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을 졸업했지만 돈 빌릴 곳이 없다” 경남지역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K기업 대표의 말이다. 회사는 지난 2018년 회생을 신청해 이듬해 회생절차를 졸업했다. 법원에서 부채는 조정했지만 운영자금이 문제였다. 회생신청의 낙인으로 여신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PEF로부터 DIP파이낸싱(회생기업 투자금융)으로 하려고 해도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현재 회사는 캠코와 세일앤리스백을 협의 중이나 짧은 임대기간과 캠코가 매입할 자산이 한정돼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30일 구조조정 업계에 따르면 캠코가 세일앤리스백(자산 매입 후 임대제도, Sale & Lease back)를 10년으로 늘리는 방안에 본격 돌입했다. 제도의 도입이 회생절차를 졸업한 기업 등 구조조정 기업에 재기의 발판이 될지 구조조정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캠코의 이번 제도 개선은 기업구조혁신 펀드의 증액과 더불어 이뤄진 조치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26일 부산 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구조 혁신 방향' 토론회에서 채권금융기관 중심의 구조조정 시장을 자본시장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금융위는 이 자리에서 현재 1조원 규모인 기업구조혁신펀드를 최대 5조원까지 확대하기로 하고, 세일앤리스백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세부안을 발표했다. 

세일앤리스백 제도는 기업의 부동산을 사들여 다시 그 기업에 임대를 주는 제도다. 재기지원이 필요한 기업에 대해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임대료 납부 부담도 낮춘다. 캠코는 기업의 사정에 따라 임대료 납부 방법을 다양화한다는 계획이다.  

캠코 관계자는 “지원 초기 기업의 임대료 부담 완화를 위해, 임대차 기간 가운데 초기 1년~2년 동안은 임대료 일부를 임대차 기간 5년이 되는 시점에 일시 납부하는 방안이 마련될 예정”이라며 “기업의 사정에 따라 임대차기간 4~5년 차에 추가해 납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캠코는 지난 2015년 세일앤리스백 제도도입 후 총 31개 기업에 대해 모두 3992억원 규모의 자산을 인수해 기업의 경영정상화를 지원했다. 

◆ 김상조 “세일앤리스백 영역 확대 검토해 볼 것”...캠코 “불가”

세일앤리스백의 제도 개선이 임박한 가운데, 대상 자산을 동산으로 확대해 달라는 중소기업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소기업의 자산구성 비율로 볼 때 부동산보다는 기계설비가 많다는 게 주장 이유다. 사례의 K기업과 같이 회생절차를 졸업한 기업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주장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산금융 활성화 대책’의 주요 근거이기도 하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6월 발표한 ‘동산금융 활성화 추진 전략’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 중소기업의 자산 구성은 동산이 38%, 부동산이 25%, 기타 자산이 37%를 차지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6월 '동산금융 활성화를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국내 중소기업이 600조원에 달하는 동산을 갖고 있지만, 금융에 활용되는 동산은 2000억원에 불과하다"며 "대출과정에서 동산자산이 사장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회생절차를 마친 중소기업도 부동산보다 기계설비 등 동산자산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일앤리스백을 부동산에 한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재기지원을 원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지난 10일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는 중소기업인들이 이 같은 목소리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조 정책실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학계 등에 있을 때 미국과 한국의 회생절차에 대해 연구한 경험이 있다”며 “미국 연방파산법 챕터11(우리나라 회생제도)에서는 기업의 운전자금 확보에 대해 다양한 제도를 열어 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회생제도를 고려해 정부지원제도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도 중소기업인들의 이같은 주장에 공감의 뜻을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캠코는 동산 세일앤리스백에 대해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세일앤리스백의 대상을 기계장치까지 확대할 경우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다.

캠코 관계자는 “부동산과 달리 기계장치의 훼손과 분실 가치하락으로 재매각을 통한 투자금 회수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인수당시 기계장치의 가치평가가 어렵고 불법 반출과 은닉, 훼손 등 관리의 어려움도 따른다”며 “여기에 재매각을 할 때 부식과 고장 등으로 매각시점에서 단순한 고철로 취급돼어 별도의 보관비용까지 지출되는 문제가 있다”고 부연했다.  

자본시장에서 동산금융의 활성화가 구조조정 영역에서는 보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김상조(왼쪽)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사진=중소기업중앙회

◆ 업계 “대안 없는 것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이 재기지원제도에 대한 높은 문턱이 파산신청을 견인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법원에 접수된 법인파산 건수는 2017년 699건, 2018년 807건, 2019년 상반기 1000건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구조조정 업계와 파산법조계는 여러 대안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펀드 조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업구조혁신펀드의 일부를 동산 세일앤리스백으로 전용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중소기업의 대표는 실무자의 면책제도 도입도 제안했다. 동산담보를 취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에 대해서 실무자의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중소기업중앙회가 참여하는 방식의 가치평가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안창현 변호사(법무법인 대율 대표변호사)는 “회생절차를 졸업한 기업 등 재기지원이 필요한 기업의 경우 회계적 평가 이외에 재기 가능성, 기업구성원의 의지, 산업적 요소, 일자리 등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이러한 가치평가는 중소기업의 사정을 잘 아는 중소기업중앙회가 담당해 근거를 산출하고 이를 토대로 캠코가 동산 세일앤리스백을 적용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시했다.