정책을 이어갔다.

◆‘제로금리’보다 무서운 ‘버블의 추억’

그리고 이 같은 시기를 거치면서 일본 부동산은 ‘소유에서 사용’으로, ‘개발에서 관리’의 관점으로 인식이 전환됐다. 부동산 시장 역시 임대 및 자산위탁관리 시장 중심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준용 한국감정원 시장분석연구부 부장은 “제로금리라는 것은 결국 이자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부동산 거품붕괴를 경험한 일본은 제로금리 배경에도 불구하고 주택 구입에 몰리지 않았다”라면서 “일본은 스스로 고령화나 저성장 등의 문제를 인식하면서 이로 인해 주택가격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에 초저금리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택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부동산 매매시장보다는 임대시장을 확장시키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버블 붕괴 후 시세차익을 통한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임대시장이 크게 활성화됐다.

실제 지난 2016년 일본 국토교통성이 발표한 ‘가계의 거주주택 소유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토지 및 건물 소유 선호비중은 1996년 88.1%에서 2006년 84.5%, 2016년 79.3%로 점차 하락했다.

이에 일본이 아베노믹스 이후 제2의 경제호황을 누리면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택 집값은 낮은 수준이다. 일본 부동산연구소가 발표한 세계 주요 도시아파트 가격 수준 비교 자료에 따르면 런던은 200~250으로 1위를 기록, 뉴욕과 베이징이 120~130인 반면 도쿄는 100으로 다른 국제 도시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낮은 상황이다.

OECD 주요국 실질 주택가격과 비교하면 미국과 유럽, 한국이 2000년 대비 20~32% 상승한 반면 일본은 19.1% 하락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일본 주택시장은 장기간 부진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나타내지만 주택수요 확대에는 저출산화와 고령화에 따른 인구수 감소 등으로 한계가 존재한다”라면서 “빈집증가와 거래부진 등 구조적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초고령화가 가져온 ‘빈집’문제 그리고 ‘도시 공동화 현상’

주택시장 침체는 벗어났지만 일본 부동산 시장은 빈집 문제라는 커다란 벽 앞에 부딪쳤다.

노무라 야스요 오카사시립대학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총인구는 1억2642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7만명이 감소했다”라면서 “2025년 단카이 세대가 75세가 되고 빈집과 고령화 문제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현재 일본의 인구는 감소하고 있지만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공급과잉 상태에 따라 주택수와 빈집수, 빈집율이 모두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4년 일본창성회의가 발표한 ‘소멸가능성도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전국 1799개 지방자치단체 중 절반에 육박하는 896곳에 2040년까지 사라질 수 있다는 발표는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지방의 경우 젊은층의 도시 유출로 고령화가 가속되는 가운데 고령가구 주택이 상속 이후 빈집으로 방치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의 공가율은 13.9%로 도쿄도(10.9%)와 대도시권(11.9%)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야스요 교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빈집 비율은 2018년 17.0%에서 2023년 21.1%, 2028년 25.7%, 2033년 30.4%에 다다를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고령화만이 빈집 문제를 유발시켰을까.

과거 일본은 1960년대부터 대도시 주택난을 해소하고자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 등 대도시 외곽에 49개의 신도시를 개발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후 2000년대부터 부동산 정책은 뉴타운 개발에서 도심재생사업으로 전환하면서 도심 주택이 신도시의 주택수요를 흡수하는 신도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도쿄 의존도가 높은 베드타운형 신도시에서 공동화가 심각하게 나타난 것이다.

이 중 대표적으로 꼽히는 다마뉴타운은 도심 접근성과 쾌적한 주거환경으로 당시 단카이 세대로부터 ‘꿈의 뉴타운’으로 불렸다. 초기 분양 경쟁률은 80대 1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점차 인구증가 속도가 감소하기 시작한 이곳은 2016년 1월 기준 총 인구 22만명으로 계획인구의 65% 수준에 그쳤다. 신규 전입인구의 감소는 다마뉴타운의 급속한 고령화를 촉발시키며 2016년 전체 고령화 비율이 22.2%인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신도시 공동화 첫 번째 원인은 부동산 가격 하락에 있다. 도쿄 도심과 도쿄와 인접한 3개 현을 아우르는 도쿄권의 주택지 가격은 부동산 버블 붕괴로 도심개발 단가가 하락했다. 부동산 정책 역시 도심재생으로 전환하면서 도쿄 도심의 개발이 활발해졌다. 도쿄에서 신규주택 확보가 저렴하고 용이해지면서 신도시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저하됐다. 이에 더해 젊은 인구의 도심선호가 강화된 것 역시 신도시의 공동화현상을 부추겼다.

KDB ‘일본의 신도시 공동화 현상과 시사점’ 리포트에 따르면 ‘사토리족’으로 대변되는 일본 젊은층은 돈벌이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편의시설이 밀집돼있고 아르바이트를 영위해나갈 수 있는 환경을 중요시한다.

신도시의 자족 생활권 형성 실패 역시 공동화 현상의 원인으로 꼽힌다.

손명혜 KDB 조사부 연구원은 “다마뉴타운은 중심에 다마센터를 개발해 도쿄 도심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고자 했지만 개발범위가 광범위하고 자금이 부족한 탓에 개발이 지연됐다”라면서 “기업 유치도 충분하지 않으면서 도쿄 도심으로부터 분리된 자족 생활권 형성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버블과 20년의 장기침체를 겪은 일본 부동산 시장은 이제 빈집과 신도시 공동화 현상이라는 문제가 남아있다. 이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도 연결되며 고령화라는 자연발생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이는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한국 부동산 시장이 앞으로 직면할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